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마지막 레이스가 달콤한 법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지난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도전과 변화를 즐긴다고
줄곧 여겨왔지만 알고 보니
늘 가던 곳에서 물건을 사고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심지어 여행마저도 남들이 보면
돈 아깝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늘 가던 곳에 가면서 만족하고 있었다.
달리기나 감사일기를 쓰면서
삶이 달라졌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솔깃했지만 늘 조금은 수상쩍었고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냐?
나하고 안 맞을 거야..'
지레짐작으로 멀리하곤 했다.
그 모든 것의 감사함을 알게 된
지금 되돌아보면
그저 나는 게을렀던 것 같다.
한동안 무탈하게 살았던 나는
쉽게 무너졌고 고작 이 정도의 시련에
바닥까지 다 드러낸 꼴이었고
무력했고 부끄러웠지만
달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가족들이 나가면 나는 널브러지곤 했다.
고통스러운 날들이 어떤 날은 지겹고
또 어떤 날은 뭉텅뭉텅 사라지곤 했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과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래도 햇살 같은 마음은
어느 정도 들여놓고 싶어서
따뜻한 영화들을 찾아보았던 것 같다.
넷플렉스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영화,
<인턴>도 그중 하나였다.
그 영화가 10년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벌써..
어떤 것은 정말 지나치게 빨리
우리를 스쳐간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같은 책이라도
감동의 포인트가 달라지듯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번 봤지만 한 번도
눈여겨본 적 없는 한 문장이 들린다.
저렇게 나이 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근사한 표정의
로버트 드니로의 내레이션.
'일어나면 일단 문을 열고 나가라'
난 줄스는 아니지만
벤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어진다.
나이가 들고
하나 둘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가지만
여전히 말끔하고
여전히 미소를 짓는
벤을 따라 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옹송거린 채 숨어 있는다고
누가 알아주거나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건
지금까지 살아봐서 알잖아.
이 정도의 사건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잘 받아들이면 되잖아.
순하게..
모든 것을 통과하고 나면
나도 저런 멋진 표정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잖아.
벤이야말로
'마지막 레이스가 달콤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화의 힘은 컸다.
나는 당장 노트북을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외출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다.
당연히 영화 속 뉴욕시만큼
인파는 없지만
사람들 곁으로 가서 섞인다.
그날로 나는 요가와 수영을 등록했고
앞서 전한 이야기처럼
저녁에는 거의 매일 7 천보를 걸었다.
여전히 많은 부분이 혼란스럽고
트레이닝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는
스스로가 어색하지만
아무래도 훨씬 낫다.
숨쉬기 운동 말고는 딱 질색이라 생각했던 내가
계단을 봐도 돌아가지 않고
뛰어 올라가다니..
과연 그건 작지만 신선한 기쁨이었다.
그 모든 한가운데서
여전히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만큼 마음대로 되는 게 없지만
그래도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듯하다.
삶을 사랑하고자 들면
지도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마음에 다시 사랑의 씨앗을 심고
그 작고 여린 씨앗을 돌보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하며
조심스레 일 년을 보냈다.
의심을 거두니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눈에 띈다.
난감할 정도로.
최근에는 또 다른 목표물을 발견했다.
발레.. 얼씨구~
의심 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분명 반길만한 일이지만
이건 너무 나간 거 아냐?
몸치라는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요가를 하면서도 매일 느끼지 않았던가.
왜 나는 그 흔한 뜨개나
우아한 자수에도 소질이 없는 걸까.
툭하면 엉뚱한 데 코를 뜨고 있거나
수를 놓고 있으니
옆에 누가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고
악기란 악기도 죄다 친하지 않으니
몸으로 하는 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데
나의 슬픈 한계가 있다.
그래도 흥은 있어 가지고 음악이 나오면
몸을 가만히 두질 못한다.
매일 엇박을 해대는 나의 몸부림에
'뭔가 체계적으로 배워볼 필요가 있겠어'
클래식 음악도 좋아하니
발레도 좋을 것 같고
팝을 좋아하니
댄스를 배워봐도 신날 것 같다.
언감생심,
발레라든가, 댄스라든가
옛날 같으면 부끄러워서
말도 못 꺼낼 일이지만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이 이런 걸까.
뭘 해도 전같이 부끄럽지 않고
뭐 어때, 하는 좋은 건지 어떤 건지
모를 배짱이 늘어
게을러서 행동에 옮기는 못하는 거지
남사스러워서 못하는 것은 확 줄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같이 배우자는 말에
남편이 더 부끄러워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우주적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어.
저 우주에서 보면 난 점보다 작을 걸?
누가 신경 쓴다고 괜찮아~~"
이 나이에 무슨 발레냐고 하겠지만
근육이 늘어나고 균형감각이 좋아지면서
낙상사고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나랑 딱 맞는 게 아닌가.
물론 하다가 뼈를 부러뜨리는 수도
있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아쉽게도
주변에 발레 하는 사람이 없다.
붙잡고 물어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쉽지만
한 번이라도 꼭 도전해 보고 싶고
안된다면 댄스라도 배워보고 싶다.
댄스가 결코 만만해서 하는 소리는 아니고
발레보다는 학원도 흔하고
예전에 한번 체험한 적이 있는데
어정쩡한 나의 동작에 웃음이 터져서
아무튼 엄청나게 유쾌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뭐가 됐든 많이 웃을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일을 올해는
하나만 더 내 일상에 보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