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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 박하 Jan 31. 2023

갈릴레이에 경의를

마천루 숲에서 만나는 소우주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는 베를린의 주요 관문 중 하나로 1734년 포츠담 토어(Tor)가 세워진 이래 프로이센 시기 이후에도 수많은 기차와 지하철, 트램, 버스라인이 지나가는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광장 중에 하나였다. 1924년에는 유럽 최초의 5 각형 신호등이 설치되었고 지금까지 베를린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2차 대전이 지나고 분단의 상징인 장벽이 이곳을 가로지르며 화려했던 옛 모습은 오간데 없어진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51만 m² 헥타르에 이르는 일대 공터에는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로 업무, 상업, 주거, 문화시설이 공존하는 미래형 유럽 식복 합신 도시가 세워졌다. 베를린의 스카이라인은 18, 19세기의 고대 건축유산과 현대 건축양식이 고루 어우러져있는데 이곳은 20세기 현대 건축물의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마천루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가장 유명한 소니센터에서는 2003년부터 전 세계 영화 축제 베를린 비엔날레가 열리고, 일대에는 대형 극장, 뮤지컬 시어터, 영화 박물관 등 각종 영화 관련 기업들이 많이 상주하고 있다.  주요 입주 기관 및 투자기업 중 가장 큰 투자규모와 건물 연면적을 가진 기업은 다임러(Daimler AG)다. 일대에 공공미술 설치를 비롯해 전용 컬렉션과 특별전을 선보이는 다임러 컨템퍼러리 미술관(Daimler Contemporary)을 운영하며 시민들을 위한 예술 공헌을 실현하고 있다.     



 빌딩 숲 사이로 마를레네 디트리히 거리(Marlene-Dietrich-Platz)를 따라 들어가면 잔잔하게 펼쳐진 호수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1998년 다임러가 일대(Daimler-Chrysler-Quartier)의 건축 마스터플랜을 맡았던 렌조 피아노 (Renzo Piano)의 이름을 따서 일명 피아노 호수(Piano-See)라 불리는 곳이다. 여름에는 이 호수를 따라 인근의 직장인,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여기서 휴식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겨울에는 근처에 크리스마스 마켓과 아이스링크가 세워지는 사철 아름다운 곳이다. 빌딩 숲 사이 작은 인공호수이고 수심도 깊지 않지만 빗물을 저장 관리하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수질이 좋아 큰 물고기들과 새들이 찾아와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호수 거의 절반에 걸쳐 4개의 화강암 지지대 위에 녹슨 더블 T자 철제 빔으로 이루어진 큰 조각 한 점이 서있다.


  마치 급하게 질주하다 갑자기 여기서 멈춘 것 같은, 하늘에서 천둥이 내리쳐 꽂힌 듯 한 속도감과 긴박함이 가득한 추상조각이다. 그런 다이내믹함이 잠시 멈추어 쉼을 고르는 듯 이내 평온한 느낌마저 주는 이 조각은 추상표현주의 조각가 마크 디 수베로(Mark di Suvero)의 작품이다. 포츠다머 플라츠의 다임러 아트 컬렉션 (Daimler Art Collection) 중에 하나다. 사실 이 작가를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작가의 부모님은 이탈리아인이고 아버지가 해군 대령으로 중국에서 복무할 때 1933년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이후 2차 대전 발발로 1941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 버클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50년대 후반부터 조각을 시작해 미국과 전 세계를 누비며 추상 표현주의 시대의 중요한 예술가로 손꼽히며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Hirshhorn Museum과 Sculpture Garden, Metropolitan Museum of Art, 현대 미술관, National Gallery of Art, 휘트니 미술관, Walker Art Center, Storm King Art 등 100 개가 넘는 박물관과 공공 소장품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본인의 작품 활동 이외에도 사회 평화, 정의를 위한 운동가였고 다른 작가들을 돕기 위한 활동들을 해왔다. 1962년 뉴욕의 첫 번째 예술가 협동조합 인 ‘Park Place Gallery‘를 공동 설립했고, 1986년에는 뉴욕 퀸즈(Queens)에 잇는 이스트 리버(East River)의 매립지에 소크라테스 조각 공원(Socrates Sculpture Park)을 개설하여 오픈 스튜디오와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900명 이상의 아티스트들을 후원했다. 한때 크레인 운영자 협회 회원이기도 했던 작가는 이를 통해 미국 산업 발전에 기여한 철강 노동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60년대는 평화와 부가 넘치는 시기인 동시에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한 이면으로 저항과 해방의 분위기가 만연했다. 미술에 있어서도 소수 엘리트를 위한 것이 아닌 대중성과 보편화된 주제와 매체들이 작품으로 다뤄지게 된다. 전후의 조각가들은 자연물에 근거한 재료가 아닌 버려진 산업폐기물과 쓰레기 소각장의 물건들 같은 인공적인 소재와 용접이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한 아상블라주, 정크아트라는 실험적인 작업을 하게 된다. 마크 디 수베로는 60년대 이후 산업 자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건축 현장에 버려진 철제 빔과 나무를 소재로 한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뉴욕 파인 알렉산더 칼더와 데이비드 스미스와 더불어 재료 자체의 상징적 의미를 중시하고 실험성 강한 추상 조각을 해왔다. 마크디수베로의 미국 전통 추상표현주의는 고전적인 현대 유럽에 뿌리를 두고 있다. For Gnzalez(1971), Hommage to Brancusi(1996)의 작품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신화, 역사, 정치, 예술적인 관계들을 작품 속에서 변주해 왔다.     


