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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림 Oct 25. 2024

결필과 동결, 그리고 죽음

김숨 「룸미러」

02편 연속


  가족의 베르나를 둘러싼 도로 질주는 위협적이다. 힘의 논리에 의해 재편되는 물질사회의 은폐된 얼굴처럼 어떤 규칙도 질서도 없다. 덤프트럭이 3차선으로 달리고 있는 가족의 차를 깔아뭉갤 듯이 덤벼든다. 남편이 급하게 2차선 방향으로 핸들을 꺾는 바람에 차체는 심하게 흔들린다. 가족의 삶 전반이 위협을 받고 있다. 뒤따라오던 차들이 가족의 베르나를 향해 경고 클랙슨을 울려댄다. 남편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남편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이지만 위험은 고스란히 가족 몫이다. 가정의 운전자인 남편은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부당한 압력에 무력감에 빠진다. 고작 욕설만이 방어기제로 작동한다.     


“미친 새끼!”

남편은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룸미러를 흘끔거렸다. 뒤에서 달려오고 있는 차를 살피는 것일 수도, 뒷좌석의 잠든 아이들을 살피는 것일 수도, 그 둘 다일 수도 있었다. (196-197쪽)     


  남편의 욕설은 첫째, 덤프트럭 운전사를 향한다. 물리적으로 베르나를 위협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자식을 겨눈 정황으로 읽힌다. 남편은 자식이 태어나기 전부터 부담스러운 존재로 인식해 왔다. 자식이 잠들기를 바라는 심리도 부담감에서 촉발된 것이다. 셋째, 무기력한 그 자신이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딱 한 번 돼지를 실은 트럭을 추월했을 뿐 승합차, 덤프트럭, 버스에 번번이 밀려난다. 직장에서도 설 자리를 잊은 그는 입사와 퇴사를 반복해 왔다. 남편은 경쟁에 취약한 인물이다. 그의 욕설은 자기혐오와 더불어 자신이 처한 불행을 타자, 즉 아이들에게 돌리려는 태도를 보인다. 

  ‘미친 새끼’라고 욕설을 뱉으면서도 남편은 룸미러로 뒷자리에 자식들을 살펴본다. 아이들은 여전히 잠에 빠져 있고 도로는 정체상태다. 계기판의 속도는 점점 떨어진다. 그의 삶은 한 걸음도 앞서가지 못하고 있다. 도로에 멈춘 차는 이들 가족의 정체된 삶의 메타포다. 가족은 정체 원인도 모르고 차 안에 갇힌다. 날은 어두워지고 도로에 모든 차가 라이트를 켠다. 남편은 라이트를 켤 의지조차 없다. 어둠은 짙어지고 정체된 현실을 타개할 어떤 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뒤차가 쏘아대는 헤드라이트는 가족의 차에 숨겨진 비밀이라도 캐낼 듯 집요하게 비춘다. 상향등에 드러난 “남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보였다.”(203쪽) 룸미러로 아이들을 확인하는 남편의 강박적인 행동과 가족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클랙슨 소리, 뒤차 헤드라이트는 어둠에 가려진 차 안을 쏘아본다. 이들 부부가 감추고자 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아빠가 원하는 바는 자식들이 잠들어있는 것이다. 헤드라이트에 질린 남편의 얼굴은 의미심장하게도 자식들의 죽음을 유추하게 한다. 

  남편은 일 년 전 중국 출장길에 박제 새 세 마리를 사 왔다. 박제 새는 말 그대로 죽은 새다. 그가 사 온 박제 새를 아이들 품에 안겨준 사람은 화자인 아내다. 그녀는 두 아이에게 각각 한 마리를, 나머지 한 마리는 아이들 방문에 매달아 놓았다. 아이들 방을 봉인하듯이 박제 새를 방문 고리에 걸어둔 그녀의 심리 또한 자식을 거부하는 모양새다. “아이들이 잠들지 않으려고 해서 박제 새를 한 마리씩 안겨주었어.” (186쪽) 화자는 남편에게 농담처럼 말하지만, 농담이 아니다. 아이들은 강요된 잠에 빠진 것이다. 그녀는 외출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에게 냉동 만두를 한 봉지씩 구워 먹였다. “서른 개나 되는 냉동 만두는 유통기간이 14일이나 지난” 것이다. 유통기간이 지났다고 당장 아이들이 변을 당하는 정황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폐기 처분해야 한다. 화자의 행위는 미필적 고의가 분명하다.     

