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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fewriter Jun 20. 2023

어느 약수역 카페에서

카페 묘사

 화창한 어느 5월날, 가고 싶었던 카페들을 적어둔 리스트를 훑어보다가 한 카페를 골랐다. 집에서 그렇게 먼 곳은 아니지만 교통편이 조금 불편해서 1시간 가량 걸릴 수도 있는 곳이었는데 논커피 음료에 집중한 카페라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왠지 끌렸다. 오늘은 때마침 커피를 쉬어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호르몬 조절을 위해 피임약을 장기간 복용중이다. 그리고 커피가 점점 더 내 호르몬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고 있다. 소화불량은 둘째 치고 오후 늦게 커피를 마시면 수면의 질에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노화 역시 이런 변화들을 가중시킨다. 일주일에 2번 정도 커피를 쉬고 있는데 여튼 오늘이 그 날 중 하나이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약수역에 내렸다. 약수역은 항상 전철타고 지나가다 환승이나 하는 곳으로 이름은 매우 익숙한 곳이었는데 이렇게 역 바깥에 존재하는 약수동을 걸으며 찬찬히 살펴보는건 또 처음이었다. 바로 앞에 차들이 바쁘게 향하고 있는 터널이 보인다. 초록빛 담쟁이로 가득 덮인 5월의 금호터널이다. 오, 이런 곳에 그 카페가? 조금 걷다가 골목으로 꺾으려는데 지나칠뻔한 도로변의 장소가 그 카페임을 알고 작은 탄성이 나왔다. 얼핏 보면 화이트 톤의 평범한 카페 같았지만 커다란 접이식 창이 위로 걷어올려져 있어서 카페의 테이블에 앉으면 도로변이 바로 보이는 구조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일반 4인용 테이블 하나와 창문에 붙어있는 일자 테이블이 2개, 테이블당 의자가 2개, 바깥 공간에 좁지만 2인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의자와 테이블 세트 1개 정도의 아담한 규모였다. 특별할 것 없는 인테리어였지만 커다란 냉장고 안에는 직접 제조한 듯 보이는 다양한 음료의 병들이 가득 차있었고 사장님의 키친에도 이런 저런 제조 도구들이 보였다. 친구의 원룸에 놀러온 듯한 아늑한 분위기였지만 바깥의 소음과 지나치게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 공간이었다. 


 메뉴판에는 홈메이드 차이티와 밀크티, 아이스티, 모카밀크, 웜 오렌지쥬스같은 평범한 것 같지만 적혀있는 재료들을 보면 예사롭지 않은 음료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나는 밀크티를 골라 주문하고 창가 자리를 잡았다. 정말 길거리에 앉아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도로가 가까워서 이색적이라고 해야할까. 보통 이런 구조는 뷰가 정말 예쁠 때나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바로 앞에는 좁은 인도로 교복을 입고 시끄럽게 하교하는 학생들과 인근 주민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정겨워보였고 또 그 앞에는 금호터널로 향하는 수많은 차들이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맞은 편의 흔한 가로수 은행나무가 거대한 초록색 물결을 이루며 흔들리는 모습이 이들과 대비되며 오히려 전원적인 느낌을 주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고 온화한 오후의 햇살이 비추고 있어서 가져간 책을 읽기에 좋은 상태였다.


 주문한 밀크티가 나왔다. 한 모금 들이키자 시원하면서도 은은하게 기분 좋은 달달함이 퍼졌다. 어디에서도 마셔본 적 없는 밀크티의 맛을 음미하며 이 카페의 매력이 무엇인지 서서히 깨닫게 됐다. 해바라기꽃잎에 망고가 들어간 밀크티라니. 망고는 워낙 좋아하는 과일이지만 해바라기 꽃잎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맛 본 적이 없다. 아마도 혼합되어 본래의 맛은 또렷이 알아채기 어렵겠지만 얼마나 많은 조합을 시도해보고 연구했을지 섬세한 사장님의 성격과 노력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퍼졌다. 


 작은 카페엔 나처럼 혼자 온 여성 손님들이 창가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다른 테이블 역시 사람들이 어느새 꽉 찼다. 수시로 테이크아웃 손님들이 드나들기도 했다. 이런 정성이 느껴지는 카페라면 대단한 컨셉이나 포토존 인테리어, 보여주기식 비쥬얼의 메뉴가 없어도 알아서 손님이 찾아오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다른 메뉴들도 궁금해졌는데 이미 다시 찾아오기로 마음을 먹은지라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아마도 논커피에 대한 갈증으로 시작했을 카페. 나처럼 커피의 노예에서 하루쯤 해방되고 싶은 분들께 꼭 필요한 오아시스가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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