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수영

_마지막 레이스가 달콤한 법

by 하이움

숨 막히듯 타오르던 태양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덥고 여전히 땀이 줄줄 흐르던

여름날 오후.


습기가 가득 찬 창문 너머로

비가 모든 풍경을 지우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오전 강의가 끝나고

한무리들의 사람들이 빠져나간

수영장은 조용하다.


혼자인 나는 새로 산 수영복을 입고

스트레칭을 하는 둥 마는 둥

발가락을 살짝 물에 담가본다.


비가 내려서일까

예상보다 차가운 물기운에

움찔 발가락이 옹송거린다.


내가 원했던 걸까..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즐거운 적도 있었지.

물장구를 치고 잠수하며

깔깔깔 웃어대던 아이와의 여름..


그 여름 그러니까 지난여름 나는

바지런히 움직일 뭔가가

너무 절실했으므로 그런 걸 따지고 말고

하기 전에 가야 했다.


가야 해.. 가야 해.. 어디든 가야 해.


생각보다 나는 잘 미끄러져 들어간다.

물속에 머리를 박고

잃어버린 반지라도 찾을 듯이

바닥을 응시하며 나아간다.

아주 천천히..


평영은 머리를 제법 깊숙이 넣고

리듬을 타듯이 오르락내리락

웨이브를 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그때였다.

뭔가 뜨거운 것이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고

이내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나아간다.

레인을 몇 번이고..


마침내 고개를 들었을 때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비 오는 날의 수영장은

마치 거대한 수족관 같다.

내게 주어진 고통과 고독의 시간들을

유영하는 기분.


물고기들은 어떤 꿈을 꿀까..


물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마치 내가 원했던 장소가 여기였다는 듯,

그 사실을 바로 직전까지 몰랐을 뿐

찾아야 할 것을 찾았고,

반드시 도착해야 할 장소에 온 것처럼

어느새 나는 자유로웠고

마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수영장과 내가 하나가 된 것 같은,

그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수영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저 아이와 하는 놀이,

혹은 어릴 적 엄마손에 이끌려 가야했던

따분한 기억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영하는 법을

용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고

제법 물과 잘 어울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바깥 세상이, 물 속이,

내 두 눈이 온통 흠뻑 젖어서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을 즈음

마침내 고개를 들고 일어났을 때

나는 분명히 느꼈다.

회복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 뒤로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수영장을 다닌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샤워를 하고,

젖은 수영복을 빨아야 하는 것이

여전히 귀찮고

추운 겨울날의 그 오싹함이

너무나 싫증나지만 해내고 있다.


바로 그날의 기억 때문이다.

흠뻑 젖은 채로 숨을 고르던 동안

내 안의 삶의 희망과 열정이

다시 부풀어 올랐던 놀라운 느낌..


독서, 글쓰기, 산책이라는

오랜 습관 말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필요한 일이었다.

혹시 아는가 의외로

'고통과 괴로움을 단박에 떨쳐내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의 주인공이 될지.


지금은 달리기를 흘낏 거린다.

역시 해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지만

수영이 그랬듯

내일이라도 강둑을 달리고 있을지도.


실제로 내 주변에는 아이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달리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더 이상 눈물을 감추기 위해 모자를 눌러쓰지 않는다.


어느새 아픔을 넘어선 그들에게

모자와 선글라스는 멋내기 최애템이 되었고

오로지 노년의 건강을 위해

심박수와 평균페이스를 체크할 수 있는

워치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어쩐지 모두가 즐거워 보인다.


세상은 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 얼마든지 널려 있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지 말고,

뭐라도 해볼 것!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건 정말이다.


다 가져가진 않는다는 것,

그뿐 아니라 때때로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스윽

내쪽으로 내밀면서

삶은 나를 도로 데려다 놓는다.


세상 한가운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