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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라 Oct 30. 2022

MRI 정밀검사

라구나비치의 추억

본격적인 검진이 시작되었다. 대망에 첫 검사는 오전 8:20분에 잡힌 mri.     


검사전 주의 사항을 꼼꼼히 읽어 본다.   

  

1.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사람:  간단히 말해 몸 안에 금속 물질 있는 사람들(e.g. 심장 박동기를 부착했거나 뇌 수술후 금속 클립이 머리에 있거나 등)은 mri를 받을 수 없음.     
2. 검사실 안으로 들고 가면 안되는 것들: 동전,열쇠,라이너,시계,틀니,머리핀, 안경,보철 기구 및 기타 금속물질, 신용카드,현금카드 등 자성이 있는 모든 카드     
3. 검사 시간: 3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 되며 '금식'은 필요 없음. (다행이다. 허기는 정말 서럽다!!)        



사전 준비사항이 있다고 20분 먼저 오라고 안내 받았기에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지하 1층 mri 영상실에 갔더니 이미 여러 명의 환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병원은 환자도 의료진도 부지런하다. 심지어 채혈은 오전 7시에도 가능함.)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라는 안내에 따라 탈의실에 들어갔다. 휴대폰으로 사물함 번호를 찍었다. 돌아왔을 때 정신이 혼미해져 옷장번호를 잊었을까봐. 처음 받는 mri 에 얼마나 긴장했던지 생전 안하던 짓을 하고 있다. 

탈의실 옷장 번호를 저장해 놓을 정도로 쫄아있던 나


     

팔에 조영제를 투여하기 위해 미리 바늘을 꽂았다. 정말정말 내 몸에 감사한 건 암진단부터 수술 받을 때까지 몸에 바늘 꽂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였는데, 늘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는 거. 견딜만 했다는 거. 어떤 간호사님도 한 방에 다 찔러 줬다는 거. (가끔 혈관이 안 보여 네 다섯번씩 '찔림의 고통'을 당했다는 카페 회원 글에 식겁했는데, 내 혈관 잘 나타나서 고마워. 그리고 암센터 간호사님들 사랑해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mri 통으로 입성하는 순간, 이 폐쇄된 공간 안에서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평소에 공황장애 증상이 있어 워터파크 슬라이드 중, 통이 막혀 있는 기구를 타면 숨이 조여 왔다. 


유방암 검사는 다른 질병 검사와 다르게 똑바로 눕지 않고 엎드려서 진행된다. 맛사지 샾에서 등맛사지 받을 때 자세랑 비슷했다. 상의를 벗고 엎어져 있으니 바닥만 보였다. 정확히는 사각형의 렌즈 비슷한 게 눈 앞에 있었다. 검사 소리가 크다고 의료진이 귀를 막아 주었다. 마스크는 벗어도 된다고 했다. 드디어 들어간다!! 통안으로 둥둥둥!!      


폐소 공포증 때문에 mri 검사를 포기했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어서 내심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견딜만 했다. 엎어져 있다 보니 눈 앞에 뵈는게 없어(위에 언급한 렌즈 비슷한 게 보이긴 했지만) 공간에 갇혀 있다는 공포감이 덜 했다. 쿵쿵쿵 타당타당 공사장 소리, 집수리 하는 것 같은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리긴 했지만, 귀를 워낙 잘 막아놔서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조영제 들어갑니다."     


간호사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살짝 어지럽다. 다행이 금방 가라앉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호흡. 정확한 결과를 위해 절대 움직이면 안된다. 특히 '심호흡'을 하지 말 라고 했다. 숨은 깊이 들이 마쉬지 말고 얕고 규칙적으로.  


긴장을 풀고 가볍게 숨쉬기 위해 바닷가를 상상했다는 카페 회원님의 조언을 따라 나도 그곳을 상상했다.

      

11년 전, 아들과 처음 갔던 바닷가, 캘리포니아 라구나 비치를 떠올렸다. 파도소리, 바람소리, 아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라구나 비치. 태어나서 처음 바다를 본 아들은 하루종일 파도를 밟으며 모래 사장을 뛰어다녔다.   

  

가슴이 뛴다. 울 아들. 나의 이쁘고 사랑스런 아이. 그 애가 처음 바다를 봤을 때 표정이 떠올랐다. 상쾌한 바람 결에  꺄르륵~ 웃음소리가 들린다. 바다만큼 눈이 부시게 파랬던 캘리포니아 하늘. 행복했던 우리 가족. 다시 그런 시절이 올까.  감정의 파도가 밀려오며 심장 박동이 요동친다. 으악!  안돼안돼!! 얕은 호흡, 얕은 호흡. 진정하자 후후후..      


내 바닷가는 평온한 숨쉬기에 1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잽싸게 이미지 교체. 위급할 때 마다 결국 찾게 되는 분. 나의 주님.  그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호흡을 다시 가다듬었다. 주님, 평안을 주소서. 아흑, 여기선 심호흡도 아니 되옵니다.      


다행히 검사가 진행될수록 긴장이 풀리며 엎드려 있는 자세도 익숙해졌다. 검사 막바지에는 너무 편해서 엎어져 잘 뻔 했다. 


이렇게 30여분의 검사를 마치고 통 밖으로 나왔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그저 몹시 피곤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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