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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은 존댓말로 충분합니다.

50대 생존 이야기 : 자녀 교육 편

by 김인걸


20대 후반 소중하고 귀한 2명의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나이 어린 아빠였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시작하던 시절 저는 그들에게 도움 되는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도움 되는 아빠라는 정의가 각자 다르겠지만, 저는 자녀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방법은 아빠의 사회 경험, 지식, 지혜를 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자녀들이 10살 미만이었던 때는 유독 직장 일이 바빠서 자녀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적었습니다. 주중에는 늦게 퇴근했고 주말에도 출근해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며칠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첫째 딸이 5살이던 시절 2주 만에 집에 온 저를 보고 낯선 사람으로 생각하고 밤새 울기도 했습니다. 가끔 만나는 아이들의 행동은 저에게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엄마 말을 듣지 않는 떼쓰고 버릇없는 어린이로 보였습니다. 사실 어린이의 당연한 모습인데 어른의 기준을 갖다 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녀를 칭찬하거나 "예쁘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자주 해주지 않았습니다. 자주 접촉할 기회가 없는 데다가 만날 때마다 야단치니 아빠는 피하고 싶은 1순위 대상이었습니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자 저의 일방적인 교육 강도는 강해졌습니다. 주로 부모에게 존댓말 하기, 부지런하게 행동하기, 사람에 대한 예의, 집안일 돕기 등 인성에 관련된 교육이었습니다. 공부는 잘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지나친 학원 보내기는 반대했습니다. 집안이 가난하여 학원 한 번 가지 않고 공부했던 저는 공부에 관한 개똥철학이 있었습니다. 공부는 본인이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입니다. 아내가 좋은 학원을 알아보고 여러 곳의 학원에 보낼 때는 "나는 공부를 스스로 했어,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학원을 보내도 소용없어. 학원 1시간 보내면 혼자서 2시간 복습해야 하는 거야. 학원만 다닌다고 성적이 오르지 않아"라며 불편한 잔소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늘 본인의 의지와 생각대로 학원에 보냈습니다. 하루에 1시간도 자녀를 만날 수 없는 아빠는 매일 얼굴 보며 사는 엄마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자녀들이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3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교훈적인 단문의 글을 문자로 보냈습니다. 바쁜 출근 시간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움이 될 만한 글을 보냈습니다. 좋은 글을 찾기 위해 매일 검색하거나 책을 읽고, 거리를 걸을 때도 좋은 글귀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자녀들은 글을 읽지 않았습니다. 잔소리꾼 아빠의 말은 모두 듣기 싫은 것이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맞춤식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자녀가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을 조언했습니다. 인생에 중요한 가치와 목표를 갖도록 오타니처럼 '만다라'를 만들어 보게 하거나 미래 30년 후의 "인생 설계도" 같은 것을 써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억지로 하는 척하는 모습만 보였고, 저는 실망감에 자녀들에게 더 많은 잔소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냉랭한 집 분위기를 만드는 꼰대 아빠가 되었습니다. 제가 노력하면 할수록 관계는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올바른 조언을 올바른 조언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내가 홍길동인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20년 동안 도움 되는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오히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아빠의 일방적인 도움은 도움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빠의 조언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치열하게 살아온 인생 경험, 많은 독서를 통해 배운 통찰력은 분명 진실이고 사실입니다. 다만, 전달 방법을 깊이 있게 고민하지 못했던 점이 후회됩니다.


몇 년 전부터는 자녀들에게 조언 대신 칭찬합니다. 밤새 게임을 하면 체력이 좋다고 칭찬하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면 화가 해보라고 하고, 술 먹고 늦게 귀가하면 아빠 닮아서 술을 잘 마신다고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와 대화하기 편해졌고 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어느 날 자녀들이 과거 아빠가 했던 조언의 의미를 이제는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잔소리로 생각할 때는 본인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오해했는데 아빠의 진심을 알고 나니 그때 아빠의 조언을 들었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와 자녀들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아주 먼 길로 돌아온 듯합니다.


지금의 결론은 "자녀가 부모에게 존댓말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하다."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존중하면 부모가 할 교육은 모두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는 조용히 지켜보고 칭찬하면 그들이 스스로 길을 찾거나 조언을 요청합니다. 꼭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자녀가 하기 바라는 행동은 직접 보여주면 됩니다. 가장 큰 울림은 모범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도움은 자녀가 부모를 존중하고 요청할 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부모의 일방적인 도움은 좋은 관계 형성에 방해됩니다. 어쨌든, 20대 중반이 된 자녀들이 존댓말을 하니 그래도 실패는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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