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사트나(Satna) 역으로 가야 했으므로, 나는 카주라호에서 사트나로 가는 아침 7시 30분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갔다. 아직 완전히 날이 밝지 않은 시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버스정류장에 모여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사트나로 가는 버스가 여기로 오는 것이 맞는지 물었는데, 그들은 내게 8시에 버스가 올 것이라고 했다. 30분쯤이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8시가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더 이상 앉아서 기다릴 수 없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잡히는 사람에게 버스는 어디로 오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오늘 버스 취소됐나 봐” 아, 도대체 이 인간들의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잘 풀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이럴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잠시 후 릭샤꾼 한 명이, 마치 땅에 떨어진 먹음직스러운 사과라도 발견한 마냥, 어쩔 줄 몰라있는 내게 슬그머니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아무튼 넌 기차 타려면 사트나로 가야 하지? 다른 마을에도 사트나로 가는 버스가 있어. 시간 없으니 빨리 결정해” 나는 정말 버스가 취소된 것이 맞는지, 다른 곳에서 타는 것은 아니었는지, 이 자식이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곳에 가면 정말 사트나로 가는 버스가 있긴 있는 것인지, 오만 가지 의심이 다 들었지만 나는 별 수 없이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오토릭샤가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마을에는 다행히도 정말 버스가 한 대 있었다. 나는 버스기사에게 달려가서 사트나로 가는지 물었고, 안에 있는 승객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서 확인했다. 그래도 기차 시간에 늦지 않게 갈 수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3시간을 달린 버스는 이윽고 사트나에 도착했다. 언제나 어디서나 버스가 멈추어 내리면 수많은 릭샤와 택시기사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그들의 호객에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완벽하게 무시하고 기차역으로 걸어갔다. 약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 그리 멀게 느껴지진 않았다. 기차 출발 시간은 3시 45분, 아직 3시간이나 남았다. 나는 근처에 시간을 보낼만한 곳이 있나 찾아보았지만 정말 현지인밖에 보이지 않는 후미진 마을이라 적당한 곳을 찾기가 꽤나 어려웠다. 그러다가 나는 한 식당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주인에게 기차 시간까지 여기서 기다리다가 가도 되냐고 물었으나 그는 적잖이 싫은 눈치였다. 하지만 나도 꽤나 낯짝이 두꺼워진 터라 쫓아내기 전까지 버텨볼 요량으로 있었는데, 어느덧 기차 시간에 가까워지기까지 머물러있었다. 나는 긴 시간 머물도록 허락해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에는 보고만 있어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많은 인도인들이 바닥이며 벽이며 여기저기 누워 진을 치고 있었고, 동시에 그들의 모든 시선이 내게 일제히 쏠렸다. 나는 그들의 불편한 관심에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마스크를 코까지 올려 쓰고 후드를 뒤집어써서 아무리 얼굴색을 가려보아도 그들의 시선은 용케 나를 찾아왔다. 누구든 이 지독하게 집중되어버린 시선을 분산시켜주길 바랬지만,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외국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나는 기차역 벽에 붙어있는 전광판으로 가서 내가 타고 갈 기차를 확인했는데, 1시간 지연이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 또 1시간이 지연됐고 그 후에 또 1시간이 지연되어, 장장 3시간 이상을 기차역 바닥에 앉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있었다. 그리고 나는 기차를 기다리던 중 끔찍하고도 역겨운 일을 겪었다.
