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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ABA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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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AJUNG Mar 22. 2018

BABA PROJECT – 실크로드의 여정의 끝

 나는 실크로드를 따라 우루무치까지 가는 경로를, 결국 둔황에서 멈추어 사천성의 청두(CHENGDU)로 선회했다. 티베트로 가는 날짜가 정해져 그 전에는 남쪽으로 가서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를 따라 계속해서 서쪽으로 가다간 날짜에 맞춰 남쪽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아침 10시에 출발하는 청두행 기차를 타려면, 둔황에서 버스 타고 2시간을 가야 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문제로 혹시나 기차를 놓칠까 봐 하루 전날 기차역(리우위엔) 근처로 가서 자기로 했다. 


 둔황에서는 알림을 맞추고 자지 않아도 아침 9시가 되면 정확히 눈이 떠졌다. 태양이 창문을 가리고 있는 건물보다 높이 떠오르면, 방으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재잘대는 통에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이 항상 정확하게 아침 9시였다. 나는 천천히 출발할 생각이었으므로 서두르지 않았다. 아침운동을 하고 근처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할 생각으로 나왔다. 한 식당 창문에 뿌옇게 서린 김이 아늑한 실내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어둡고 칙칙한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는 남자 넷이, 각자 앉아서 국물을 홀짝이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맑은 국물에 작은 만두가 여러 개 들어있는 음식이었는데, 식당 벽에도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있었다. 주방장이 자신 있는 음식이겠지, 나는 사진을 가리키며 큰 것으로 한 그릇 달라고 했다.  

 뜨거운 국물은 추운 겨울날 단단하게 굳어있던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풀어주었다. 나는 과연 사진을 걸어놓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서 미리 챙겨놓은 짐을 갖고 로비로 나와 체크아웃했다. 그러고 나서 잠시 로비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뉴스를 확인했다. 그러자 로비 직원이 따듯한 차 한잔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뉴스를 볼 때 정치부터 시작해서 경제, 사회, 그리고 세계 순으로 확인했는데, 요즘 정치는 잘 보지 않게 됐다. 싸움 구경은 처음에만 재미있다가, 길어지면 지겨워지는 법이다. 오히려 지금은 그 순서가 뒤바뀌어 세계부터 보기 시작한다. 세계를 다니면서 지금 내가 있는 국가, 그리고 앞으로 내가 가게 될 국가들의 현재 정세와 추이, 그리고 세계적 동향과 분위기를 확인하는 것이 남일 같지 않고 직접 와 닿는다. 재미있는 일이다. 어느덧 시간이 자정을 넘겨 나는 이제 버스터미널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터미널까지 거리는 2KM, 걸으면 30분 정도 걸릴 것 같았다. 몸의 균형이 배낭에 단련이 되었는지, 이제 이 정도는 문제없이 걸어갈 수 있었다. 나는 버스표를 사기 위한 중국어를 몇 가지 외워갔는데, 흠집 난 유리 벽 안에 앉아 있는 여직원을 보자 삽시간에 머리가 까매졌다. 중국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창구직원은 전부 여자다. 지난에서 기차 창구 여직원에게 고생을 하고 난 이후로, 유리 벽 안에 앉아 있는 여자만 보면 나는 겁에 질려버렸다. 얼마 후 버스가 왔는데 ―버스라기보단 승합차에 가까웠다― 나는 이것을 타고 두 시간을 가야 했다.  



 버스는 나를 포함하여 중국인 대여섯 명이 함께 탔다. 창 밖은 휴대폰 전파도 터지지 않을 만큼 황량했다. 버스 앞 유리로 보이는 도로는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있었으며 기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느긋한 속도로 달렸다. 지루한 장면이 줄곧 이어졌다. 기사는 그저 엑셀만 밟고 달리는 것이 심심했는지, 이따금 운전대를 좌우로 흔들어대기도 했다. 처음엔 이것을 보고 기사가 조는 줄 알고 매우 긴장을 했었다. 나는 잠도 안 오고 할 것도 없어서 줄곧 책을 읽었다.  

 지루한 황야에 쓸쓸한 건물이 하나 보였는데, 우리 버스는 그 앞에 멈추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끝이 보이지 않는 놀이터에서 신난 사막바람이 이리저리 세차게도 불어댔다. 내가 가야 하는 기차역은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택시기사들이 어리둥절한 나를 시끄럽게 불러댔다. 저 많은 택시기사 중 한 명을 고르는 것도 내게는 보통 일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까지 3,000~4,000원 정도 나올 것 같았다. 나는 택시를 탈지 말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놀이터에서 신나기는 나도 바람과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황폐하고 쓸쓸한 땅을 가로질러 그들과 함께 놀고 싶었다. 4KM, 천천히 걸어가면 2시간까지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택시기사들을 뒤로하고 그 길로 걸었다. 기사들이 나를 미친놈 보듯 봤지만, 신경 쓰지 않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는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나를 더 기분 좋게 만들었다. 벌써 끝이 보여버린다면 실망할 것 같았다. 대지는 햇빛을 받아 노란빛을 띠었고 하늘은 몹시도 파랬는데, 그 완벽하고도 견고한 조화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바람은 코끝이 찡하게도 차가웠지만, 어깨 위로 햇살이 포근히 내려앉아 나를 위로했다.  

