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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라 Oct 30. 2022

암에 당첨되었습니다.

지이잉     


휴대폰이 울렸다. 평소 모르는 번호 (070-000-0000, 02-0000-0000 대출, 보험)는 끊어버리는데 [031-8**-****] 이 번호는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이** 환자분이시죠? 여기 000 산부인과인데요. 오늘 방문하실 수 있으신가요? 보호자랑 함께 오세요.]     


원래 조직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은 내일모레였다. 이틀이나 먼저 연락을 했다는 건 분명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는 뜻. 설마…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물었다.     


"뭐가 나왔나요?"

     

[상급 병원에 가셔야 할 것 같은데요.]     


맞구나. 암이구나. 예감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오늘 언제 가면 될까요?"

     

[오후 3시 반에 오실 수 있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호흡이 가빠지며 눈물이 차올랐다. 옆에서 운전하는 신랑에게 말했다.       


“나… 암인가 봐.”     


“뭐?”     


“암 이래. 상급 병원 가야 한다고… 오늘 병원 오래. 3시 반.”     


“그럼 지금 가자. 어차피 병원이 여기 근처잖아. 기다리다 보면 좀 더 빨리 진료 볼 수도 있을지도 몰라.”     


타이밍도 기가 막히지. 전화를 받던 순간, 나는 병원 옆에 있던 백화점에서 학원 선생님께 줄 선물을 산 후 주차장을 막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예약된 진료시간보다 3시간이나 먼저 와 접수를 한 후, 무작정 순서를 기다렸다. 대기실에서 앉아서 본 환자들.  간호사님은 그들에게 친절하게 수술 날짜, 주의 사항 등을 알려준다. 여기서 수술받는 걸 보니 저들은 암이 아니겠구나. 맘모톰 시술로 혹 몇 개 정도 제거하려나… 그들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이** 님, 들어오세요.]     


담당 선생님은 조직검사 결과 암이고 1.5cm의 악성 종양이 발견되었고 그래도 이 정도면 초기이니 다행이라고 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친절한 선생님이 진짜 진짜 걱정하지 말라며 티슈를 건넸다. 공포로 얼어있던 마음이 다소 따듯해졌다.     


상급 병원에 가기 위해 조직 검사 결과지와 CD를 받아 산부인과를 나왔다. 병원 앞에서 차를 기다리는데 아기를 꼭 품에 안고 행복해하는 부부가 옆에 서 있었다. 오늘은 날씨도 좋네. 햇살이 눈부시게 밝았다. 이 환한 한 평 공간 속에서 누군가는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고 누군가는 죽음의 그늘에서 숨을 조이고 있다.   

  

대부분 사람은 암 진단을 받으면 일단 충격을 진정시킨 후, 검색이나 지인 등을 통해 여기저기 유명한 병원이며 명의를 알아볼 텐데, 원래도 동작이 엄청 빠르신 우리 신랑은 내가 멍하니 있는 틈을 타 가까운 국립암센터로 직행, 다음 주 초진 예약을 단번에 끝냈다. (이로서 난 주치의를 그저 진료 예약 잡아주신 분의 추천으로 정해버린 셈. 결과적으로 좋은 샘을 만나긴 했지만, 여보야 적어도 내 가슴 맡길 의사는 주변에 한번 물어보고 정해야 하는 거 아님?)     


     

건강보험 중증환자로 변신




예전엔 그냥 ‘건강보험’이라고 쓰여 있던 진료 내역서에는 ‘건강보험/중증질환자/암질환’이 추가되었다. 병원비가 갑자기 엄청 저렴해진다. (암환자는 5%만 본인부담) 아, 나 진짜 중증 암 환자구나, 실감이 났다.     



이렇게 2022년 2월 22일. 나는 공식적으로 유방암 환자에 당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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