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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살아있는 생물(生物)입니다.

by 김인걸

사람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사회는 사람의 모임입니다.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사회라는 대상이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는 생물처럼 살아 움직입니다. 때로는 그의 생각을 알 수 없는 소시오패스처럼 느껴집니다. 그 이유를 경제, 정치 같은 사회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시장(市場)은 개인이 물건이나 용역을 거래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시장을 “사람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시장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살아있는 생물처럼 작동하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그가 전제한 ‘참가자 전원이 참여하는 시장’은 현실과 다르다는 비판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실제의 시장은 소수 거대 이익집단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의 논란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시장은 단순한 거래의 장이지만 생물처럼 살아있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란 사람들이 나라의 일을 논의하는 활동이지만, 많은 이들이 정치를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처럼 표현합니다. 변수와 이해관계가 복잡하여 사람의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출근하는 직장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직장은 개인의 가치와 욕망이 거래되는 곳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거래는 수많은 변수를 안고 있어 예측하거나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직장이라 하면 삼성전자, LG, 애플, 테슬라 같은 거대 브랜드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직장은 세련된 사옥이나 혁신적인 CEO가 아니라 결국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은 직장에서 서로 원하는 이익을 거래합니다. 그래서 직장은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거래 결과는 누구도 확실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개인마다 가치관과 추구하는 목표가 다릅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취업했더라도 취향과 관심사는 사람 수만큼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승진을, 또 어떤 이는 연봉이나 정년 보장을, 또 다른 이는 워라밸을 중시합니다. 사람은 금전·명예·권력이라는 세 가지 이익을 추구한다고 합니다. 금전을 원하면 사업가가 되고, 명예를 원하면 학자나 성직자가 되며, 권력을 원하면 정치인이 된다고 하지요.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직업은 없다고도 합니다.


직장인에게 승진은 중요한 이익입니다. 승진은 경제적 보상과 명예를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확실한 이익이 보장된다면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추구하는 이익은 다양하고, 그만큼 직장은 예측 불가능해집니다. 이 변동성은 개인의 내적 변화로 더욱 커집니다. 개인의 기준은 시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컨대 2021년에는 연봉이 직장 선택의 1위 기준이었으나, 2023년에는 워라밸이었습니다. 여기에 입·퇴사, 승진, 인원 조정 등으로 구성원이 수시로 교체되면 직장은 더욱 불확실해집니다. 결국 직장은 사람의 계산을 뛰어넘는 변동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도 원하는 이익을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옛사람들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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