 

“날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해…”

남편이 룸미러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뭘…?”

“내가 죽였다고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니까.”

“혹시 도마뱀 말이야?” (190쪽)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그 아이들이 애지중지 키우던 도마뱀이 사라졌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도마뱀이 죽었다고 둘러대지만, 도마뱀의 행방은 묘연하다. 남편이 도마뱀을 식탁에 올려놓고 죽이는 시늉 한 적이 있었다. 남편은 겨우 일 년 만에 어른 팔뚝만큼 자란 도마뱀을 두려워했다. 도마뱀을 혐오한 이유는 무섭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두 아들이 자라는 것처럼. 남편은 도마뱀의 행방에 대해 아이들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아이들도 도마뱀 죽이는 시늉을 장난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며 남편을 대신하여 변호한다. 

“나는 그저 도마뱀이 죽었다고만 했어.”, “당신이 도마뱀을 죽였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이 도마뱀을 죽인 것도 아니잖아.”(190쪽) 아내의 남편 변호는 과할 정도다. 이쯤에서 부부는 차 안에 숨겨진 사건의 공모자가 된다. 아이들은 여전히 잠들어 있고 남편은 차의 속도를 높이며 룸미러를 주시한다. 그는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낀 듯 도마뱀의 목을 조른 것이 장난이 아니라고 털어놓는다. “나는 그때 정말로 도마뱀을 죽일 작정이었어…!” 남편은 지은 죄를 털어내듯 자백하고 다시 룸미러를 살핀다. 의미심장하게도 도마뱀의 죽음을 확인하는 듯하다. 룸미러에 반추된 세계는 범죄를 저지른 자, 범죄를 은폐하려는 자의 불안으로 들끓는다. 룸미러는 사회의 숨겨진 이면이다. 부모라는 힘으로 사회 통치 권력으로 자신의 범죄 행위를 덮이려는 시도는 도처에서 횡행한다. 

     

“죽었을까?” 

남편이 룸미러를 흘끔거리며 내게 불쑥 물었다.

“뭐가?”

“도마뱀 말이야…” (193쪽)     


  기괴한 대화를 주고받는 부부 앞에 돼지를 그득 실은 트럭이 등장한다. 트럭 적재함에서 흘러나온 오물 냄새가 가족이 탄 차 안으로 스며들었고 마포대교 위쪽 하늘은 썩은 두부 같은 구름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오물 냄새’, ‘썩은 두부’, 부부는 결코 온당치 못한 일을 공모하고 있다. 남편이 죽이고 싶었던 대상은 도마뱀이 아닐 가능성이 짙다. 차에 오를 때부터 잠든 아이들은 이동하는 내내 잠들어 있다. 클랙슨 소리에도 급하게 차선을 바꾸느라 차체가 몹시 흔들려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외출 전 남편은 와이드 룸미러로 교체했다. 룸미러 교체는 아이들을 억압하려는 아버지의 욕망이다. 룸미러에 비친 아이들은 객관화된 아버지다. 아이들이 억압된 룸미러는 동시에 아버지가 동결된 세계다. 남편은 룸미러를 통해 감금된 자신과 대면한다. 자의적인 감금, 그것은 역설적으로 도피 행각이다. 그 와중에 새 한 마리가 베르나로 돌진하다 앞 유리에 부딪혀 피투성이가 된다. 가족의 차장에 투신한 새는 룸미러로 도피한 남편을 현실 세계로 끌어낸다. “새는 모가지가 부러지고 몸통이 터진 채로 앞유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212쪽) 남편은 와이퍼를 작동하고 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와이퍼로 막기 어렵다. 피를 흘리는 대상은 새가 아닌 아이들이다. 아버지에게 억압당한 아들, 이는 곧 아버지, 즉 남편이다. 자아를 결박당한 가장은 존재감을 상실한다. 아내는 차에서 내려 아직은 숨이 붙어있는 새를 차 트렁크에 은닉한다. 죽음은 삶처럼 도로에 펼쳐져 있고 삶은 죽음처럼 가족의 일상을 파고든다. 도피처를 잃은 가장은 도마뱀의 죽음, 박제 새,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새, 잠든 아이들과 동일시된다. 가족은 차 안에 결박당한 채 도로 위를 떠돈다. 


04편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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