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육고기 국수

_혼밥 하다 셰프 됨

by 하이움

가을장마..

봄에도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벌써 장마가 시작된 거야? 내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

이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경계가 없어지는 걸지도 몰라.

태국을 안 가도 되겠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섞어 말하며

미처 피지도 못한 꽃잎들이 맥없이 떨어지고 마는 풍경을 망연히 바라보았었는데

지금은 물들 새도 없이 서둘러 말라버린 나뭇잎들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는 걸 보다니..


단풍이 아니라 낙엽이 되어서 떨어지는 잎들..

밤새 비가 내리고 아침이 되어서도 밤처럼 비가 내리는 오늘,

가을의 청명함은 어디로 간 걸일까.

여름과 달리 한결 부드러워진 햇살을 등으로 가득 맞으면서 산책에 나섰다가

태양이 붉은빛을 남기며 느릿느릿 넘어가는 때에 와인을 열어보자던

우리의 기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날은 도저히 와인을 마실 기분이 들지 않는다.

우리가 지불할 수 있는 가격으로는 좀처럼 좋은 와인을 만나기도 힘든 데다

날씨마저 이런다면 와인을 꺼내 들 수가 없다.

축축한 공기는 유혹스럽기는 하지만 올해는, 최소한 당장은 쓸모가 없어 보인다.

와인을 여는데도. 우리가 만나는데도..


그리고 이불을 바꾸는데도.

지난 계절의 이불은 반드시 햇살을 필요로 한다. 개운하게 말리고 싶은 것이

이불인지 나인지 헷갈리지만 뭐가 되었든 일단은 내다 걸어야 한다.

다정하고 세심한 가을 햇살에. 건조한 공기가 이렇게 절실할 줄이야.

보통 건조하다는 건 그다지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건조한 피부, 건조한 머리칼..

이렇게..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갈망의 대상이 되어서 목을 빼게 만든다.

물기 없는 하늘이 어디쯤 있으려나.. 언제나 오려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의 부주의한 생활방식들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여전히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플라스틱 통, 매일같이 버리는 비닐 쓰레기봉투,

나의 잦은 여행 습관.. 그런 게 문제였던 걸까..

우리가 조금씩 쓰레기를 줄이고 무언가를 살 때는 신중하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를테면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식으로 뭔가를 호소하고 싶었지만

잔소리를 포함한 남한테 말하기란 언제나 쉬운 법이라서 그만두기도 한다.

그냥 내 일을 하자. 그마저도 미루어 놓은 날들이 많지 않았던가.

그러니 매일의 나의 일을 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벌떡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변기를 닦고 빨래를 널고 요가를 하고 장을 보고

휴지를 채워 넣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일회용 그릇이나 물티슈를 쓰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저녁을 만들고 쓰레기를 내놓고 그리고 읽고 쓰기를 반복하기.

반드시 의심을 내려놓고.


그러다 보면 어느날 말간 가을이 노크해 올지도 모른다.

어서 빨리 물기 없는 공기를 춤추듯 산책하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집안을 닦고 싶다.

우리가 와인을 마시면 더 좋고.



고상하고 진지한 사유는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매일 해야 하는 집안일에는 고민해 봐야 소용없다. 내 일거리가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고

자는 시간만 늦출 뿐.


그냥 할 것, JUST DO IT.


도대체 이런 문구를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재치가 있는 것인가.

짧고 심플하게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것, 나는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남지 않게 요리하는 것, 남은 건 다음날 바로 해결할 것.

그래서 오늘은 고기국수다.

매일 고기를 먹어야 하는 남자들 덕분에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로 매일 돌려 막기 하는 기분이다.

사실 어제 고기국수를 한번 해 먹고 싶어서 조금 넉넉히 수육을 삶았다.

수육 역시 *압력 밥솥을 이용해서 삶는데 된장을 살짝 발라 익혀주면 잡내 없이 살살 녹는 고기를 만날 수 있다.


<수육고기 국수>

1. 육수나 생수에 고기만 먹으면 안 되니까 총총 썬 배춧잎을 가득 넣고 가쓰오부시 간장을 넣고 끓인다.

2. *현미 국수를 삶아서 접시에 담고 육수와 썰어놓은 수육을 가득 얹고 김으로 장식한다.

3. 샐러드를 따로 담아 추가하면 끝


*배춧잎은 숨이 죽으니까 이리 넣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득 처음부터 넣어서 익히면 달큰하고 맛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