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fewriter Jun 22. 2023

시그니쳐 커피

 처음 가보는 신상 카페에서 무엇을 주문할지 고민하다가 눈에 띄게 별표를 해둔 시그니쳐 ㅇㅇ커피를 주문하게 되었다. 평소같으면 그냥 아메리카노를 마시겠지만 왠지 신비로운 네이밍에 궁금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주문한 커피엔 크림이 잔뜩 올라가 있는 것도 모자라 초코 파우더가 잔뜩 뿌려져 있었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커피가 아니라 거의 디저트인데? 세상에서 가장 단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나라에 관광 오는 외국인들의 입장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뭘 잘 모르니까 더욱 시그니쳐 커피에 낚일 수 밖에 없을텐데 에스프레소밖에 안마시는 이태리 사람들은 거의 항의를 하고싶은 심정일 지도 모르겠다. 시그니쳐는 그야말로 그 업장을 대표하는 메뉴이기 때문에 바리스타 또는 사장님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일텐데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이윤 창출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메뉴로 변질되어가고있다.

역시 사장님의 자존심은 매출에서 나오는 걸까? 맛보다는 인스타에서 눈길을 끌만한 비쥬얼이어야 하고 끝도 없이 첨가되는 기상천외한 재료들, 가격은 당연히 거기서 제일 비싸다. 커피에 흑임자나 티라미수, 땅콩 같은걸 도대체 왜 넣는 걸까? 디저트와 커피는 구분하는게 맞지 않을까? 


 커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카페를 판단할 때 커피보다 중요할지 모르는 베이커리류 또한 갈수록 설탕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도넛의 민족을 만들어버린 노티드부터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츄러스, 몇 년 전 광풍을 일으킨 크로플, 모두 그냥 빵도 모자라 설탕을 팍팍 뿌리고 크림을 채우고 아이스크림 탑을 쌓고... 이러다가는 당뇨의 민족이 되는 거 아냐?


 생각보다 초연하게 본질에 집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보다. 당장의 유행에 휩쓸리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꾸만 새로운 것을 추가하고 하다보면 애초에 내가 무엇을 잘하고 원했었는지 잊게 된다. 나 역시 아직도 내 시그니쳐 역량이 뭔지 모르겠어서 자꾸만 이것도 해봐야지 저것도 해봐야지 하면서 방황중이니까. 다만 20대였을 때와의 다른 점은 전보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취향만큼은 뚜렷해진 것이다. 그리고 예전엔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때의 만족감이 훨씬 컸다면 이제는 나라는 사람의 가치관과 취향을 아는 몇 사람에게 존중 받을 때 훨씬 충만하다. 카페 역시 대중적으로 핫해지는 것이 초반 인지도 상승에는 좋겠지만 결국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런 골수팬이자 단골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전 09화 에스프레소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