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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ax May 07. 2024

신윤복 <월야밀회>

금기를 건드린 화가의 재치 있는 농담

신윤복, <월야밀회>, 28x35cm, 18세기 말


달빛이 환한 밤, 담장 밑에 두 남녀가 서 있다. 낮이 아니라 인적이 없는 밤에 만나고 있다는 점과 사람의 키보다도 높은 담장 바로 밑에 서 있다는 점에서 이 만남은 밀회임이 틀림없다. 남성은 여성의 허리를 감싸 안아 서로 몸을 밀착시키고 있으며 둘의 고개 방향과 시선으로 보아 곧 입맞춤을 할 듯하다. 이 은밀한 만남 뒤에는 이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하나 있다. 녹색 쓰개치마를 어깨에 걸친 채 발이 일(一)자가 되도록 몸을 담장 벽에 바싹 붙이며 이들을 은밀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인물들의 옷차림일 것이다. 신윤복은 그의 작품에서 풍부하고 화려한 색감을 사용하여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곤 했다. 이 작품에서는 인물들의 옷차림으로 이들이 누구인지 유추해보게 된다. 


남성은 전복을 입고, 군인들이 쓰던 갓인 전립을 쓰고, 왼손에는 휴대용 무기인 철편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 포교나 군관으로 보인다. 남성의 신분은 의복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으나 작품 속 여성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비교적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여성들의 풍성한 머리는 여염집 아녀자의 머리 같기도, 가채를 쓴 기생의 머리 같기도 하다. 작품 속 상황에 대해서도 정확한 정보가 없어 세 인물의 관계에 대해서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다. 신윤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품 속 인물에게 다양한 질문을 떠올리게 하여 이 밀회를 더욱 은밀해 보이게 만들었다. 


신윤복은 풍속화를 그리기 이전에 조선 왕실의 공식적인 그림을 담당하던 도화서의 화원이었다. 그는 정해진 내용과 형식을 엄격히 지켜 그림을 그려야 했던 도화서에서 벗어나 한양을 떠돌며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신윤복이 주된 소재로 선택한 것은 ‘양반과 기생의 유흥’ 그리고 ‘남녀 간의 만남’이었다. 이를 통해 당시 시대상을 잘 드러내고 그 속에 작가인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다. 


조선시대는 개인이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다. 특히 이성을 연모하는 사사로운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더더욱 금기시 되었다. <월야밀회>는 달빛 아래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 남녀와 이를 바라보는 더 은밀한 눈빛을 그림으로써 욕망을 억압하는 당시 사회에 던지는 재치 있는 농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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