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보라 Oct 30. 2022

첫 진료

국립암센터, 담당 의사 선생님과의 만남.

"마르셔서 이 정도 크기면 만져지셨을 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왼쪽 가슴이 찌릿거려 오른쪽은 생각도 못했네요. 지금 와 만져보면 느낌 팍! 오는데. 이제껏 뭐했나 싶어요 바보같이. 사실 불편한 느낌이 꽤 오래전부터 들었거든요. 불안한 생각도 났고요. 그때 유방 초음파를 해 볼걸.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서 그냥 피하고 싶었나 봐요. 하필 코로나도 터지고... 최대한 사람 많은 곳은 안 다니며 살았거든요.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현실은 그저 고개 푹, 죄인 눈빛으로 묵묵 부답.      


다행히 주치의 샘 목소리는 환자에 대한 안타까움, 따듯함이 묻어 있었다. 긴장감이 다소 누그러졌다. 사전 정보 없이 그저 예약 잡아주신 분(그분도 내 주치의 샘에게 검진받는다고 하심)의 추천으로 결정한 선생님이었지만,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에 1.5cm로 보이는 암덩어리가 하나 있어요. 일단 자세한 검사를 진행한 한 후에 치료방향을 말씀드릴게요."

     

그렇게 시작한 정밀 검사. 하루에 다 하진 못하고 2주에 걸쳐 4일 동안 진행되는데 오늘은 심전도와 흉부 엑스레이, 유방 촬영을 안내받았다.     


정신없이 신랑 손에 이끌려 검사실을 다녔다. 검사실이 한 곳에 몰려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신관에 갔다 본관에 갔다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처음엔 길 찾느라 애를 먹었다.  왜 이렇게 한눈에 안 들어오는지. 낯설고 복잡한 병원. 처음엔 모든 방이 미로처럼 보였다. 보호자인 신랑이 앞장서서 데리고 다녔길래 망정이지 혼자 왔다면 그로기 상태에 빠졌을 듯. 첫 진료만큼은 보호자와 함께 가는 걸 추천한다.     


심전도나 흉부 엑스레이는 어렵지 않게 끝났다. 문제는 공포의 유방 촬영!


가슴을 아... 플라스틱 판 위에 올려놓고 위에서 짓누르는 데(많이 눌러서 유방이 납작해질수록 방사선 노출이 적고 유방 내부가 잘 보인다나) 진짜 눈물이 찔끔 났다. 아 C 현대 의학 기술로도 아직 이렇게 밖에 촬영 못하는겨? 정말 너무너무 X 10000  아프다. 얼굴 크기만 한 빨래집게로 뺨을 한가득 꼬집어 최~대한 누르면 이런 고통이려나? 암 환자는 더 세게 누르는 건지, 평소 건강 검진 때 보다도 훠얼씬 더 아팠다.

     

검사를 마치고 나와 신랑 얼굴을 보는데 눈물이 핑~ 속상하고 서럽고 짜증 나고... 이제 겨우 시작인데 앞으로 또 어떤 검사가 진행될지 덜컥 겁이 났다. 제발 유방 촬영 같은 고통은 없었으면.      


그렇게 병원을 나오는 중 울리는 카톡. 



주차장까지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쉴 새 없이 눈물을 닦았는지...     


뒤이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앞으로 용돈 보내지 말란다. 너 치료에 보태 쓰라며. 닦을 새도 없이 눈물이 줄줄 흘렀다. 많은 돈을 드린 것도 아니었는데.   

  

불효다.  엄청 불효다.  부모 앞에서 아픈 게 세상 최고 불효다.     

중학교 때 남동생이 공부 안 하고 담배 피우며 방황할 때도, 여동생이 돈을 홀라당 이상한 펀드에 날리고 카드 빚을 졌을 때도 부모님이 이렇게 잠 못 자고 비통해하진 않으셨다. 이제껏 내가 삼 형제 중 제일 효자라며 얼마나 큰소리쳤던가. 


집에 오자마자 철퍼덕 누웠다. 검사 기계들이 온몸에 기운을 다 빨아버린 느낌이다. 처음엔 검사가 하루 만에 끝나지 않고 4일에 걸쳐 있어 번거롭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당하고(?) 보니 이걸 한 번에 다 했다간 내 정신이 너덜너덜 해졌을 것 같다. 


이전 04화 내가 아닐 이유는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