인도인들은 참, 선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다가도 몇몇 사람들 때문에 정이 뚝 떨어져 버린다. 나는 기차역 계단에 앉아 후드를 단단히 뒤집어쓰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내 앞을 지나치던 많은 사람들이 나를 힐끗힐끗 보고 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동영상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인도 청년들이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나를 둘러쌌다. 나는 그들을 한 번 힐끗 보고는 다시 영상으로 고개를 내렸다. 그러나 그들은 무언가 작심이라도 한 듯 내 옆으로 다가와 뭐라 말을 걸었다. 나는 이어폰 한쪽을 잠시 빼고, 영상을 보는 중이니 가달라고 정중히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내게 “포토, 포토”라며 사진을 찍자고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평소였다면 웃으며 찍을 수도 있었지만 낯선 곳에 있어서인지, 그런 곳에서 줄곧 지연되던 기차 때문인지, 아무튼 마음 편히 그들과 사진 찍을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미안하지만 싫으니 가달라고 분명하게 말했지만, 그들은 내 옆으로 더욱 달싹 붙어 앉았다. 한 녀석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 찍을 준비를 했고, 나머지는 나를 중심으로 에워쌌다. 나는 화를 냈다. 그러나 그들은 듣는 둥 마는 둥 내게 억지로 어깨동무를 했고, 심지어 한 놈은 얼굴을 내 옆으로 바짝 대어, 그의 얼굴이 내 귀에 닿았다. 귀에 그 인도새끼 얼굴의 온기가 느껴졌고, 귀가 썩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귀를 잡아 뜯어 눈 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었다. 너무도 불쾌했다. 나는 더욱 강력하게 거부의사를 표시하며, 카메라를 보지 않고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그들은 내게 “카메라를 봐!”라며 소리쳤고, 나는 고집부리며 계속 눈을 바닥에 고정했다. 그들은 내 턱을 잡고 고개를 들라며 힘을 주었다. 전부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문득 불안한 기분, 이곳에 이방인은 나밖에 없다는,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점 날이 저물어 가는, 이들이 곧 돌변해 나를 어찌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 결국 나는 순순히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보았다. 차라리 얼른 사진을 찍어버리고 이들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진을 두 어장 찍고는 계속 내게 뭐라 말을 걸었는데, 내가 대답하지 않자 키득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마치 강간이라도 당한 마냥, 수치스러웠다.
기차는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왔다. 밤이 깊어지기 전에 기차가 온 것이 어디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이 시간에라도 와준 것이 감사했다. 사트나에서 뭄바이까지는 약 21시간, 한숨 자고 일어나서 이것저것 하기 딱 좋은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의 여정이었다. 그러므로 이왕이면 ‘이동’보다는 ‘휴식’의 개념으로 이번 기차는 조금 비싸더라도 에어컨이 나오는 칸, 그중에서 가장 하위 등급인 3AC(3rd, Air conditioner Class)로 탔다. 나는 기차에 올라 자리를 찾고 잠시 가만히 서서 짐을 어떻게 풀면 좋을지 생각했다. 그때 누워있던 한 인도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내가 처음 타는 것이 보였는지 3AC의 소소한 사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옷은 창가에 있는 작은 옷걸이에 걸고, 네가 들고 온 물은 여기 물통 꽂이에 꽂고, 과자봉지는 저기 보이는 걸이에 걸어두면 좋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1층 침대에 앉아 쉬고 싶은지 물었는데, 만약 그러고 싶다면 1층 침대에서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워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그리고 곤히 자고 있는 친구를 깨우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절로 나오는 미소로 답했다. 그의 말투에서는 어쩐지 정중함이 묻어 나왔다. 내가 그동안 만나고 겪은 그런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알려준 대로 짐을 정리하고 나만의 잠자리를 만들어 곧바로 누웠다. 그리고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한숨을 푸욱- 한 번 길게 내쉬었다. 그것은 길고 힘들었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종료 버튼 같은 것이었다. 이미 시스템을 종료해버린 터라, 나는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그리고 글을 써보려고도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누워서 멍- 하게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나는 아늑한 실내의 기온에 긴장이 풀리면서, 나를 챙겨주고 배려해준 같은 기차 칸 친구 덕분에 마음이 놓이면서, 비교적 이른 시간에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기차에서 눈을 뜨는 것이 어떨 것 같나, 나는 그것을 매우 좋아한다. 내가 세상모르고 잠든 동안 기차는 쉴 새 없이 제 할 일을 하며 밤새 달렸다. 기차에서 12시간 정도 푹 자고 일어나 여전히 열심히 달리고 있는 기차의 창 밖을 보는 기분, 그리고 문득 지도를 보았을 때 나의 위치가 순식간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움직이는 것을 보는 기분이란 정말이지 짜릿하다. 나는 양치를 하고 가벼운 세수를 했다. 그리고 얼마나 더 가야 도착할지 시간을 계산해보았는데, 지연이 전혀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 약 8시간을 더 가야 뭄바이에 도착할 것이었다. 아, 정말 완벽하지 않은 가. 나에게는 아직도 8시간의 시간이 더 남아있어, 넉넉잡아 책을 2시간이나 읽을 수 있었고, 집중해서 글을 3시간이나 쓸 수 있었으며, 잠시 여유롭게 창 밖을 보며 1시간은 간식을 먹을 수도 있었고, 1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도 옆 사람과 1시간을 더 떠들 수도 있었다. 나는 20시간의 기차가 좋다, 조금 지연되면 그것대로도 좋다. 그래서 나는 때로 10시간이면 갈 거리도, 굳이 20시간의 기차를 끊기도 한다. 내게 급하게 내린 10시간의 기차는 단지 ‘이동수단’이라면, 여유롭게 내린 20시간의 기차는 ‘온전한 하루’이다.
