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드라이브겸 교외로 나왔다. 이 날은 빈티지 의류 도매 창고에 방문하는게 목적이어서 카페를 그렇게 고심해서 고르지는 않았다. 동선상 가까우면서 제일 세련되어 보이는 곳을 얼핏 사진으로만 보고 골랐다. 대형 카페들은 보통 이렇게 1~2시간 가벼운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은 거리의 서울 근교 경기도 일대에 분포해 있다. 주변에는 푸른 산이나 강물, 계곡물이 흐르는 등 아파트숲과는 제법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복잡하고 사람 많은 서울을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쉬고싶은 기분이 들면 이런 카페로 향하게 된다.
요즘엔 교외 대형 카페들도 점점 진화해서 컨셉이나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시설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카페 앞마당에 돗자리를 깔 수 있게 잔디밭을 꾸며둔다던지 카페 내에 커다란 분수나 바위, 조경수같은 것들을 배치한다던지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아이디어이다. 베이커리 규모도 굉장하고 커피는 여전히 알쏭달쏭한 맛이 많지만 대형 카페 특유의 계산법으로 땅값 혹은 경치값이 더 붙는건지 서울 보다도 커피값이 비싼 곳이 많다.
어쨌든 쉬러 오고싶었던 카페이지만 이 곳 역시 사람은 많다. 경기도 인구가 서울 인구의 2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날 찾아갔던 카페 역시 생긴지는 좀 되어서 화제성이 떨어지는 곳임에도 대부분의 테이블에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회색빛의 외관에 과감한 사선 구조를 사용해서 모던하고 시크한 전시관 분위기의 카페였다. 각 테이블은 원형이나 곡선으로 큼직큼직해서 테이블간 간격이 넓어서 제법 여유가 느껴졌다. 아메리카노와 함께 케익을 하나 시켜서 전동벨을 받고 주문한 메뉴를 기다렸다. 5월이지만 스산한 날씨여서 바깥 테라스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우리는 안에 앉아 테라스석에 앉은 손님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앞에 미니 개울가가 있어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도시에 살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이렇게 어떻게든 한 줌의 자연을 느끼러 오는 사람들의 심리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사이 우리 벨이 울리기 시작해서 남자친구가 커피를 받으러 갔다. 잠시 내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있는데 남친이 돌아오는 시간이 길어지자 무슨일이지 싶었다. 조금 더 있자 남자친구가 트레이를 들고 돌아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회용잔에 커피를 줘서 일반 잔으로 바꿔달라는 이야기를 하느라 늦었다고 했다. 우리는 이 문제로 다른 카페에서도 몇 번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다. 실제로 민원 신고를 넣은 적도 있었다. 코로나 기간에는 코로나 핑계로 카페들이 더욱 당당하게 일회용잔을 사용했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지. 설거지를 하면 될 것을? 환경과 기후 문제들로 인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종이 우릴 괴롭히는 시대인데 더욱 더 적극적으로 환경을 망치고 있다니.. 몇 년 전부터 정부에서도 규제를 마련하고 제제를 가하기 시작했지만 몇몇 업장은 여전히 계도 기간을 믿고 매장 안에서도 일회용잔을 사용하고 있다. 어떤 곳은 주말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컵 닦을 시간이 없어서 일회용잔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곳도 있었고, 어떤 곳은 컵이 아예 없다고 하는 기막힌 대답을 하기도 했다. 환경 문제도 환경 문제이지만 종이컵 안에 담겼을 때 변질되는 커피의 맛을 용납할 수가 없다고 남자친구는 이야기했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당연한 것이 상황에 따라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가 다시 강제되고 있는 상황의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