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라는 오지의 숲을 탐험 중입니다>

5. 너의 세계: 나는 다 알지 못하는

by 이지
너의 세계: 나는 다 알지 못하는


6살 첫째 아이의 감정을 나의 감정과 분리하는 것이 요즘 내게 숙제 같다.

짜증을 내는 아이에게 "왜 짜증을 내는 거야?"라며 묻는 나의 말에는 이미 짜증이 전염되어 있다.

신기한 것은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저 짜증을 낼 때 풍기는 뉘앙스는 나에게서 배운 것이 틀림이 없다.


사소한 것에 감정이 사방팔방 튀는 물감처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를 바라볼 때 얼룩덜룩해진 것은 아이의 감정뿐만이 아니라 나의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세 번 겨우겨우 참아야 결국 결론은 파국이다.

감정을 공감해 줘도, 인정해 줘도, 차분히 말해서 상황종료가 되는 적이 별로 없는 듯하다.

한 상황이 끝나면 다른 상황이 오고 줄줄이 기차처럼 이어지는 6살의 칙칙폭폭은 결국 내가 간신히 붙들고 있는 이성적 철로를 파헤치는 듯하다. 너무나 어렵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나는 매번 주워 담을 수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엄마가 소리 질러서 미안해" "나도 미안 엄마" 아이의 눈에 이미 눈물이 맺혀있다.


수많은 육아서적과 육아이론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결국은 반복되는 이 상황

잘해주고 싶은 내 마음만큼 잘 되지 않는 현실 속에 그냥 나는 죄책감만 쌓이는 엄마가 된다.


우리 엄마는 30살 중반이 되어가는 나에게 아직도 어렸을 적 해주지 못한 미안한 것들을 말하신다.

흘러간 시간은 붙잡을 수 없고 미안함도 자책감도 후회도 결국은 과거에 멈춰있다. 엄마에게 "엄마가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라는 말을 들을 때면 미안해하는 엄마에게 적잖은 위로를 해드려야 한다. 왜냐면 엄마는 나의 엄마니까 이러나저러나 지금 내 모습이 있기까지 나를 키워주신 그 사랑의 깊이는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세월이 흘러 내가 60대가 되고 딸이 30대가 되었을 때 나도 똑같이 자녀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며 지낼까? 엄마의 미안함은 사랑의 표현인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좀 더 다른 모습의 사랑을 자녀들에게 표현하고 싶다. "넌 지금도 예전도 정말 사랑스럽고 나에게 너무 소중해" "우리 서로의 자리에서 애쓰며 이렇게 컸구나."

자기 전에는 꼭 미안한 것, 고마운 것을 이야기한다. 내가 분리시키지 못한 감정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남기고 싶지는 않다. 흔적이 남아도 내 마음에 오늘 미안한 것은 사과를 해야 마음이 편하다.


육아라는 나의 현실은 확장하는 자녀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을 보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저 오늘 하루의 나의 좁은 시야가 너의 세계가 얼마나 확장되고 있는지를 볼 여유가 내 안에 없었던 것이다.


한걸음 물러서서 너의 감정을 바라보고 너의 성장을 응원하며 보듬어 주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좁은 시야가 그저 표면으로 들쑥날쑥 튀어 오르는 감정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다 알지 못하는 너의 세계가 크고 있구나” 바라보며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는 그 신비함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길 원한다. 언젠가는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의 모양도 조금 달라져있지 않을까? 나는 여전히 고민을 가지고 오지의 숲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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