기차는 적당히 지연되어 이윽고 22시간 만에, 인도 최대의 경제도시 뭄바이에 도착했다. 그러나 내게 뭄바이는 그저 지나쳐가는 한 도시였을 뿐, 큰 의미도, 어떤 기대도 없었다. 나는 뭄바이에 도착한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으며, 오히려 한 가지 크게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물가, 여행자의 피를 말려버릴 만큼 비싼 물가였다.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인도 뭄바이로 비행을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인도 사람들의 인권에 대해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만큼 어렵게 산다고 느꼈었다. 그러나 지금 여행자의 눈으로 본 인도 뭄바이는, 그때 느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되려 자괴감이 들 정도로 비싼 물가와 위압감이 들 정도로 거대한 도시에 손사래를 쳐버렸다. 중국 사천성의 대도시 청두(Chengdu)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듯이, 갑자기 큰 도시에 떨어진 나는 몹시 어지럽고 혼란스러웠다. 길 잃은 미아처럼 당장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달려드는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나는 택시기사 한 명을 잡고, “미터, 미터!”를 외쳤다. 뭄바이는 인도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흥정을 하고 가격을 정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미터로 가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택시기사와 미터로 가기로 합의를 보고 그의 택시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내가 막상 택시 문을 닫고 자리에 앉으니, 가격 흥정을 하려 들었다. 인도에서는 때로 분명하고 강력하게 화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그에게 타기 전과 말이 다르지 않냐며 불같이 화를 내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택시기사들이 내게 가까이 모였고, 나는 그들에게 미터로 갈 기사를 찾는다고 외쳤다. 그러자 한 기사가 “알겠어, 미터로 가자”라며 다가왔고, 나는 그에게 여러 번 되물어 확인했으며, 택시를 타고도 그가 미터를 제대로 키는지 확인했고, 미터기를 가리고 있던 손수건을 치우라고 말했다.
나는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골목에 있는 한 작은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그렇게 좋은 시설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머문 숙소의 거의 두 배나 되는 가격이었다. 나는 뭄바이에서 딱 하루만 머물고 다음날 바로 고아로 가기로 했다. 이렇게 비싼 가격으로는 도저히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얼마 있지 않아 뭄바이에는 금방 어둠이 찾아왔고, 나는 어쩐지 다시 외로워졌다. 며칠간 좋은 사람들과 어울렸던 탓일까, 갑작스레 큰 도시에 와버린 탓일까, 지나치게 비싼 물가 탓일까, 나는 몹시 우울해졌다. 번화가의 길거리는 앞사람의 뒤통수 냄새를 맡고 가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고 시끄러웠다. 나는 고아로 가는 버스표를 구하기 위해 여행사를 이리저리 돌아다녀봤지만, 모두 불친절했으며 말투에 짜증이 가득 섞여있었다. 내가 항상 다니던 그런 작고 저렴한 식당은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가 반기는 그런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많았다. 길거리에는 ‘BENZ’나 ‘BMW’ 같은 고급 브랜드의 차가 즐비했고, 그런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옷도, 표정도, 몸짓 발짓 그리고 수염마저 지금껏 봐온 인도 사람들과는 달랐다. 특히 깔끔하고 날렵하게 잘 관리된 수염이 인상적이었는데, 나는 이후로 수염을 보고 인도인의 경제 수준이나 신분을 짐작하는 척도로 활용하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이런 것들을 보고 있자니 꽤나 지쳐버렸고 더 이상 거리를 돌아다니고 싶지 않았다. 거리를 쏘다닐수록 우울한 기운은 점점 더 나를 감쌌다. 나는 바로 숙소로 돌아가 혼자 있었다.
