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가끔은 카페에 가기 힘들 때도 있다. 바로 요즘같은 장마철에는 밖에 나가기가 너무 싫다. 비도 적당히 와야 움직일만 하지 이렇게 많은 양의 비가 꾸준히 내리면 의욕이 꺾인다. 그렇게 하루종일 집에서 보내다가 오늘은 커피를 쉬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역시나 좀이 쑤셔서 창문을 열고 강수량을 다시 한 번 체크한다. 드디어 비가 그친 것 같다. 동네에 1km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는 카페가 있다. 그 곳은 커피 값이 요즘 시세에 맞지 않게 굉장히 저렴한데(2,500원) 내 스타일의 산미있는 커피를 팔고 있다. 좌석이 따로 없고 평일엔 무려 5시에 오픈을 한다. 원두 판매를 주력으로 하는 곳이라 그렇다. 그 카페가 열 시간이 되어 가볍게 산책할겸 다녀오기로 했다.
테이크아웃 아이스 롱블랙 커피를 주문했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는 싫고 비 온 뒤, 한 층 맑아진 공기를 마시며 바깥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싶어졌다. 우리집은 아파트 브랜드 2곳이 함께 모여있는 대단지 아파트 안에 있는데 그 중 적당한 놀이터 벤치를 골라 자리를 잡았다. 이런게 바로 백수의 특권 아니겠어? 세상 평화롭고 한가롭기 그지없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어느덧 지어진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나무들도 나이를 먹어 제법 울창하고 뒷산까지 있어 그런지 계절이 변할 때 마다 동식물의 변화가 눈에 띄게 다가오곤 한다. 7월이 되자, 서서히 시작된 매미 소리는 돌비 앳모스 사운드 시스템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지금도 매미가 우는 소리를 BGM 삼아 커피타임을 즐기고 있다. 우리집은 11층인데 가끔 이 작은 생명체는 여기까지 기를 쓰고 날아올라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서는 엄청난 성량으로 울어댄다.
매앰!!!!!!!!!!!!!(빼액)
소리에 화들짝 놀라 새벽 5시에 잠에서 깰 때는 당장 살충제를 살포하고 싶다가도 그래 매미니까. 매미라서 참아주고는 한다. 밖에 나가는 길에 아파트 단지 주변의 계단이나 바닥, 화단,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갈색 번데기들이 곳곳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바로 매미의 번데기들이다. 건드리거나 밟지 않기 위해 늘 조심스럽게 피해간다. 길바닥에 흔하게 뒹구는 매미 시체를 봐도 징그럽기 보다는 측은해진다. 내가 매미에게만 이렇게 서사를 부여하고 감정 이입하게 된 것은 그들이 땅 속에서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세상 밖으로 나와 이 짧은 여름 한 달 남짓을 열렬히 울다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후 부터이다. 성충이 된 그 짧은 기간동안 구애하고 짝짓기하고 알을 낳고 죽어버린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그 기간만이 매미의 전성기로 기억되지만 사실 매미의 진짜 생은 땅 속에서 지내는 7년이 아닐까?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인간에게는 단순히 육체적인 전성기 말고, 경제적 성공이나 유명세라던지 연봉이나 커리어가 정점을 찍은 전성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생물적으로만 따졌을 때 매미의 성충기처럼 번식 능력이 절정인 청년기를 전성기라고 가정해 보자. 만약 이 기간이 매미처럼 죽기 직전이라면 어떨까? 재산, 경험과 지식의 데이터를 쌓을대로 쌓고, 정신적으로 가정 성숙했을 때 만약 육체적 에너지도 절정의 상태라면 좀 더 완벽하게 인생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맛을 본다면 과연 우리는 생의 미련을 쉽게 버릴 수 있을까? 죽기 직전에 맞이하는 전성기는 축복일까, 저주일까?
결국 이러나 저러나 ‘죽음’이라는 공통된 결과값이 주어지며 우리에게는 각자의 다른 입력 과정만이 주어진다. 인생의 클라이막스가 청년기이든 노년기이든 거기에 멈춰있지 않고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더 황홀하고 아쉽게 기억되는 것이다. 이렇게 죽음으로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만사가 허무할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전성기만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매미들의 지지부진한 땅 속 삶도, 우리들의 자질구레한 일상도 모두 똑같이 소중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