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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fewriter Jun 23. 2023

여자 셋

 평일인데 유난히 카페 안이 바글거리는 날이었다. 딱 하나의 자리가 남아있었는데 바로 옆에 세련된 아주머니 세 분이 앉아계셨다. 테이블에 먹음직스러운 딸기잼 스콘과 휘낭시에가 담긴 접시와 라떼아트가 그려진 커피들이 야무지게 한 상 차려져있었다. 하트모양의 거품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온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간만에 각 잡고 글을 쓸 생각으로 노트북을 펼치고 되는대로 써재끼기 시작했는데 옆 테이블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보니 자꾸 그분들이 하는 얘기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었다. 여자 셋은 대화하기 딱 좋은 합이다. 둘은 친하지 않은 사이라면 가끔 대화의 주제가 너무 한정적이거나 끊길 수 있고 넷부터는 인원이 많아 대화가 겉핥기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데 셋은 뭐랄까 주거니 받거니 질문하고 대답하고 맞장구치며 황금비율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데 최적화되어 있다고 본다. 


 세 사람의 나이는 약간씩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4~50대 구성인 듯 했고 민소매 니트에 가디건을 걸친 모습이라든지 셋팅된 웨이브펌 머리, 우아한 디자인의 라탄햇을 쓴 모습이 이 동네에서 돌아다니시는 어머님들 스타일은 아니었다. 처음엔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찜질방에다 아예 연 결제를 통으로 해서 그렇게 매주 관리를 받는다. 무슨 찜질방에서 관리를 받아. 근데 언니 그게 찜질로 땀도 쏙 빼고 옆에 관리실이 따로 있어서 피부관리 해주는거라 전신 관리가 된다. 몸 마사지도 해주고 얼굴도 종류별로 시술 다 있다. 내가 아는 사람중에 그 사람이 피부 제일 좋다. 얼굴에서 아주 광이 난다. 아유 나는 그냥 보톡스 정도만 가끔 맞아. 아, 이제 맞을 때 됐네 참. 누군가의 아름다움 뒤에 숨겨져 있을 노력과 비결에 대해 끊임없이 추리하고 토론하는 그녀들. 나는 어느새 대화에 빨려들어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다음엔 본격적으로 그녀들의 주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운전을 해줬으니 카페에서 계산은 당신이 하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다같이 질색팔색을 하다가 또 다른 사람이 대단한 비밀 얘기를 시작하려는듯이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연예인인 지인 이야기라고 했다. 연예인 지인에 관한 썰이라니. 내 귀는 더욱 쫑긋해졌다.


 연예인 B라고 하자. B를 포함해 친구의 새 집에서 모임을 하게 됐는데 모두들 간단한 집들이 선물겸 와인 한병, 꽃다발 등을 사왔는데 B는 등산하고 바로 왔다며 등산용 간식으로 가방 속에 챙겼던 바나나 한송이를 꺼냈다고 한다. 웃어 넘기고 음식을 밖에서 먹기로 하고 나왔는데 친구에게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을 실컷 얻어먹은 후 B는 자기 양에 부족하다고 투덜대는 글을 SNS에 올렸다고 한다. 아마도 난 이렇게 많이 먹는데 날씬하다는 표현을 하고싶었던 것 같았다. 그런 뻔뻔함에 대한 썰은 차고 넘쳐서 꽤 오랜시간 계속 되었고 모두들 기가막혀 하다가도 깔깔깔 신나게 웃어댔다. 이런 얘기를 듣다보니 나도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었고 생각보다 대화의 패턴들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그동안 여러번 관계에 있어 손절을 거쳤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친구 관계가 어떤 정확한 기브앤테이크 공식으로 이루어진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다. 조건 없던 우정은 철저한 경조사비 계산으로 이어졌고 크고 작은 서운함과 만족감들이 있었다. 이는 가끔 스트레스가 되고 관계의 회의감을 불러왔다. 그런 자잘한 사건들이 이렇게 모임에서 뒷담의 소재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들은 실컷 흉을 보고나니 스트레스가 풀린듯 했다. 그 중 한 여자가 말했다. 어느 철학자가 뒷담화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라 했다며 그냥 시원하게 털고 그 자리에서 잊어버리면 그만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는 예수님이나 공자가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난 다음에 그 사람을 만나면 미안해져서 잘해주게 된다며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어필했다. 유쾌한 마무리였다. 하지만 누구나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과연 나에 대해선 뭐라고 떠들까 하며 찝찝해질것이다. 카푸치노의 거품처럼 꺼지는 관계들은 보통 그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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