다음날, 밤새 모기 때문에 고생하긴 했지만 꽤나 잘 잤다. 아침에 새로이 뜬 햇살을 보니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씻고 다시 배낭을 쌌다. 그리고 숙소 주인에게 밤에 출발하는 버스시간까지 배낭을 맡아주길 부탁하고 나왔다. 고아로 가는 밤 8시 30분 버스, 그때까지 무엇이라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궁금하진 않았지만 별로 할 것이 없어서, 뭄바이에서 꽤 유명한 관광지인 ‘Gateway of India’라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으므로 그저 둘러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간 것이었다. 이것은 1911년 영국의 왕 조지 5세 부부가 배를 타고 뭄바이 항구로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말하자면 ‘뭄바이 항구의 관문’인 셈이다. ‘Gateway of India’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말 바글바글 모여있었다. 이것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더욱 심하게 더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얼른 한 바퀴 둘러보고 떠날 생각으로 입구를 찾아 들어갔는데, 역시나 호객 꾼들이 달라붙었다. 그들은 팔뚝만 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았는데, 그리 넓지 않은 이곳에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족히 50명은 되어 보였다. 어째서 모두 같은 카메라를 들고 같은 곳에 모여 이토록 처절한 경쟁을 하는 것인지, 조금만 생각을 바꾸어 단 한 명이라도 폴라로이드로 찍어줄 생각은 하지 못하는지, 가끔 이렇게 장사하는 인도인을 보고 있으면 참 답답했다. 예상했던 대로 이곳은 내게 관광지로서 조금도 매력적이지 않았고 나는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뭄바이의 더위에 벌써 꽤 지쳐버렸다. 기차로 20시간 남쪽으로 달려온 뭄바이의 낮은 몹시 더웠다. 뜨거울 정도로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었고, 조금만 걸어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지금 한국은 기록적인 한파로 영하 17도에 육박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추위에 닥쳐있다는데, 나는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나는 관광은 여기서 집어치우고 마침내 뭄바이에서 가장 기대하던 것을 하러 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줄곧 뭄바이에 대해 불평만 하던 내가 가장 기대하던 것이라 하면 역시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여행 중 지친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맥도날드’에 가서 점심을 먹고 ‘스타벅스’에 가서 몇 시간이고 진득하게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나는 네팔을 거쳐 인도까지 오면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이런 익숙한 것들을 볼 수 없었고, 마음 편안하고 안정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대도시 뭄바이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기에 매우 기대를 했던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맥도날드로 갔다. 전 세계 어느 지점을 가도 내가 아는 그 인테리어, 익숙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 당연히 메뉴는 버거(Burger)이고, 내가 생각하는 가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맛 또한 내가 잘 아는 그 맛, 이런 이유에 그토록 맥도날드를 기대하던 것이었다. 가끔은 이런 안정 속에서 보호받고 싶을 때가 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소고기를 먹지 않는 인도에서는 치킨버거 밖에 없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재미있는 문화가 아닌가!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마음의 고향 스타벅스에 갔다. 나는 항상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Iced Americano)’를 한 잔 시키고 한국에서처럼 카드로 결제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근처에 콘센트가 있는 테이블을 찾고 앉아 노트북을 켜고 밀린 작업을 했다. 조금 후에 바리스타가 “Jung!”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하던 작업을 멈추고 그에게 달려가, 익숙한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를 집으며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내가 아는 익숙한 절차로 진행됐다. 나는 그렇게 안식의 시간을 보내며 마음에 평화를 깃들였다. 어느덧 밖을 보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 맡겨놓았던 배낭을 찾고 주인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버스터미널로 갔다.
뭄바이에서 고아까지는 약 12시간을 가야 했다. 나는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오랜만에 잠시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고, 핸드폰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다. 보조배터리를 핸드폰에 연결해놓았지만, 무언가 문제가 생겼는지 충전이 되지 않고 줄곧 배터리가 닳는 것이었다. 배터리는 얼마 전 중국에서 새로 바꾼 것이었고, 나는 혹시 보조배터리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가 싶어 버스에 달린 콘센트로 충전을 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이미 전부 닳아버린 배터리는 1%가 됐고, 이윽고 핸드폰은 꺼져버렸다. 다시 키면 조금 후에 다시 꺼져버렸다. 이렇게 또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조금 짜증은 났지만 이번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뭐, 여행이 길어지니 핸드폰 정도 작동하지 않아도 그렇게 큰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 다만 지도를 보지 못하는 것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유일한 오락거리인 핸드폰이 이 모양이 되어 버렸으니 매우 심심했다. 나는 할 것도 없고 해서 어둠 속을 필사적으로 달리는 버스의 창 밖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고, 눈을 감기도 했다. 이때 꽤나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고 시간도 참 잘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버스는 13시간을 달려 이윽고 인도 남부의 해안도시, 그리 고대하던 휴양지 고아(GOA)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