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fewriter Aug 09. 2023

어느 폭포뷰 카페에서

인증샷에 대하여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이 그리워지는 날들의 연속이다. 장마가 완전히 끝나기 전 지금처럼 습도가 높은 날이었는데 이미 충분히 많은 비가 내렸으니 계곡도 물이 차올라서 놀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아직도 갑자기 내린 비로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 계곡에서 인명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계곡에 가기에는 위험하고, 날은 덥고, 멀리 갈 시간은 없고.. 다른 시원한 장소를 찾다가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는 한 카페를 발견했다. 그런데 지방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서울에 있다는 게 아닌가?


 바로 차를 타고 그 카페가 위치한 홍은동에 찾아갔다. 내부순환도로의 고가다리 아래였는데 바로 앞에 꽤 큰 규모의 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아파트 약 10층 높이의 언덕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놀랍게도 인공으로 조성된 것이라고 했다. 13년 전쯤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엄청난 규모의 폭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눈앞의 폭포와 비교할 수는 없는 웅장함이었지만 난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 내가 지내던 지역에서 무려 8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이 폭포는 내가 살고있는 메가시티 서울 안에 있어 보고싶으면 1시간 내에 올 수 있을뿐 아니라, 바로 옆에는 차들이 바쁘게 달리고 있는 고가도로도 있고 카페도 있는걸? 이 얼마나 이색적인 풍경과 편리한 세상인지. 전자에서는 자연 앞에 작아지는 인간을 느낄 수 있다면 후자에서는 자연도 창조해 버리는 인간의 거대한 욕망과 능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카페는 구에서 운영하는 공간이라 그런지 요즘 카페 같은 세련미는 떨어졌다. 간소한 컨테이너 건물로 지어졌어도 야외 테이블이 충분히 놓여있어 확실히 폭포 자체가 주력 상품이었다. 명당 야외 테이블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한 탄산수 음료를 마시며 폭포를 바라봤다. 위에서 아래로 중력을 따라 사정없이 떨어지는 물은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물멍', '불멍'이라는 단어가 생겼겠지. 그렇게 한참 동안 눈에 담고 즐기다가 인증샷을 찍게 됐다. 찍다 보니 영락없는 관광지 비주얼이 아닌가! 폭포 바로 앞 홍제천에 내려가 찍은 셀카는 마치 중국 관광지에 온 신혼부부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식으로 남는 게 사진뿐이라면 인공이든 자연이든 사실 별 차이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디에 가든 항상 사진을 많이 남겨두는 편이다. 일상 속에서도 별 쓸데없는 것들까지 툭하면 찍어두곤 한다. 반면 남자친구는 영상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 카메라를 통해 보는 세상에 훨씬 민감할 텐데 나와 함께 다니는 멋진 곳에서 사진을 열심히 찍어두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문득 궁금해져서 왜 사진을 안 찍냐고 질문을 던졌다. 내가 항상 찍기 때문에 기억을 위한 용도의 사진은 굳이 본인이 찍을 필요가 없어서일까, 그렇다면 나에게 더 감사해야지 않겠냐는 괜한 생색을 내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남자친구는 예전에 친구와 함께 갔던 에미넴 콘서트를 예시로 들며 말했다. 그곳에 오기로 했던 특별 게스트가 올 때에 맞춰 관객들이 미리 사진 찍을 준비를 하느라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휴대폰을 쳐들고 있었는데 결국 예상했던 타이밍이 아니라 다른 때 나와서 모두가 사진이 아니라 다시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 봤던 바보 같은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직업상 더 감동적인 순간이나 멋진 배경들을 담으려면 제대로 현재에 집중해 느껴봐야 더 잘 포착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납득이 갔다. 


 인스타그램이 생겨나고 사진으로 드러내는 것들의 힘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인증샷에 목숨을 걸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제는 거리낌 없이 아무 데서나 사진을 찍어댄다. 여행을 가서도 인생에서 한 번 밖에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는 풍경을 보며 어떤 구도로 찍어야 인생샷을 건질지에 대해 먼저 연구한다. 사진 찍는데 정신이 팔려 제대로 눈에 담지 못하고 돌아와 사진으로 회상을 한다. 갑자기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아이폰 카메라의 촬영버튼을 20번도 더 눌러대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한 10년이란 시간 동안의 모든 순간들이 정확하게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아서 가끔은 사진을 통해 기억의 왜곡을 정정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사진의 힘이 강해진다. 또 사진을 주제로 티격태격하다가 이런 식으로 서로를 보완하다 보니 10년 동안 잘 만날 수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이전 17화 어느 대림동 카페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