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카페
경기도의 한 호텔에서 생일 기념 호캉스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 가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서울 남서쪽(우리 집은 북동쪽이다.) 카페에 가기 딱 좋은 경로가 아닌가. 브런치로 순두부찌개를 때린 후에 커피를 마시기 위해 그 카페로 향했다. 최근에 생긴 카페로 역시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한 곳인데 건물 외관이 압도적으로 독특해서 누가 봐도 건축가가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 지은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상권이 낙후한 지역인 대림동 차이나타운 쪽에 있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조선족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영화 '범죄도시 1'에 나와 안 좋은 이미지로 더 굳혀진 동네였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차이나타운 상가의 간판들을 구경하는데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우뚝 솟은 카페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더욱 압도당하는 비주얼이었다. 6층 규모에 둥글넓적한 바위 기둥처럼 보이는 구조물들이 한 층, 한 층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건물이었다. 인증샷을 찍기 위해 한 컷에 건물을 모두 담기 위해서는 뒤쪽으로 한참 물러나야 했다. 내부로 들어가 앉을자리부터 잡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향했다. 3층까지가 카페이고 4층에는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전시회가 진행 중인 갤러리가 있었다. 더 위쪽은 사무실로 쓰이는 듯했다.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굉장히 이색적이었는데 기둥을 자세히 보니 바위를 형상화한 콘크리트 기둥이었다. 군데군데 이끼가 자라난 것처럼 보이도록 식물로 장식되어 있는 모습이 멋졌다. 가장 놀라운 것은 2층이었는데 층고가 높고 바닥이 기울어져 경사가 있었다. 이런 설계가 가능하다니 감탄만 나왔다. 카페라기보다는 건물 전체가 '건축'을 관람하는 전시관, 쇼룸 같은 느낌이었다.
1층에 내려가 커피를 주문하고 받아서 다시 3층에 올라와 자리에 앉았다. 12시가 조금 넘어 직장인 점심시간이었는데 주변에는 회사보다 차이나타운의 상점이 많아서 그런지 매우 한가했다. 1시 이후부터 슬슬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우리 왼편에 앉은 사람은 조선족의 어투를 사용했고 우리 오른편에 앉은 사람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선족이나 중국인에 대해 비호감을 느끼는 편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이 카페가 잘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지역이 인기가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사람들에 대한 인식 때문이고 부동산 가격대 역시 서울 내에서는 낮게 형성되어 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사실은 조선족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생 때 친하게 지냈던 화교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가 있었음에도 화교에 대해 역시 잘 모르는 나였기에 조선족과 화교의 차이가 궁금해졌고 그 자리에서 바로 검색을 해보게 됐다.
화교는 중국인 국적을 그대로 가지고 한국에 살며 경제활동을 하는 교포와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화교는 정당한 권리가 침범되었을 때 중국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도 있으며 한국 내에서도 그동안 비교적 지원을 잘 받아왔다. 조선족은 일제강점기 때 해방이 되면서 만주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절반이 대한제국으로 넘어오고 반은 그쪽에 남아 살게 되었는데 그 사람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북한의 함경도 쪽에 살던 사람도 있어 우리가 조선족 말투로 인식하는 것이 그 함경도 사투리라고 보면 된다. 결국은 다른 곳에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한 민족이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화교처럼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에 정착해 살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그동안 미디어에 노출된 이미지로 인해 범죄에 자주 관련되어 있다는 편견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없는 3D업종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 분들도 많은데 말투를 비꼬면서 무시하고 경계하는 것은 인종차별과 같은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이 카페에 찾아온 것만으로도 나는 편견 하나를 바로잡은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땅값이 저렴한 곳이라 건축가가 선택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카페 장사가 주목적이 아니라 과시용일 테니까. 하지만 조선족에 대한 검색 이후에 이 건물과 건축가에 대해 검색을 더 이어가다 보니 이 지역을 택한 이유가 편견에 대해 저항하고 차이나타운의 장소성을 오히려 드러내고자 함이라는 것을 알고 감동하고 말았다. 모두가 꺼려하는 동네를 벗어나 더욱 근사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기꺼이 도전한 것이었다. 실제로 가보니 이 번쩍번쩍한 건물이 몹시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주변은 노후한 건물들이 많았다. 아마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고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이 지역 사람들과 섞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같은 공간을 즐기는 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진정한 건축이란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