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슬픔

-Here Comes The Sun

by 하이움

아버지...

새해가 밝았네요

어릴 때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면 제일 먼저 머리맡을 확인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김없이 산타 부츠를 닮은 빨간 부츠 과자 선물이 놓여 있었지요.

당연히 아버지가 놓아뒀을 선물을 당시는 알지 못한 채 마냥 행복했던 그 모습을

아버지는 어떤 표정으로 지켜보셨을까요

크리스마스이브 밤 아이가 잠들기만 기다려 몰래 선물을 놓아두는

아버지의 즐거운 마음을 지금은 저도충분히 알고도 남습니다.

그런 추억이 있어서인지 아님 나를 닮아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빤짝거리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아들 때문인지

크리스마스가 들어 있는 연말이 저는 늘 좋았습니다.

캐럴을 12월 한 달 내내 틀어 놓아도 질리지 않았지요

어릴 적부터 부지런한 개미라기보다는

베짱이 쪽에 가까웠던 저로서는 아무래도 한해를 설계해야 하는 새해보다는

한해를 자축하며 즐기는 연말이 속편 했던 거겠지요

그러던 것이 올해만큼은 새해가 너무 절실해 한밤중부터 마중 나가 있었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밤이 지나고 드디어 저 멀리 수평선 너머

말간 새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크리스마스 여행 준비로 한껏 들떠 있었던 날,

긴급 입원에 정밀 검사를 끝내고 수술 결정만 남겨 놓은 상태라는 전화를 받았지요.

얼떨떨했지만 정신을 차리려 애썼고

아버지는 용기를 내어서 다시 한번 수술을 받겠다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아버지의 좋았습니다.

아버지 연세가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의료진을 믿고 싶었고

아버지를 믿었습니다. 당연히 크리스마스 여행은 취소되었고

25일 수술 날짜에 맞춰 병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시 걸려 온 아버지 전화는 그래요 지금 생각해도 떨리는 것이었습니다.


“딸.. 천천히 내려와 아버지 수술 안 하기로 했다..”


1분 채 되지 않는 그 순간 모든 세계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그때

문밖에는 눈이 오고 있었던가요...


“언제 죽어도 억울하지 않은 나이다 그래놓고선 욕심이 생겨서..

살고 싶어서 수술을 받는다고 그랬네 이 나이에.. 사람 마음이 그러네...”


아버지..


“나 3년 전 수술했을 때도 힘들었다 아이가. 지금은 더 나이를 먹었고,

수술 후유증으로 남은 시간 누워만 지낼 수도 있다 하는 데 그게 더 힘들 것 같다.

멀쩡한 정신으로 그리고 멀쩡한 다리로 걸어 다니면서 너희 엄마하고 대화도 하고

니들도 더 보고 갈 때 되면 정신은 있는 상태에서 그냥 갈란다, 수술은 아닌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드라마 대사 같다는 생각만 들뿐..


새로운 한 해가 막 시작되었고 아버지와 통화를 할때


“새해에는 더 좋은 일 있어야지 우리 딸!!

아빠 괜찮다, 새날이 돼서 그런가 기분도 좋아, 수술을 포기한 거지

내일 당장 죽는 거 아이다 이러다 100세 찍을 수도 있다 하하하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내 나이가 여든이 넘었는데

옛날 같으면 장수한 거 아이가, 이러나저러나 노후는 다 시한부인기라~~~”


늘 아버지의 유머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날만큼의 아버지의 유머가 너무 슬펐습니다.

그래도 아버지

새해가 온 것이 저도 좋습니다.

머지않아 곧 날이 풀릴 것이고 봄도 오고 꽃도 피겠지요.

새 봄과 새로운 싹을 틔우는 나무들을 보다 보면

아버지의 낙담한 마음이 조금은 일으켜지고

꽃바람이 들어갈 자리가 조금은 만들어지겠지요.

아버지,

내년에는 우리 같이 해맞이하러 가기로 해요.

바다가 보이는 곳이면 좋겠지요..

아버지가 좋아하는 바다..

그래서 저도 좋아하는 바다..


지금은 그 좋아하시는 낚시도 소주도 일절 멀리해야 하시지만

그때는 모래밭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낚시 의자를 놓고 담요를 나눠 덮다 보면

새해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겠지요.

기다리는 시간에 비해 억울할 정도로 금방 떠오르는 해를 보고 나면

아버지가 좋아하는 맑은 복국 먹으러 가요.

그때는 좋아하시는 소주잔도 기울이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우리 이야기는 끝이 없을테지요..


무슨 말을 하던 중이었을까요

그래요 아버지 새해 인사를 하고 있었네요

많은 것이 회복되고

많은 것이 위안이 되는

좋은 한해 맞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