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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fewriter Oct 03. 2023

어느 북한강뷰 카페에서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오랜만에 교외 카페로 향했다. 이미 다른 지점에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브랜드 카페가 새롭게 한 지점을 더 오픈했다는데 바로 '북한강점'이라는 게 아닌가. 이미 북한강변에 위치한 카페들 여러 곳에 가봤기에 이쪽 뷰가 기가 막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아직도 카페를 세울 땅이 남아있었단 말이야? 뷰에 대한 기대를 가득 안고 찾아갔다. 

주차장에 차가 가득 찬 것으로 보여 도로변 임시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아래쪽에 적색 벽돌로 지은 건물과 이 카페의 마스코트인 스마일 얼굴이 보였다. 유명 도넛브랜드 '노티드'도 스마일 로고를 사용하고 있는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 카페가 먼저 스마일을 사용했다. 물론 스타일은 약간 다르지만 이 카페 사장은 왠지 빼앗긴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교외에서 승부를 보기로 한 것일까, 내 멋대로 추측하면서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입구 옆에는 낮은 담이 있었는데 다가가서 내려다보니 바로 코앞에 북한강이 흐르고 있었다. 야외 테이블도 몇 개 있었는데 그냥 얼핏 봐도 죽여주는 자리였다. 건물은 3층규모로 보였는데 들어가 보니 지하에 한 층이 더 있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운영한다는데 요즘 교외에 새로 생기는 카페들은 이런 식으로 다각화를 해서 매출을 더 올리려는 것 같다. 위로 올라갈수록 뷰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대가 살짝 높아서 그런지 1층만 봐도 뷰가 엄청났다. 교외카페에서 흔하지 않은 1인석이 창문 쪽으로 여러 개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와 여기는 혼자 와서 책보거나 노트북으로 일하는 게 더 좋겠는데? 평일에 혼자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층은 역시나 이 지역에서 손꼽힐만한 뷰였다. 사진빨도 아니었고 정말 탁 트인 북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창가자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한 자리가 남아 잽싸게 점프해 착석했다. 3층 루프탑에 올라가 한 번 더 경치를 감상해 주고 1층에서 빵과 커피를 주문해서 가지고 올라왔다. 그렇게 테이블 세팅을 하고 인증샷을 찍기 위해 구도를 잡는데 생각보다 통유리창이 너무 더러웠다. 새똥인지 벌레의 사체인지 빗물자국인지 모를 것들의 얼룩이 가득했다. 아아 이 완벽한 경치를 차지해 놓고 창문 관리를 하지 않다니.. 물론 이 위치에서 창을 닦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내 스마트폰이 최신 모델이 아니라 화질이 덜한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카페의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순식간에 반감되고 말았다. 

갑자기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명언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에 너무 적절한 표현이었다. 최근에 재취업을 한 나에게 지난 한 달은 새 회사와 직무에 관해 가지고 있던 콩깍지를 벗겨내는 기간이었는데 역시 희극이 비극이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원해서 글 쓰는 일과 이 회사를 택했지만 사실 내 멋대로 써재낄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면서 어떤 부분은 또 의도적인 어필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일정 패턴을 가지고 쓰게 된다. 처음 하는 일이라 긴장이 많이 됐지만 생각보다 글 쓰는 일은 매우 쉬웠다. 오히려 그 글을 쓰기 위한 소재를 건지기 위한 노력이 훨씬 많이 필요했다. 조사를 하고 연락을 취하고 설득을 하고 직접 만나 좋은 질문을 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끄집어내고.. 그동안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었어서 그런지 회사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것도 피곤한데 일 때문에 계속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했다. 하지만 뜻밖에 즐거웠다. 그동안 스스로 개선하고 싶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노력할 가치가 있었고 그렇게 탄생한 나의 첫 기사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을 때는 정말 뿌듯했다. 문제는 그것이 유일한 희극이라는 것. 비극적인 부분이 훨씬 많은 곳이 회사이긴 하지만 사실 삶의 상당 부분이 이런 식인 것 같다. 가족 관계도 그렇고 내 건강 상태도 그렇고 진짜 속을 들여다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속을 썩인다고 해서, 모르고 지냈던 종양의 존재를 안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비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까이서 보든 멀리서 보든 내 관점, 내 앵글에 달린 것이고 본 것을 해석해서 어떻게 써나갈지도 결국은 나에게 달렸다. 

요즘의 나는 그냥 모든 것에 살짝 거리를 두려고 한다. 아무리 눈앞에 얼룩과 먼지, 잡티, 오물이 거슬린다 해도 전체적으로 엄청난 리버뷰를 지니고 있는 카페라면 누구나 비극보다는 희극이라고 칭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야 살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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