 기분 좋게 걷고 있는데, 그때 지나가던 차 한 대가 옆으로 멈추어 섰다. 차 안에는 젊은 남자가 혼자 타고 있었는데, 그는 호기심 어린 눈을 하고서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 듯했다. 나는 지도에 찍혀있는 목적지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가 가는 길이니 데려다주겠다고 타라는 것이다. 나는 멀지 않아 괜찮으니 그냥 걷겠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했다. 그는 매우 재미있는 녀석을 봤다는 듯 알겠다고 하고 엑셀을 다시 밟았다. 그 후로도 차가 서너 대는 멈추어 서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나는 날씨가 조금만 따듯했어도 오로지 걸어서 하는 여행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걸으면서 신기한 것도 경험했는데, 도시에서 느끼는 배낭의 무게와 이곳에서 느끼는 배낭의 무게가 분명히 달랐다. 나는 아마도 신호등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시에서는 신호등을 만날 때마다 멈추기를 반복해야 하는데 이것이 무척이나 체력을 빼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선, 한 번 걷기 시작하여 일정한 리듬을 타기만 하면, 내가 멈추지 않는 한 리듬은 깨지지 않고 나를 앞으로 밀고 갔다. 그래서 나는 4KM쯤은 정말 거뜬히 걸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너무 빨리 도착해버린 것이 아쉬워, 10KM 정도는 걸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도착한 숙소는 여관 같은 곳이었다. 사실 이곳에 대책 없이 왔더라면 아마 방을 구하지 못하고 밖에서 잤을 것이다. 중국은 외국인들에게 숙박시설 3성급 이상에서만 지낼 수 있도록 규제를 하는데, 이곳은 기차역 근처에 그저 사람 몇 명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으므로 여관도 간신히 있었다. 나는 처음 이곳에 오기로 계획하고는 밖에서 자든지, 기차역이나 건물 안에서 자든지, 그것도 아니면 근처 슈퍼나 식당에 들어가서 일을 도와주고 하루만 재워달라고 부탁할 요량으로 무작정 온 것이었는데, 만의의 도움으로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숙소로 들어가서도 낮에 걷던 내 모습을 상상했다. 시야를 가로로 갈라 밑으로는 노랗게 메마른 땅이, 위로는 파란 하늘이 눈 앞에서 물결쳤다. 그리고 그 위를 한걸음 한걸음, 뚜벅뚜벅 걸어가는 내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나는 네팔에 가서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를 걷든지, 인도로 가서 순례 길을 걷든지 아무튼 이번 여행이 끝나기 전에 꼭 한 번은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꼭 그래야겠다고 다짐했다. 숙소는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아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바로 내 옆을 지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이곳에서 잠들어버린다면 새벽에 누군가 들어와 나를 해치더라도, 아무도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겁이 났다. 그래서인지 이날은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설쳤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일이면 기차 타고 25시간을 가야 하는데, 잘 시간은 충분했다. 


 다음 날, 나는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 네 개와 삶은 달걀, 그리고 과자 몇 개를 사 들고 기차에 올랐다. 기차의 침대 구역 한 칸에는 3층 침대가 2개 있었는데, 우리 칸 침대는 꽉 차서 총 6명이 같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중국인이었고 노부부 한 쌍 그리고 각자 따로 탄 남자 셋이었다. 내 침대는 중간이었다. 나는 큰 배낭은 선반 위에 올려두고 작은 가방은 머리맡에 두었다. 나는 중국 기차를 타면 가방도 지키고 잠도 잘 수 있는 나만의 자세를 만들었다. 나는 기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누워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곰곰이 생각했다. 돈이 너무 많아도 이런 기분일까, 시간이 너무 많으니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나는 먼저 귀마개를 끼고 휴대폰에 저장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 받은 책의 첫 페이지를 여는 것이었는데, 책을 읽을 때 가장 설레는 때는 언제나 첫 페이지를 열 때였다. 한 시간 정도 읽었나, 어느새 나는 졸고 있었다. 나는 읽던 책을 덮고 오전 11시부터 꿀맛 같은 낮잠을 잤다. 한 시간 반쯤 자고 일어났는데 여전히 밝고 시끄러웠다. 나는 어느새 출출해져서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 옆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다. 그리고도 배가 차지 않아 과자를 하나 먹었는데, 여전히 입이 심심해서 다른 과자를 하나 더 꺼내먹었다. 나는 잠시 창 밖을 보며 이제 무얼 할까 고민했다. 창 밖은 여전히 황량하기만 했다.  



 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노트북을 꺼냈다. 그러나 중국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기차에서 노트북을 두들기는 짓은, 나는 이방인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짓과 같았다. 옆을 지나가는 모든 중국인들의 눈이 노트북으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들은 내가 무엇을 쓰는지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싫어서 노트북을 닫았다. 영화를 한 편 볼까 했지만, 콘센트가 없어서 영화 한 편을 다 볼 수 없었다. 데이터가 부족해 휴대폰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뿐더러, 전파도 잘 잡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침대에 누워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읽었을까, 다시 잠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졸음이 몰려오면 고민하지 않고 잤다. 자다 깨다 반복하니 어느새 밤 9시였다. 출출해서 컵라면을 하나 먹고 삶은 달걀을 꺼내먹었다. 그리고 다시 누워 책을 읽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반복적인 짓을 다음날 기차 내릴 때까지 25시간 동안 줄곧 해대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쁘지 만은 않았는데, 좋다고도 할 수 없었다. 조금 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다채로웠다면 좋았을 텐데, 먹고 자고 읽고만 하니 머리가 아팠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남은 컵라면을 마저 끓여먹고, 시간은 11시가 되어 사천성 청두에 이르렀다. 25시간을 남쪽으로 달려왔는데도, 지도를 보니 아직도 남쪽으로 15시간은 더 갈 수 있을 만큼 땅이 남아있었다. 정말 무식하게 커버린 중국 땅에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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