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보라 Oct 30. 2022

내가 아닐 이유는 없다

유 퀴즈; 웹툰 작가 이대양

3월부터 근무하기로 한 학교에 연락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줄줄이 대기 중인 정밀 검진과 학교 생활을 병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학교에 들러 교실에 있던 물건을 정리한 후 교감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옆에 계신 실무사님(작년에 암 수술을 받으셨던)이 내 손을 꼭 잡으신다.      


"걱정 진짜 안 해도 돼. 맘 편히 가져요. 우리 가족 중엔 암환자가 정말 많아. 근데 다~들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     

그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마스크 사이로 번지는 눈물을 쉼 없이 닦아냈다.      


걱정 마, 괜찮을 거야.  원래 이런 종류의 말(추가로 '힘 내')에 크게 위안받는 스타일 아닌데, 암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말하는 '괜찮아'의 온도는 달랐다.      


실무사 님의 따듯한 온기를 안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문을 닫고 운전석에 앉은 순간, 참았던 울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나는 말 그대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엉, 엉. 이렇게 서럽고 슬프게 아이처럼 꺽꺽대며 울어본 적이 언제였더라....     


이 와중에 처음 겪는 이 생소한 경험을 저장해 보고 싶단 생각이 번뜩 스쳤다.  아까 첫울음이 젤 처절했는데... 지금이라도 녹음해 볼까?  됐다. 아직 그 정도 변태적 여유는 없었다. 후-후- 한참 동안 심호흡을 한 후 시동을 걸었다.      


집에 돌아와 신랑 얼굴을 보자 또 눈물이 터졌다. 나의 희로애락에 늘 섬세하게 반응해 주는 사람인지라 이렇게 울어버리면 저 사람이 아플 걸 알면서도 이 눔의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말없이 토닥토닥.... 그렇게 신랑 품에서 또 한참을 훌쩍였다.     




오늘부터 세상의 모든 사람이 딱 두 종류로 보이기 시작했다. 암을 경험한 자와 경험하지 않은 자.     


티브이를 켜니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 퀴즈가 나온다.       

명성, 재력, 인기가 아닌 그가 그저 암 환자가 아닌 것이 부러웠다.      


초대 손님으로 공학박사 출신의 웹툰 작가 분이 나왔다. 공대 연구원으로 잘 나가다 육아 때문에 학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웹툰을 그렸다는, 대충 그런 얘긴 줄 알았다. 그런데 뒤 이어 나온 그분의 놀라운 사연!      

림프종 4기 암으로 투병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항암으로 지난한 싸움을 하면서도 웹툰을 단 한 번도 휴재 없이 마감했다는 사실.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가 내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암이라는 게 너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암 병동에 가면 늘 사람이 많지만  젊은 사람은 저 밖에 없는 것 같고...  
근데 어느 날 대기실에 털모자를 쓰고 환자로 보이는 꼬마가 앉아 있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아.. 나라고 아닐 이유가 없구나. 나는 밤샘도 하고 술도 마시고 실험실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짚이는 데라도 있는데...  내가 아닐 이유는 없구나.   

    
유 퀴즈, 이대양 자기님. 현재는 항암을 마치고 추적 관찰 중이라고 하심.








나 역시 그랬다. 왜 나일까?(올 한 해, 열심히 달리기 위해 많은 계획들을 세워 놓았건만) 아직 암을 맞이 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 아닌가?  내 친구들은 아무도 암에 걸리지 않았고(이런 걸로 1등이라니), 암을 겪은 지인 대부분도 나보단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유방암 카페에 가입하고 보니, 30대뿐 아니라 20대 환자들도 있었다. 취업을 위해 치열하게 준비한 시험에 1차 합격 후 2차를 앞두고 암 선고를 받은 사람, 결혼을 6개월 앞둔 신부 등 꽃 같은 나이에 암 선고를 받은 사연은 읽기만 해도 가슴이 아팠다.      


유방암 환우 대부분은 암을 '교통사고'에 비유한다. 예고 없이  갑자기 당한 운 나쁜 사고.       


그러니 나라고 암에 안 걸릴 이유는 없다.      



이전 03화 암에 당첨되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