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거나 따분하다는 말은 “무언가를 할 때 흥미나 자극이 부족해 시간이 길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를 가리킵니다. 사전적으로는 “흥미나 재미가 없어 싫증이 나는 상태”라 정의합니다. 비슷한 표현으로 “무료하다”, “지겹다”가 있습니다. 심리학에 따르면 뇌가 자극을 받지 못하거나 그 자극을 무의미하게 여길 때 지루함이 발생하며, 이때 시간은 실제보다 훨씬 길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흔히 재미없는 강의나 영화, 혹은 휴일에 할 일이 없을 때 이런 감정을 경험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같은 일을 반복할 때, 시간이 남아도 할 일이 없을 때, 하는 일이나 상대방에게 흥미를 느끼지 못할 때,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의 목적을 찾지 못할 때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힘든 현실을 마주할수록 오히려 지루하고 따분했던 시간이 그리워집니다.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이 없을 때 비로소 지루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의식주가 해결되어야만 삶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조차 쉽지 않고, 가족의 의식주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의식주가 해결되면 교육, 건강, 노후와 같은 새로운 걱정이 뒤따릅니다. 이 모든 걱정에서 벗어났을 때에야 비로소 지루함이 찾아옵니다.
자연 속 동물은 의식주만 해결되면 행복해 보입니다. 생존이라는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초원의 왕 사자조차 새끼일 때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다 자라도 먹이와 영역을 지켜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면 결국 무리에서 쫓겨나 홀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고통이고, 그 고통은 죽음으로 끝납니다.
인간 역시 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생존과 후손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하고 경쟁하며 때로는 투쟁해야 합니다. 그래서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입니다. 하지만 사랑받고 싶고, 존경받고 싶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살아남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입니다. 만약 인생이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고통에서 잠시 벗어났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결핍과 과잉 사이에서 흔들리는 시계추에 비유했습니다. 결핍 속에서 고통을 겪다가, 결핍이 충족되어 과잉이 되면 지루함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둘 다 즐겁지는 않지만 굳이 선택한다면 차라리 지루함이 낫습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순간은 오히려 감사할 만합니다. 걱정할 일이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순간에서 때때로 좋은 아이디어가 태어납니다. 역사 속 걸작도 그런 시간 속에서 나왔습니다. 궁형의 형벌을 받고 집필한 사마천의 『사기』, 유배지에서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 추방당한 단테의 『신곡』, 감옥에서 시작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은 모두 지루함과 고통을 견디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사람은 동물보다 낫습니다. 최소한 의식주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고, 노후에도 가족 곁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권태’가 아니라 ‘행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