"나는 구성 주의자. 언어와 같은 수학적 구조, 예술과 같은 상징적 구조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들이며, 우리가 성장하는 곳이다. “     


   포츠다머 플라츠의 피아노 호수 위의 이 조각은 다임러 아트 컬렉션 중에 하나로 갈릴레오(Galileo)란 제목의 작품이다. 갈릴레오는 기존의 망원경으로 천체관찰이 가능한 망원경을 개발하였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는 연구로 교황청과 갈등을 빚었던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다. 인물의 이름이 제목이지만 이탈리아의 유명 학자를 위한 기념비가 아닌 중력과 천체의 움직임 연구에 대한 추상적 구체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이 장소를 위해 처음부터 특별히 제작된 것은 아니었고,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1997년 파리에서 전시된 적이 있었다 1998년 가을 이후 베를린의 포츠다머 플라츠에 세워졌다. 마천루들이 즐비한 도심 한편에 쉼표처럼 자리한 작은 호수, 그 위에 살포시 안착한 갈릴레오가 없는 이곳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



 수면 위에 화강암 받침대가 놓여 있고 그 위로 철제빔이 서있는데 이들은 서로 한 지점에서 지지하며 만나지만, 이는 끝까지 이어진 것이 아니고 위쪽으로 3개의 빔이 뻗어 있다. 중간지점에는 두 개의 원이 엇갈리며 기울어져 있어 마치 궤도를 순환하는 천체의 모양처럼 보인다. 원 위로는 가로로 된 빔 하나가 더 얹혀 있다. 마크 디 수베로(Mark di Suvero)의 작품에서 중시하는 점은 ‘공간’과 ‘운동’이다. 작품으로 인해 형성된 빈 공간 자체도 조각의 중요한 구성 요소가 된다. 건축의 골격을 이루는 철빔이라는 산업자재가 깃털처럼 얽혀 만든 기하학적 아름다움은 중력을 거스르고, 물리학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주변 공간을 환기시킨다. 재료가 주는 견고함과 기능성, 압도적인 크기로 언듯 건설 현장을 떠올릴 수도 있으나 실은 앙리 마티스의 컷 아웃된 감정의 조각에 가깝다.       


 그의 작품의 운동이라 함은 상상의 이동성이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움직이는 순간의 주제를 다룬다. 가상의 정체와 평온함과 달리 주변 지역에 퍼져 있는 역동적인 표현력을 지닌다. 60년대 중반 이후부터 도시와 자연에 세워진 작가의 공공미술 작품들은 단순한 구조, 개방성, 접근성과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도록 권한다. 시민들은 작품의 주변을 거닐며 바라보거나, 멀리서 관찰하며 근처의 공간과 비물질적 상관관계에 내재된 긴장감을 경험하게 된다.     


   작품의 제목에서 보다시피 작가는 갈릴레이라는 위대한 과학자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사실 갈릴레이에 대해서는 몇몇 과학자들의 영웅 만들기 신화로 와전된 부분이 없지 않다. 이전에도 지동설을 주장했던 이들이 있었고 그보다 10여 년쯤 조르다노 브루노라는 수도자가 ‘우주의 별들이 또 다른 태양과 지구일 것이다 ‘라고 주장하다 이탈리아에서 거꾸로 매달려 화형 당한 사건이 있었다. 우연하게도 브루노와 관련된 조각 작품은 포츠다머 플라츠 역사 입구 계단에 세워져 있다. 1663년 과학과 종교사에 남을 논쟁이 되었던 갈릴레오 재판에서 그는 종교(성서)의 오류가 아닌 해석의 오류를 지적했다. 강직하다기보다는 유연한 처세술로 투옥 대신 가택 연금조치를 당했고, 사후 350년 만인 1992년에서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재판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과학)에게 사과했다. 세기의 과학자의 생애는 많은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는데 우리의 마음을 할 퀸 전설적인 락밴드 퀸의 Bohemian Rhapsody에서도 갈릴레오가 등장한다. 진짜 갈릴레오를 묘사하려는 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나 위기를 극복해 낸 위대한 그의 이미지와 어느 정도 들어맞는 건 사실이다. 갈릴레오의 삶에 관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도 유명하고, 미국 현대 음악 작곡가 필립 글라스는 갈릴레오를 주인공으로 하는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갈릴레이는 낙하의 운동 법칙을 정립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보기에 실제 하는 사물의 본질을 지배하는 것은 수량적인 관계다. 따라서 수학의 기호화 법칙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사물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흑점에 대해서도 예수회 신부이자 수학자인 샤이너와 대립하였으며 천체에 대한 견해 차이로 역시 예수회 신부인 그라시와 논쟁하였다. 그라시의 주장에 반론하는 의미로 쓰인 ≪시금자≫에서 갈릴레이는 아래와 같은 유명한 말을 했다.      


‘스스로 그러한’ 존재인 자연(自然)으로서의 우주는 엄청난 양의 메시지를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갈릴레오는 이렇게 표현했다. “철학은 우주라는 위대한 책에 쓰여 있다. 우주는 항상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것을 이해하려면 우주의 언어를 먼저 배워야 한다. 자연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여 있다. 그 글자들은 삼각형, 원, 기타 기하학적 도형들이다. 이것을 모르면, 그 책의 낱말 하나도 이해할 수 없고, 캄캄한 미로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      


화려한 베를린의 과거 면모와 역사의 굴곡을 겪고 난 후 미래형 빌딩 숲 속에 무사히 안착한 행성 같은 갈릴레오! 호수 앞 계단에 잠시 걸터앉아 눈앞의 작은 우주를 만나 소중한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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