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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fewriter Jun 30. 2023

비 오는 날 가기 좋은 카페

그리고 노화에 관한 사색

 내 생일은 7월이고 보통 장마가 그 때 쯤이라 대부분의 생일날 비가 오곤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 나이쯤 되면 비 내리는 생일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내 기분을 축 쳐지게 만든다. 작년 생일은 특히 우울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수술이 겹쳐 하필 내 생일이 입원 날짜로 잡혔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코로나에 걸렸다가 격리 해제된지 일주일만이었다. 7월생인 친구들도 많아서 보통 공동 생일파티를 위한 모임들을 잡았기 때문에 7월은 내내 파티 기간이었다. 그런데 작년 7월은 아예 병원과 집에만 있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파티는 고사하고 1일 1카페를 때려야 하는 나에게 무척 답답한 노릇이었다. 입원 하루 전 날 마저 안타깝게도 비가 많이 내렸다. 비가 오지 않았대도 딱히 신나는 기분은 아니었을 것 같지만. 그 날은 더 비장한 마음으로 카페를 골라야했는데 가족끼리 좀 멀리 식사를 하러 나갔다가 그 지역에 간 김에 새로운 곳에 가기로 했다. 

 

 그 카페는 북한산 자락 근처 우이동 깊숙한 곳에 있었는데 원래 단풍이 한창이던 가을에 방문하려다가 한 번 실패했던 곳이었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나무가 울창하고 테라스 자리까지 있어서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무들을 감상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비가 내리던 그 날 그 곳이 문득 생각났고 비가 오면 왠지 인기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 곳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고 한여름의 그 카페는 온통 초록색으로 가득했다. 테라스 자리에 나가보니 심지어 바로 옆에 북한산부터 내려오는 물줄기가 얕은 계곡을 이루고 있었는데 물소리에 빗소리까지 더해져 세상 평화로운 사운드로 가득했다. 


 아주 짙은 초록빛 여름이었다. 쏟아지는 비는 식물들의 넘치는 생명력에 방해가 되긴 커녕 기세에 더해졌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차분해졌다. 이렇게 모두가 생기 넘치고 무성해지는 여름에 나는 시들해져서 병원에 가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면 나는 지금 한여름에 놓여있는 나이대인데 무르익긴 커녕 벌써 저물고 있는 기분이었다. 장마와 태풍이라는 시련 속에서도 잘 버텨나간다면 정말로 다가올 가을에 멋진 열매들을 맺을 수 있는 걸까? 


 수술을 한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자잘한 후유증이 남아있고 계속 약을 복용하며 관리를 해줘야하지만 일상생활에는 금방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건강염려증이 생겨 괜히 사소한 증상들에 예민해져서는 이 병원, 저 병원 들락날락 거리기도 했다. 대부분 원인 없이 노화에 동반되는 증상들인 것 같았다. 영원할 것만 같던 젊음이 서서히 지고 있다. 6월 28일부로 만 나이가 실제 나이가 되면서 30대에 머물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지만 그런 숫자와는 상관없이 몸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읽었던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챕터를 읽으며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보부아르는 카페 위의 집에서 태어났으며, 연인 사르트르와는 카페에서 철학을 논하며 책도 썼다. 나처럼 그들도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온갖 삶들을 관찰했다. 당시 노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키케로에 반해 보부아르는 자신의 책 '노년'을 통해 노화의 부정적인 면들을 가감없이 주장했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했던 것에 반해 그녀는 노년에도 활발히 책을 썼고 '경탄할 만한 것이 남아있지 않은 세상 구경'이라고 말하면서도 다시 여행을 계속했다. 또 평생 파트너였던 사르트르가 죽은 이후에도 마흔 살이나 어린 친구와의 교제를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비록 글과 행동은 달랐던 그녀였지만 오히려 노년을 관찰하며 또렷이 마주했기 때문에 노화를 제대로 수용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행동들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 몸은 더 이상 예전같지 않지만 덕분에 현재 더 올바른 생활 습관들을 추구하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나 역시 이렇게 글을 쓰는 일에 도전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노화라고 생각된다. 누가 들으면 겨우 30대 주제에 웃기는 소리하고 자빠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애 처음 겪는 노화는 이토록 충격적이어서 수용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제대로 늙어갈 시간이 충분하니 해야 할 일도, 만나야할 사람도, 가봐야할 곳도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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