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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fewriter Jul 10. 2023

어느 홍대 카페에서

변해가는 관계에 관한 사색

 오랜만에 홍대 쪽에 갈 일이 생겼다. 홍대 안에 있는 갤러리에서 전부터 궁금했던 작가님의 개인전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 전철을 타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린 다음 9번 출구로 나와 걸어가는 길은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어마어마한 인파에 기가 빨리고 말았다. 와, 여기는 여전하구나. 여기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옷차림도 과감해 보였다. 노출에도 거리낌이 없고 요즘 유행따라 Y2K 시절을 연상시키는 패션들이 눈에 띄었다. 크롭티에 펑퍼짐한 카고팬츠는 오히려 평범할 지경이다. 나도 이 날은 카고 스커트를 입고 나왔으니까! 왠지 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니 나도 한 층 어려진 기분이었다. 마치 대학생으로 돌아가 학교에 등교하는 기분으로 갤러리로 향했다. 전시는 작품의 실물을 볼 수 있어서 꽤나 만족스러웠다. 작가님도 계셨는데 제일 궁금했던 것은 작품의 가격이었지만 당당하게 물어보지 못했다. 솔직히 이 나이쯤 되면 좋아하는 작가의 대표작은 아니어도 적당한 그림 하나 정도 과감히 살 수 있는 재력은 될 줄 알았는데 인생 참 쉽지 않다. 


 전시회를 즐기고 나오니 역시 카페에 가고 싶어졌다. 어디에 갈지 고민하다가 몇 개의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유명 카페가 근처에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그 곳에 가기로 했다. 알고보니 남자친구가 대학 시절에 이 근처에 살면서 제일 자주 가던 단골 카페였다고 했다. 이 카페는 커피 맛도 괜찮지만 재미있게도 여자들 사이에 직원들이 멋있다는 평으로 알려져 있는데 굳이 남친에게는 그 이야기를 해주진 않았다. 나는 이 지점 방문이 처음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직원이 남은 자리를 안내해줄 때 흘깃 쳐다봤던 것은 비밀이다. 


 주문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남친은 이미 추억에 잠긴 모양이다. 이 지역에 오면 아무래도 찬란했던 그 때가 생각날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한 달에 한 번은 꼭 두둠칫, 클럽데이를 즐기러 이 동네에 찾아왔으니까. 남친은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오후 늦게 일어나 숙취에 쩔어서 해장커피를 마시러 이 카페에 왔다고 했다. 빈 속에 커피를 마신 것도 놀랍고 그게 저녁 6시였다는 것도 놀랍다. 나 역시 그 못지 않게 클럽에서 밤을 새고 놀았던 다음 날은 비슷한 패턴이었는데 이제는 홍대에 무슨 클럽이 남아있고 새로 생겼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다 그 시절에 어울렸던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랑도 사랑이지만 우정의 가치가 높았던 시절이었다. 고작 몇 달을 사귄 남자, 여자와의 이별에 아프면 친구들과 술을 퍼마시고 신나게 흔들며 금방 잊어버릴 수 있었다. 사실 그 화려한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 중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친구는 거의 없다.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결국 나 자신과 그들이 각자 성장하고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정치관 때문에 친구가 완전히 달리 보였던 적이 있다. 대학 시절엔 온통 관심사가 흘러넘쳐서 정치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 시절 친구들과 새로운 이성과의 썸이나 새로 나온 아이돌의 외모,패션,음악 같은 것에 대해서 얘기했지 정치에 대한 의견을 진지하게 나눠본 적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들이 사실은 많이 어긋나 있음을 알고 깜짝 놀라곤 한다. 그 때는 같은 학교를 다니며 같은 고민을 해서 그런지 우리들이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몇 걸음 떨어져 바라보니 집안의 재력이 차원이 다른 경우도 있었고 한 직장에만 다니며 조직생활을 해온 친구와 수많은 회사와 다양한 직업을 거쳐온 나 사이의 대화가 매끄럽게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은 그 때도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거나 큰 차이가 없다고 느꼈을 수도.


 나와 성질이 다른 사람을 흥미롭게 수용할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나가고 어느덧 편하고 비슷한 사람들만 찾게 되는 나를 보며 너무 사람을 가리게 된 것은 아닌지, 여기서 더 쳐내면 진짜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물론 외로움보다 싫어진 사람을 억지로 만나는 것은 더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서 오래된 우정을 져버리는 것도 딱히 좋은 태도는 아니다. 항상 내가 추구하는 것만이 옳은 것은 아니니까. 내 인간관계의 기준이 높아진 것인지, 단지 중요도와 인내심이 낮아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고소한 커피는 싫고 산미 있는 커피만 내 취향이라고 해서 영영 산미있는 커피만 마신다면 그 맛이 더 이상 특별하지도 않고 무뎌지거나 질릴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나이 들며 취향과 가치관이 확고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해도 그것만 추구하다가는 다채로운 세상과 인간사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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