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새로 생긴 카페에 가보려고 한다. 그동안 혼자 가는 카페들은 어느 정도 루틴화 되어있었는데 날씨가 좋아지니 자꾸만 돌아다니고 싶어진다. 에스프레소바가 언젠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약수동의 한 카페가 스탠딩 형식의 에스프레소바를 처음 시작했고 (확실하지는 않다.) 연예인 강민경이 방문하면서 매우 유명해졌다. 이후 코로나가 찾아왔는데 오히려 짧게 마시고 자리를 뜨게되는 에스프레소바가 더욱 효율적으로 다가왔다. 기가 막힌 성당뷰를 찾아내 명동의 랜드마크가 된 에스프레소바도 있고 체인점까지 거느린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에스프레소바들은 이탈리아가 본고장인데 나 역시 로마 여행을 갔을 때 처음 접해봤다. 물을 타서 마시는 아메리카노에 익숙하고 차가운 아이스 메뉴와 진득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자리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먹힐지는 의문이었다. 그 당시에 갔던 에스프레소바에서 맛본 그라니따는 에스프레소에 차가운 우유를 슬러시화해서 함께 섞어 먹는 메뉴였는데 스타벅스도 없고 뜨거운 커피만 파는 이탈리아에서 찾은 천상의 맛이었다. 하지만 나같은 관광객을 제외한 로컬들이 마시고 있는 건 쓰디 쓴 에스프레소였다. 왠지 워커홀릭 중년 남성 으른이나 마실 것 같은 이미지의 커피였다.
오늘 가는 카페를 보아하니, 이제는 새로운 컨셉과 함께 끝없이 한국식 에스프레소바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당동에는 요즘 새로운 핫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시장 골목 근처 가구 상점들 사이에 자리잡은 이 카페는 에스프레소바이지만 무려 3층 규모를 자랑한다. 진열장처럼 보이는 신기하게 생긴 비밀문을 밀고 들어가서 주문을 하면 메일박스의 키를 주는데 진동벨이 울리면 그 키의 번호가 적힌 메일박스를 열고 주문한 커피를 꺼내면 되는 시스템이다. 직원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지만 막상 진동벨이 울리니 급한 마음에 문구 확인도 하지 않고 진동벨은 직원에게 건내버리고 우당탕탕 메일박스를 열었다. 거기에는 진동벨도 키도 이 곳에 넣으면 된다고 쓰여있다. (머쓱) 3층에는 거울 달린 옷장같은 것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어서 뭐가 3층이라는 건지 두리번 거리다가 직원분께 여쭤봤더니 옷장문을 열면 테이블이 나온다고 했다. 이런 새로운 곳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고 어리버리 하고있는 내 모습이 조금 부끄럽다.
나는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옆자리에 화려한 복장을 한 20대 추정 여성 두 명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대화 소리를 들어보니 중국인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생긴지 얼마 안된 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건지 궁금했다. 역시 인스타겠지? 인스타의 힘은 위대하다. 그녀들이 입고있는 유행하는 옷이나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 역시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과 구분이 가지 않는다. 나 보다 이 공간에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중국인이 한국식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바에 앉아있는 이 아이러니라니. 마치 내가 시킨 오렌지 그라니따와 흡사한 모습이다.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니까 오렌지와 에스프레소가 어울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켜봤지만 창작자 역시 나와 같은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섞이고 있지만 사실은 완벽하게 어울리지 않는다.
내 자리 옆에 있는 오래된 유럽 상점처럼 꾸며진 진열대를 구경하기 위해 잠시 일어났다. 컨셉에 맞게 엽서들과 근사한 만년필, 깃털이 달린 펜, 잉크, 스탬프 등을 판매하고 있다. 빈 노트가 있길래 신나서 낙서를 해보려고 했지만 무엇을 잘못한건지 손에 온통 잉크가 묻어버린다. 아무것도 적지 못한 채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었다. 컨셉에 충실한 멋지고 흥미로운 공간이지만 편안한 분위기는 아니어서 일찍 자리를 떴다. 요즘에는 인스타용 카페가 따로 있는걸까? 오늘도 나는 낡은 사람이 되지 않기위해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자 호기롭게 신상 카페에 도전했지만 기세가 한 풀 꺾여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