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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라 Oct 30. 2022

건강검진

유방초음파, C4A

부위에 따라 다르다.     


돼지고기는 부위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등심과 안심, 앞다리와 뒷다리, 목살과 삼겹살.      


나는 몸의 어느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지는가에 따라 공포의 크기가 다르다. 머리가 아프다고 뇌종양, 위가 쓰리다고 위암, 생리통이 심하다고 자궁암을 의심해 본 적은 없다. 머리가 아프면 에라 두통! 견디다 괴로우면 타이레* 한 알. 속이 쓰리면 이놈의 위염! 겔포*랑 개비스*. 생리통이 오면 이지*을 먹고 핫팩을 배에 두르면 끝.

          

그런데, 가슴. 정확하게 유방이라 불리는 여자들에게만 도드라진 그곳. 거기가 아프면 유난히 신경이 쓰인다. (지금 생각해보니 처음 통증을 느꼈을 때 검진을 받았다면 결과가 좀 더 좋았으려나?) 그곳이 언제부터 따끔거렸다.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계속 불편했다. 특히 반복적으로 왼쪽 유방에서 통증이 왔다. 인터넷에 나온 자가 촉진법을 따라 해 봤지만 도통 감을 잡기 어려웠다. 손끝으로 가슴을 눌러보면 멍울이 있는 것 같다가도  사라지는 것 같고, 어떤 날은 그냥 기분 탓인 듯싶다가도 신경 쓰일 정도로 아프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픔의 주기가 빨라졌다. 예전엔 한 달에 한두 번 느꼈던 불편한 감각이 2022년 들어서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느껴졌다.  



안 되겠군. 어차피 올해 건강 검진 대상이니 겸사 이번 기회에 확인해보자. 2년 전 처음 유방 검진을 받을 때는 기본 항목인 ‘유방 촬영’만 했었지만, (국가 건강 검진에서는 ‘유방 촬영’만 한다. 자세한 검사를 원하면 꼭 ‘유방 초음파’를 신청하자) 이번엔 영 신경이 쓰여 ‘유방 초음파’를 추가로 신청했다.   

   

생애 처음으로 받아보는 유방 초음파. 의사 선생님께 왼쪽이 불편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정작 그곳은 스윽 지나가더니 선생님의 손이 오른쪽에서 한참을 머문다.     


“오른쪽에 모양이 안 좋은 혹이 있어요.”     


선생님은 내 손을 잡아서 왼쪽 가슴 아래를 직접 만져보게 하셨다. 어랏! 뭐가 잡힌다.     


“조직 검사 받으셔야겠는데요. 일반적인 혹들은 가장자리가 깨끗한 타원형이 대부분인데, 이 혹은 경계가 울퉁불퉁해요. 진료 의뢰서 써 드릴 테니 다른 병원 가서 조직검사받으세요.”     


그렇게 받은 나의 진료 의뢰서 


[종양 크기 1.4cm, C4A]



맥박이 빨라진다. C4A를 미친 듯이 검색한다.      


C4A= 암 가능성 3-10%, 조직검사 필요.      


집에 오자마자 C4A와 관련된 검색 글을 미친 듯이 긁어모았다. 


"그거 나오면 대부분 섬유 선종이에요. 걱정 마세요."

"저도 조직 검사받으래서 울고 불고 했는데 결국 양성 혹이었어요." 

"절대 네이버 검색하지 마세요. 세상 우울해짐.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검사받으세요."      

"저희 엄마는 그거 진단받고 조직검사했는데 암 진단 나왔어요."     


암 일수 있다. C4A는 암일 수 있다... 그 말이 묵직하게 가슴을 쳤다. 나 진짜 암에 걸릴 수도 있구나.      


코로나로 연일 사망자가 폭발한다는 뉴스에도 꿈쩍 않던 내가 3-10% 암 발생률에 극도로 쪼그라들었다. 

너는 가족력도 없고 초음파는 원래 주관적인 건데 혼자서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니냐며 신랑이 놀렸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온통 암, 암, 암.. '암'놈으로 가득 차서 유튜브에 ‘수술 후 피해야 할 음식’이나 ‘재활운동’까지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음은 이미 준비된 암 환자였다. 요새 들어 목이 불편했는데, 초음파를 하면 갑상선암도 나올 것 같았다. 


조그만 증상에도 정신이 널뛰기를 했다.


유방암 증상을 한참 검색하는데, 가슴에 통증이 왔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유방암은 오히려 통증이 없어요."라는 글에 안도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한 곳에서만 느껴지는 통증은 유방암일 확률이 높다"는 기사에 다시 긴장했다. 그러다 다른 쪽 가슴이 아프기 시작하면 '역시 이건 단순한 유방통이야.'라고 스스로 희망적인 진단을 내렸다.


그러다 '통증'보다 '멍울'이 잡히는지 확인하라는 글에 다시 심장이 벌렁벌렁.(내 경우 오른쪽에서 멍울이 발견되었으므로) 대부분 혹은 양성인 경우가 많다고 하니 다시 안심…… 할 줄 알았지만, '양성인 줄 알았던 혹이 유방암이더라'는 말에 불안감 다시 상승. 

    

"선생님, 2년 전에 유방암 0기여서 수술했는데 다른 쪽에 전이가 됐어요. 왜 이럴까요?" 여기서 불안감을 넘어 공포 지수가 신고가를 경신. 어쨌든 암이라도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단 말에 다시 안심.      



이렇게 자꾸 가출하는 정신을 붙잡고 조직검사를 위해 인근 유방 외과를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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