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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fewriter Jun 16. 2023

어느 한강뷰 카페에서

카페 묘사

 태풍의 영향으로 이틀 내내 비가 오는 연휴 두번째 날이었다. 이런 날은 집에 있는게 상책이지만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차 가지고 카페에 가기를 선택했다. 실내 공간을 가긴 가야겠는데 대형 쇼핑몰에 가기엔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집 근처의 가깝고 조용한 카페를 가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의 유일한 일정이 될 수 있으니 '괜찮은 카페'에 가고싶었다.

 

 1. 안가본 신상 카페일 것 

 2. 그러나 사람은 너무 많지 않을 것 

 3.커피맛이든, 디저트든, 인테리어든, 뷰든 돋보이는게 하나 이상 있을 것. 

 

 그렇게 시작된 고민은 아점을 먹은지 한시간이 지날 때까지 계속되다가 결국 마포의 한 카페를 골랐다. 밍기적거리며 밖에 나와 차에 탔다. 어제도 오늘도 결코 적지 않은 양의 비가 일정하게 내리고 있었다. 비가 하루쯤 오는 것은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하루라도 더 길어지면 기분이 바로 다운이 된다. 가만히 있어도 저기압의 지배를 받아 몸이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고질적으로 귀가 먹먹해지는 현상까지 생겨서 예민해졌다. 괜히 무릎이나 어깨같은 관절도 삐걱거리는 것 같다. 어른들이 하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보라보다가 강변북로 우측에 붙어있는 마포의 오래된 건물 서강8경을 발견했다. 바로 오늘의 목적지이다. 

 

 발렛을 맡기니 관리인이 우리가 이 건물 안의 어느 곳에 가려는지 단번에 알아채셨다. 장식적이지만 묘하게 촌스럽고 투박한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우리가 가려는 카페가 5층이라는 사실을 알고 살짝 의아했다. 보통 뷰를 자랑하는 곳은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기 마련이니까. 오랜만에 타는 투명 엘리베이터였다. 한강이 보이자 설레기 시작했다. 5층 문이 열리자 건물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새하얗고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가 나타났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녹음기와 스피커, 턴테이블. 그리고 곳곳에 배치된 조명이나 선반 위의 책자들이 요즘 인테리어 책자 한켠에 있을 법한 분위기였다. 오른쪽으로 돌아보니 카페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적당히 넓고 깔끔한 공간 바로 앞의 통유리창에 한강 뷰가 한가득 펼쳐졌다. 이런 위치에서 한강뷰를 누리는 것은 사실 비싼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뿐일텐데 이 곳에서 잠시 얄팍한 부자의 기분을 느껴볼 수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마음에 드는 테이블을 고를 수 있을만큼 한적해서 좋았다. 제일 좋은 두 테이블에는 이미 손님이 앉아있었지만 주말 웨이팅이 대단하다는 이 곳이 이렇게 여유로운건 럭키니까. 주문한 바나나 푸딩과 커피, 티가 나오자 사진을 공들여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인스타 스토리에 올릴 영상도 찍어보고 그렇게 촬영에 몰입하다가 드디어 카페를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창밖의 한강뷰는 날이 맑았다면 훨씬 많은 것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겠지만 흐린대로 매력이 있었다. 잿빛도시라는 말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도 없을 것이다. 안그래도 대부분의 건축물이 회색톤이고 도로는 조금 더 짙은 회색이니까. 좌측에 있는 오렌지색 서강대교가 아주 돋보일 수 밖에 없었다. 마치 허공에 뜬 오렌지색 무지개 같았다. 중간쯤엔 거대한 초록색 무인도 밤섬과 건너편엔 그보다 더 거대한 빌딩숲이 우거져 있다. 아마 야경이 끝내줄 것이다. 여의도에는 야근으로 빚어진 반짝이는 야경이 있으니까. 지금은 무겁게 낀 구름이 건물의 절반 이상을 가리고 있고 낮시간이라 불빛이 딱히 보이진 않는다. 볼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구름은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져서 건물 전체가 다시 드러나기도 했다가 다시 가렸다가 시시각각 변했고 바로 앞의 강변북로의 교통상황을 라디오 보다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갑자기 도로가 정체되기 시작할 때 차 안이 아니라 밖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평화로운 풍경의 일부일 뿐이다. 저기 멈춰있는 버스가 한 대 보인다. 노란색 스쿨버스. 이 무채색 풍경에서 오렌지색 서강대교, 초록색 밤섬과 함께 컬러라고 부를만한 것을 지니고 있는 사물이다. 멈춘 이유에 대해서 잠시 걱정을 하다가 오랫동안 별 일이 생기지 않자 흥미를 잃고 다시 밤섬으로 시선을 옮긴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 왠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생물이 진화해서 생겨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어떤 동물이나 식물 종일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본다. 아마도 햇살 가득한 날에 왔다면 더 근사하고 로맨틱했을 시간이지만 이 정도로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한강뷰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나와같은 상상을 이미 질리도록 해봤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이런 풍경도 매일 보다보면 무뎌지겠지. 우리 아파트의 뒷산 풍경이 익숙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굳이 같은 돈이면 서울 한강뷰의 아파트가 아니라 자연경관이 더 뛰어난 곳에 자기 취향대로 지은 대저택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서울의 인프라를 우선순위로 둔다. 이렇게 복잡하고 부대끼고 카페 하나 가는데 웨이팅을 일삼아야 하는 메가 시티에서 살고 싶어한다. 38년째 서울에 살고 있는 내가 결코 의아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부동산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갈 때 쯤 왠지 또 귀가 먹먹해지면서 두통도 좀 오는 것 같아 관둔다.


 좀 전에 혼자 상상해본 밤섬에 살고 있는 새는 내가 좋아하는 황제펭귄 새끼가 조금 더 날씬한 모습으로 진화한 버전이다. 유선형 몸매를 뽐내는 동시에 크고 멋진 날개를 가지고 있다. 황제펭귄의 성체는 머리 쪽에 노란빛 털을 가지고 있지만 이 밤섬새는 서강대교를 닮은 오렌지색 털을 포인트로 가지고 있다. 내 상상 속의 밤섬새가 하늘과 한강 사이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며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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