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혹은 아침에 남은 밥?
노노, 나는 자랑할 만큼 알뜰하거나
가족이 남긴 밥에 그리 너그러운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화려한 브런치라든가 5첩, 7첩 반상은
솜씨도 안되거니와 아까운 시간을 잡아먹기도 하고
나중에 치울 때를 생각하면
그리 현명한 일이 못 되는 것 같아서 슬쩍 피해 가지만
그렇다고 끼니를 때운다는 느낌은 싫다.
직장을 다니고 있든 집에서 일을 하든(재택근무든 전업주부든)
그리고 나와 달리 먹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타입이라도
점심시간, 즉 런치타임은 고수하는 편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런치타임이라는 것이 있어야 오전과 오후가 구분되고
그런 경계가 있어야 할 일들이 분류되고 정리가 되는 법이다.
식사시간이 두리뭉실해지는 순간 재택근무는 끝장이니까.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도 이유일 것이다.
떡볶이나 비빔국수처럼 당장 입맛을 만족시켜 주는 음식을 거침없이 먹을 수 있는 나이는 안타깝지만 이제 지나온 거라고 봐야 한다.
여전히 떡볶이와 비빔국수를 사랑하지만 현미떡이나 현미국수를 응용한다던가
몇 가지 채소를 섞어 만든 샐러드를 곁들여 먹는다거나 완벽한 식단은 아니더라도
신중해져야 할 것과 조심스러운 부분이 확실히 늘어났다.
그래도 '아 나이 드니까 피곤해'라는 생각보다는
'그래 그동안 너무 즐겼지'라는 기분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어쩌겠는가. 수명이 길어진 거지 노화가 늦춰진 것도 아니고
병이 늦게 찾아오는 것도 아니니..
인류의 오랜 숙원이었던 '수명연장'이라는 혁신이 모처럼 이루어지려는 찰나
'뭐야, 노후만 길어진 거잖아' 투덜거리며 찬물을 끼얹고 싶진 않다.
물론, 디저트를 포기한 것도 아니다.
달달한 케이크나 도넛은 꽤 눈치 봐야 하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여름에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라든가 얼음 가득한 우롱차, 말차라테 정도는
거뜬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재스민이나 달콤한 허니밀크티 같은 것도
여전히 즐긴다.
집에서 먹는 혼밥이지만 우리 어머니들이 그랬고 그 어머니들이 그랬듯
식구들이 남긴 것들로 대충 먹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모든 걸 준비하는데 15분, 길어도 20분을 넘기지 않는 선에서
그날그날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놓고 보고 싶은 드라마나 책을 세팅하면
나만의 즐거운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먹다 보면 갑자기 세상이 단순해지면서 꽤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다.
잘못을 빌게 있거나 부탁하고 싶은 용건이 있으면 지금이 타이밍이다 싶을 정도로
인생 별게 있나 싶고 이것도 용서가 되고 저것도 이해가 되는 쿨해지는 순간~
맹목적으로 단순해지는 것을 경계하려 하지만 더 깊이 골똘히 생각해 본들 이득 될 게 뭐란 말인가.
인생은 단순하게 사는 사람이 승자다 싶다.
과거의 일을 굳이 소환해 후회하거나 억울한 감정을 되살려 포크로 고기를 찍어버리는 일은 당장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없거니와 더더군다나 런치타임에 어울리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일이 당연하게도 건강에 도움 될 리도 없다.
지금 나는 당장은 안전해 보이는 실내에 들어와 있고
먹을 음식이 눈앞에 있으며 그걸 들 말짱한 팔과 손이 있다는 것,
지금 그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더 감사한 것이 있을까. 그래 당장은...
식사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은 알 것이다.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을 한 번이라도 잃어본 사람은 지금을 챙길 수밖에 없다.
무조건 즐겨야 한다. 주어진 아무 날도 아닌 일상에.. 감사히..
그런 면에서 에이모 토울스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할 만 하다.
일상적인 것의 즐거움과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십중팔구 쓸데없는 위험 속에 몸을 담갔다고 보면 된다.
'지금 밥 먹을 때가 아니야, 밥이나 할 때가 아니야 '가 아니어서..
차분히 앉아서 눈앞에 놓인 밥에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순간,
혼밥은 그렇게 갑작스러운 감동을 안기는 동시에 떠벌리지 말고 조용히 즐기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비로소 나는 스스로에게 옹졸해지려는 생각을 그만 접기로 하고 식사에 집중한다. 그야말로 미식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니 찰나가 되었든 운이 좋아 그것보다 조금 긴 시간이 되었든 일단 즐기고 볼 일이다. 겸손하게.
<목살 소테>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날은
아무리 혼밥이라고 진정시켜도 위가 날뛴답니다.
냉동해 둔 목살을 꺼내고(다들 냉동고에 있으시잖아요^^)
냉장고에 굴러 다니는 *무를 찾아서 고기가 익는 동안 갈아둡니다.
(사실 이게 나만의 포인트, 감칠맛은 물론 소화에 아주 도움이 된답니다)
그리고 초록색은 들어가야 하니까
역시 냉동해 두었던 브로콜리를 꺼내
센 불에 *타듯이 구워주는 것이 비법이에요~
기분이다, 버터를 조금 얹어주고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로 마리네이드 해둔 파프리카를 꺼내 장식하면
보기도 영양도 그만인 목살소테 완성.
*혼밥이라고 무조건 윈디시여야 한다는 생각만 바꾸면 의외로 술술 풀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