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림 Oct 25. 2024

경쟁사회, 10퍼센트 파이를 위한 각축전

김숨 「룸미러」

01편 연속


  1980년대부터 한국 사회에 자가용 보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한 가구당 한 대의 자동차 시대가 열렸다. 자가용 소유가 일반화되면서 차는 경계 계급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화자의 가족이 탄 차는 1998년에 출고된 금색 베르나다. 소형으로 분류되는 베르나는 주인공 가족의 경제 사정을 표상한다. 

한남대교에서 반포대교를 지날 때 가족의 베르나와 트럭이 나란히 달린다. 트럭 적재함에는 도살장으로 가는 돼지가 실려있다. 베르나는 마포대교에서 트럭을 앞서 나간다. 돼지 운반에 동원된 소형 트럭보다는 베르나가 속도 경쟁에서 우월적 위치를 점유한다. 통상적으로 돼지 운송은 남편의 직업보다 열악한 생계형 직업군의 일이다. 베르나의 트럭 추월은 겨룰만한 대상이라는 인식을 추동한다. 돼지 운반 트럭을 따돌린 베르나는 흰색 승합차와 마주친다. 추월을 노리던 승합차는 아슬아슬하게 베르나를 앞지른다. 4차선을 달리던 덤프트럭이 예고도 없이 3차선으로 달리는 가족의 차 앞으로 끼어들었고 남편은 순식간에 2차선으로 밀려난다. 덤프트럭은 물리적 크기로 보아 베르나가 대적할 만한 상대가 아니다. 

  속도 경쟁이 벌어지는 도로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표상한다. 깜빡이 없이 끼어들어 베르나를 위협한 덤프트럭은 운행 규칙을 어긴 것으로, 불법 편법이 난무하는 부조리한 사회의 전경이다. 남편은 무법천지인 도로 환경 세계에 환멸을 느낀다. 유턴하여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너무 멀리 와 있는 데다 유턴 구간도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도로라는 거친 삶터의 경쟁 구도에 지친다. 지나온 삶을 되돌릴 수 없듯이 집이라는 안정된 공간으로 돌아갈 길은 막혔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무리하게 끼어든 흰색 승합차, 4차선으로 달리다 깔아뭉갤 듯 3차선으로 밀고 들어온 덤프트럭은 베르나에 탑승한 가족의 삶을 위협하는 외부요인이다. 사회 집단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가는 현존재는 개인의 힘보다 외부에서 도래하는 힘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살 수밖에 없다. 자유 경쟁 체제로서 시장 메커니즘은 공정이 기반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경쟁 규칙의 공정성은 희망일 뿐이다. 특정 사람들, 즉 사회 지배권력의 이로운 방향으로 시장 질서는 재편되어 있다. 베르나와 덤프트럭의 질주는 불공정한 게임의 기표다.     


선인장연구소라고 적힌 표지판을 지나면서부터였다. 최고제한속도인 90킬로를 훌쩍 넘겨 110킬로까지 치닫던 속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60킬로까지 떨어지더니 40킬로대까지 떨어졌다. 40킬로를 정점으로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더니 아예 멈춰 서고 말았다. 남편이 옴짝달싹 않는 앞차를 향해 클랙슨을 짧게 울렸다. 그는 클랙슨 소리가 아이들을 깨우기라도 할까 봐, 손으로는 클랙슨을 누르면서도 두 눈으로는 룸미러를 흘끔거렸다. (196-197쪽)     


  가족이 탄 베르나는 조금씩 주행속도가 떨어진다. 이는 경쟁 생태계에서 도태되는 남편(가족)의 현주소를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가족의 베르나가 달리는 차선이 개인 가족에게 주어진 삶의 길이라면 무리하게 끼어든 차들은 개인이 넘어설 수 없는 사회라는 외피의 힘일 것이다. 남편은 위험을 피하려 최선을 다하지만 차 안이라는 거소, 즉 가정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가족의 베르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공간을 내달리는 차종에 있다. 돼지를 실은 트럭, 덤프트럭, 승합차는 통상적으로 부유층의 이동 수단이 아니다. 베르나와 경쟁하는 트럭은 자가용이라기보다 서민 계층의 생계유지 수단이다. 전 세계 부의 90퍼센트를 세계 인구의 1퍼센트가 가지고 있을 만큼 양극화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소설에서 가족의 베르나와 경쟁하는 차량 운전자는 모두 서민 계층으로 삶터에서 경쟁은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

  양화대교 부근에서 차량 정체가 시작되고 어디선가 날아온 새 떼가 “돼지들의 살점을 뜯어 먹기라도 할 듯 공격했다.”(210쪽) 서민들의 일상은 정체되어 가고 생존 투쟁은 치열하다 못해 잔혹하다. 「룸미러」의 도로 환경 세계는 90퍼센트의 파이를 고작 1퍼센트 부자들에게 빼앗기고 남은 10퍼센트의 파이를 두고 99퍼센트 빈자들이 벌이는 혈투가 난무한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고급 외제 차는 소형 베르나나, 트럭, 승합차와는 경쟁 대상조차 될 수 없다. 따라서 도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구조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장소가 된다. 

  부의 편중을 해결할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으며 양극화는 갈수록 극심하다. 예를 들자면 불과 10년 사이 동네 구멍가게는 자취를 감췄다. 대기업 상표를 단 편의점들이 골목 상권을 점유하면서 취약계층의 먹거리는 그만큼 줄어들었다. 정치와 경제 두 영역은 분리할 수 없다. 현 정부는 대기업의 법인세 감면, 상속, 증여세 완화와 같은 소위 부자 감세 정책에 매진하고 있다. 지나친 포퓰리즘도 경계해야 하나 균형 잃은 정책은 사회 취약계층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가족 해체, 결혼 회피, 딩크족 양산은 기형적인 한국 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룸미러」의 도로 환경 세계는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이다. 


03편 연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