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마지막 레이스가 달콤한 법
가장 괴로운 것은 새벽에 깨는 것이었다.
당시(불과 얼마 전만 해도)는
눈부시고 밝은 아침이 아니라
이기고 버텨내야 하는 하루라서
아침마다 겁이 났지만
그래도 홀로 깨어있는
새벽보다는 아침이 나았다.
깜깜하고 무심한 새벽은
너무 많은 걱정과 피곤을 데려왔다.
차분히 독서를 이어가거나
글을 쓰면서 보냈으면 좋았으련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영혼과 에너지만 갉아먹을 뿐이었다.
결단을 내린다.
가장 건전하고 현명한 방법으로
이겨내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커피'를 포기하기로 한다.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일단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한 조각의 위안이라도 남기고 싶었던 걸까.
당분간이라는 전제를 달고서.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든 재개할 수 있어'
미심쩍지만 위안이 된다.
평생이라고 해도 좋을 시간 동안
나에게 루틴이라는 게 있었다면
매일 같은 시간 모닝커피를 즐겼던 것과
점심 식사 후 다시 한잔의
커피를 마셨던 일일 것이다.
거의 하루도 거른 일이 없었고
회사에 출근할 때는
커피 향으로 시작해서
꼭 커피 향으로 끝이 나곤 했다.
집에서 쉴 때야 말로
우리(커피와 나)가 서로를 제대로
알아가는 시기였고
함께 하는 기쁨은 너무나 달았다.
누군가가
'무인도에 가져갈 세 가지'를 꼽으라고 했을 때도
커피는 빠질 수 없었다.
그야말로 Coffee is my life였다.
그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거의 아니, 아예 없었기에
우리가 헤어져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살다 보면
잠 못 드는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자야만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존재했다.
이 방법은 먹혔다.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잘 자고 일어난 아침이면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커다란 바위처럼 느껴지던 것들이
치울 수 있는 돌로 보이기 시작했고
하나씩 옮기면 될 것만 같았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잘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
그건 숙면만이 가능하게 했다.
삶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하느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내어주자..
커피를 끊는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진 않았다.
오히려 무너졌다고 생각한 세상을
다시 일으켜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집에는 커피가 있고
커피 주변을 서성거린다.
걷다가 마주친 카페에 눈이 가고
어떤 종류의 커피가 있는지
흘끔흘끔 보는 것은 고쳐지지 않는다.
남편의 커피를 딱 한 모금 마시거나
여행지에서의 아침은 남기더라도
여전히 커피를 주문하고 있지만
일상은 다양한 차나 음료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그걸로 족하다.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 나름이다.
커피를 끊어야 한다는 슬픔보다는
녹차가 그렇게 좋다는데
허브티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데
시도해 볼까 열린 마음이 되었고,
홍차가 좋아서 수입의 대부분을
차와 알록달록한 홍차잔을 사는데
쏟아붓는 친구를 이해하게 되었으며
절대 발을 들여놓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로코코풍의 홍차가게도 동행했다.
심지어 버터가 듬뿍 들어간
빅토리아 케이크를 보고
환호성을 질러댔으니.
이렇게 세상의 슬픔과 아픔,
고통과 기쁨을 번갈아 맛보면서
허용하고 타협하고 화해하는 동안
더 괜찮은 내가 되어 가는 거겠지.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또 다른 취향들이
저 너머에서 내 눈치를 보며
기웃대고 있는 듯하다.
그래 환영할 거야. 다만 천천히 오렴.
남편을 잃은 빅토리아 여왕의 상심이
꽤 컸나 보다.
그냥 스펀지케이크도 달달한데
딸기잼과 크림을 듬뿍 얹어 먹었다니..
깜짝 놀랄 만큼 달콤한 맛에
그만 마음이 뺏겨 버려
다른 건 잠시 잊게 되는 걸까.
기도하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지.
그게 아픔을 견디는 방법이었는지도.
나 역시 케이크에 자주 현혹당한다.
내풀로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그 정도지만
우아하고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과
차는 뭐든 잊어버리기에 충분하다.
그래.. 커피가 아니어도..
차와 케이크를 열심히 먹고 있자니
남편이 혈당과 콜레스테롤을 걱정한다.
"내비둬, 난 지금 기도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