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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fewriter Jul 21. 2023

어느 계곡뷰 카페에서

노키즈존에 관한 생각

 인스타를 보다가 한 카페를 발견했다. 바로 앞에 계곡이 흐르고 있어서 계곡과 함께 일석이조로 즐길 수 있는 대형 카페였다. 위치는 남한산성 근처. 저번에도 한 번 남한산성 산책을 갔다가 인근 카페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던지라 기대가 됐다. 전날 밤 비가 쏟아진 후에 맑게 개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기에도 안성맞춤인 날이었다.  


 신나게 달려갔건만 카페 앞에서 잠시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주차장에 들어가는 길 초입부터 차들이 줄지어 서있었기 때문이다. 카페 안에 자리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먼저 내려서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맡기로 했다. 이 정도에는 도가 텄다. 카페에 입장하자 키오스크 앞에 또다시 줄 선 사람들이 보였고 빠르게 2층에 올라갔더니 의외로 자리가 남아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창 밖으로 보이는 엄청난 인파. 이곳은 계곡 옆 백숙집 같은 포지션을 취하는 카페였던 것이다. 부지런히 아이들과 함께 나와 돗자리를 펼치고 이런저런 나들이 용품을 깔아놓고 물놀이에 한창인 가족들이 보였다. 


 나는 음료와 디저트를 주문하고 비교적 조용한 2층 자리에 앉았다. 바깥의 계곡 풍경을 바라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관찰하게 됐다. 2층이 비교적 여유롭고 조용한 이유는 바로 노키즈존이기 때문이었다. 1층에는 주문하는 사람과 음료를 받아가는 사람, 일반 좌석의 손님들, 화장실에서 아이들을 씻기는 부모들로 북새통이었다. 화장실은 겨우 두 칸 남짓이었고 씻는 공간은 밖과 지하에 따로 마련되어 있었지만 전혀 지켜지고 있지 않았다. 잠시 뒤, 2층에 아빠와 어린 딸이 올라왔다. 노키즈존이라는 문구를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딸이 카페의 장식용 오브제인 악기를 마구 건드리고 있는데 폰만 쳐다보느라 역시 돌보지 않고 있었다. 카페를 잘못 골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전에 한 유명 음식점 사장님이 인스타 개인 계정에 노키즈존에 대해 부정적으로 올린 글을 본 적이 있다. 저출산의 심각성과 어설픈 대책 논의하기 전에 애를 편하게 키울 환경부터 만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려면 노키즈존부터 없애는 게 맞다는 입장이었다.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는 당연히 불만이 될 수 있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키즈존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 배경부터 돌아본다면 마냥 맞는 말은 아니다. 사업장은 사업자의 공간이고 제한과 규칙 없이 운영하다가 수많은 갈등이 생길 바엔 원천 차단하는 게 나을 것이다. 세상에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내 자식이 아니어도 본능적으로 누구나 보호해야 할 존재로 여기지만 부모 동반 하에 컨트롤이 잘 된다는 전제에서나 맞는 말이다.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고 뛰어다니는 것이 아이의 본능이며 어쩔 수 없다고 안 키워봐서 하는 소리라는 논리를 펼치면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일행도 아닌데 이유 없이 그 고통을 함께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조용한 아이들은 실제로 유니콘 같은 존재도 아니다. 노키즈존에 대한 불만을 가지는 사람 중에 아이를 제대로 지켜보며 통제하는 부모를 본 적이 없다. 실제로 나 또한 카페에서 지나친 소음으로 인해 직접 주의를 주는 일까지 벌어진 적이 있다. 자칫하면 싸움이 될까 봐 말을 꺼내지 않고 참는 사람들도 많다. 대신해 주니 통쾌했는지 옆에서 동조의 웃음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카페라는 곳에 가본 기억이 없다. 우리 때는 카페가 이렇게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카페는 어른들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카페 말고도 가고 싶은 공간이 훨씬 많다. 사실은 아이들에게는 주지도 못하는 커피를 어른들이 마시고 싶어서 아이를 함께 데려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78%라고 한다. 최근에는 코미디언 정성호 씨가 뉴스에 나와 단기적인 금액 지원이 아니라 부모가 희생하지 않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말을 해서 큰 공감을 얻었다. 답답한 정책 방향을 꼬집으려는 의도는 옳았지만 이 부분은 부동산 정책과 더 깊은 연관이 있을테니 논외로 치자. 사실은 우리 세대야 말로 부모의 희생으로 자라난 세대이기에 모순이 있다. 거기에 가부장적인 문화는 덤이어서 엄마들은 슈퍼우먼보다 더한 삶을 살았다. 지금은 편안히 노후를 보내셔야 할 분들이 자식의 자식까지 봐줘야 하는 상황에 그 말이 전적으로 맞다고 할 수 있을까? 아이를 갖기로 한 것은 자신이 한 선택이다. 거기에 따르는 희생도 그 선택에 포함된다. 환경은 오히려 예전에 비해 모든 것이 좋아졌다. 자신과 자식이 배려받길 원하면서 남은 배려하지 않는 어른들 때문에 생겨난 노키즈존은 오히려 양반이다. 소아과가 없어지고 교사가 기피직업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과도한 희생을 요구하고 아이의 인권을 방패 삼아 부모의 욕구를 해소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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