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룸미러」
모빌리티는 시대를 읽는 키워드가 되었으나 문학과 연결고리는 느슨하다. 국내외적으로 『서유견문』,『열하일기』, 『오디세이아』, 『리어왕』, 『돈키호테』등 이동을 모티브로 천착한 세기의 걸작들은 넘쳐난다.반면 모빌리티 인식을 기반으로 문학 작품을 사유한 사례는 미미한 편이다. 현대는 이동성이 범람하는 사회다. 다양한 이동 매체와 첨단 모빌리티 테크놀로지를 제외한 인간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시대의 거울인 문학 분야에서도 이동 매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모빌리티 수행과정에 천착한 문학 작품 해석은 시대의 재해석이며 사회를 관통하는 인식의 재발견이 될 것이다. 더하여 문학과 다소 거리감이 있는 모빌리티 테크놀로지의 예술적 가치 추구는 문학 분야를 넘어 예술계 전반에 시너지 효과를 추동하리라는 예감이 든다.
김숨 소설 「룸미러」는 ‘길 위의 장르’로 교통 시스템이 사건의 주요 무대다. 도로에 범람하는 교통수단은 사회의 얼굴이다. 수백만 원 단위부터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자가용, 생계 수단인 물류 수송용 트럭, 관광버스, 배달 오토바이 등은 물신주의, 사회 계급을 표상하는 하나의 기호다. 소설은 집을 떠나 목적지를 향하여 이동 중에 서사가 전개되어 이동 중에 결말에 이른다. 이때 이동 수단은 가족이 임시 체류하는 거소가 된다. 즉 집이 정주에 근거한 안정된 공간이라면 교통수단은 집을 떠나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잠시 머무는 장소로 불안정한 공간이라 하겠다. 이동 중에 체류지는 사이 공간이다 사이 공간의 불안정성은 경제적 약자의 현실 삶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생계 위기로 대별 된다.
「룸미러」의 사건은 어린 사내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부부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화자는 아내다. 소설의 배경 공간은 자가용으로 가족의 이동을 모티브로 한다. 가족은 남편의 이모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에 가는 길이다. 외자식인 남편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어릴 적부터 가장 역할을 해왔고 친척 대소사까지 빠짐없이 챙긴다. 아내가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는 오롯이 남편이 책임지고 있다. 남편은 두 달 전에 직장을 옮겼다. 가장의 잦은 이직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원인이다. 고용불안은 가장의 심리 불안으로 이어진다.
남편의 불안 심리는 아이들이 잠들었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행위로 드러난다. 야근 중에도 집에 수시로 전화하여 아이들이 잠들었는지 확인하고 잠들지 않았다고 말하면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는다. 퇴근해 오면 잠든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티브이 볼륨조차도 낮춘다. 가장의 강박 행위는 가족이 차를 타고 이동 중에도 계속된다.
남편은 차선을 바꾸면서도 룸미러로 뒷좌석의 아이들을 흘끔 살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깨어나기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해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의 두 눈동자가 흘끔 룸미러를 향하고 얼굴이 긴장하듯 굳었던 것이다. (「룸미러」 본문, 183-184쪽)
남편은 운전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룸미러로 아이들을 살핀다. 그의 모든 신경은 온통 아이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불안의 근원은 아이가 태중에 들면서부터였다. 남편은 자신을 닮은 아이가 태어날까 두려워했다. 첫째와 둘째 모두 남편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의 불안감은 증폭된다. 그가 자식에게 갖는 심적 부담은 외모가 닮은 꼴이라서가 아니다. 물질이 지배하는 세계의 질서는 부의 대물림 가난의 고착화를 양산했다. 남편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은 가장의 책임감뿐이다. 어머니는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무방한 친척의 대소사 참석을 강요한다. 남편은 일종의 채무 의식으로 어머니의 뜻을 따른다.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처지에서 집안 대소사 챙기기, 가족 부양은 심리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남편은 자신의 삶을 답습할 두 아이가 부담스럽다 못해 두려운 존재로 각인된다.
조상의 희생과 업적 덕분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부채 의식은 강요나 다름없으며 두려움과 공포심의 근원이다. 어머니와 자식에 갖는 남편의 채무 의식은 오랜 관습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부모에 받은 채무 의식, 가장으로서 자식에 대한 책임감은 그를 억압의 기제가 된다. 남편이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는 첫째 요인이 생계 위기라면 둘째 요인은 거부할 수 없는 관습이다. 따라서 남편이 룸미러를 강박적으로 살피는 행위는 경제적 어려움과 탈출구 없는 현실, 불투명한 미래 불안에서 기인한다.
02편 연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