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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ABA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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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AJUNG May 05. 2018

BABA PROJECT –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걱정되는 것이 너무도 많아 밤새 잠을 설치고 새벽에 바로 나왔다. 공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행기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았는데, 출발시간 옆에 ‘EARLY’라고 적혀있었다. 9시 10분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10분 당겨져 9시 출발로 바뀌어있던 것이었다. 항공사에서 일하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지연보다 더욱 큰 문제가 될 뻔했다. 비행기 시간이 당겨지다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티켓을 받기 전까지, 아니 나이로비의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티켓을 발권받기에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타국에 들어가기 위해선 ‘OUT TICKET’이 필요하다. 즉, 입국한 국가에서 언제 나갈 것인지, 비행기 티켓이든 버스 티켓이든 아무튼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무언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것을 그다지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지만,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매우 집요하게 확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케냐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떻게 케냐를 떠날 것인지를 증명하지 못하면 비행기를 태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나 같은 배낭여행자들은 국가에서 국가를 육로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그런 것을 증명하기가 참 난감하다. 버스 같은 경우는 미리 예약도 어려울뿐더러, 일정 없이 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언제 나가겠다고 확실히 말할 수도 없었다. 어느 날 아프리카 여행 커뮤니티에서 한 여행자가 말했다. “케냐 나이로비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갔는데 ‘OUT TICKET’이 없어서 실랑이하다가, 결국 항공사에서 비행기 문 닫고 그냥 출발해버렸어요” 나중에 소식을 들어보니, 이 여행자는 결국 케냐로 가는 비행기를 타지 못했고 비행기 값도 환불받지 못했으며, 화가 나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고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둘 수는 없었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그 여행자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부리나케 해결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좋은 정보를 발견했다.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이런 경우가 워낙 많다 보니 가짜 비행기 티켓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미 수많은 배낭여행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사용법은 매우 간단했다. 나는 케냐에서 에티오피아로 가는 실제 비행편의 정보를 찾아 프로그램에 입력했는데, 그럴싸한 가짜 항공 예약 확인증이 하나 만들어졌다. 나는 그것을 한 부 출력하고는 부디 이것을 쓸 일이 없길 바랬다. 


 비행기 출발 3시간 전 공항에 도착한 나는 바로 항공사의 체크인 카운터로 찾아갔다. 그러고 나서 내가 막 카운터로 들어가려고 하자 입구에 서있던 한 남자 직원이 나를 잡아 세웠다. 무척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있던 그는 내게 예약 확인증을 보여달라고 했고, 나는 그에게 인도 뉴델리에서 케냐 나이로비로 가는 예약 확인증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는 내게 기본적인 질문들을 한 후에 결정적인 한 마디를 하고야 말았다. “카운터 직원에게 가서 ‘OUT TICKET’ 보여주세요.” 그때부터 소심한 나의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으며 긴장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준비를 해오긴 했지만 피해가길 간절히 바랬다. 나는 카운터 직원 앞으로 다가가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먼저 가볍고도 밝게 인사를 건넸다. 역시나 무뚝뚝한 카운터 직원은 뉴델리에서 나이로비로 가는 예약 확인증을 확인하고는 “나이로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예약 확인증도 보여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몹시 긴장했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한국으로 가지 않고요, 나이로비에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로 갈 예정입니다” 그러자 그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한국사람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다시 “네, 맞는데 배낭여행 중이라 한국은 아직 안 가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내게 “영원히?”라고 되물었는데, 나는 이 직원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더욱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한국은 아마 올해 중순쯤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 확실히 정해지진 않았어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여행을 마치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여행하고 그 후에는 이집트를 그리고..” 내 대답을 들은 직원은 이제야 이해하겠다는 듯 “아~ 그럼 당신은 여행하고, 또 여행하고, 그렇게 계속해서 여행하는 건가요”라고 물어서 나는 “네, 맞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리자 이번에는 “비자는요?”라고 물었는데, 나는 자랑스럽게 “한국인은 공항에 도착해서 받을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윽고 내게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아디스아바바로 가는 예약 확인증을 보여주세요” 나는 입술에 침을 한 번 바르고는 소중하게 파일에 끼워둔 가짜 예약 확인증을 꺼내어 직원에게 건넸다. 직원을 그것을 유심히 확인하더니 종이를 꺼내 비행 편수와 출도착 시간을 적고는 “좋아요, 이해했어요. 즐거운 여행되세요”라며 마침내 나이로비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내게 건넸다. 나는 가짜 예약 확인증이 아주 멋지게 통한 기쁨에 환호하고 싶었지만, 침착하게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하고 천천히 카운터를 빠져나왔다.  


 비행기는 힘차게 활주로를 내달렸고 이윽고 육중한 기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인도 땅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간 순간이었다. 나는 한 참 동안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도시를 떠나며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언제나처럼, 창 밖으로 펼쳐진 인도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작별을 고하는 것이었다. 비행기는 순식간에 육지를 지나 인도양에 들어섰고, 어느새 창 밖은 파란빛이 돌뿐이었는데 그것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때 많이 아팠다. 정규와 무리한 스케줄을 감행한 탓에 면역력이 많이 약해졌는지, 일주일 전 황열병 예방접종을 맞은 것이 이제 와서 나를 괴롭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밤새 잠까지 설쳐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전날부터 한 끼도 먹지 않았지만, 빈약한 기내식 하나 다 먹지 못했고 이따금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글 좀 끄적이다 잠들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문득 비행기 천장에 달린 모니터에 나오는 지도를 보았는데, 어느새 비행기가 아프리카 대륙에 막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줄곧 굳게 닫아놓았던 창문 덮개를 열어보고 잠시 넋을 놓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비행기는 인도양을 건너 아프리카 대륙으로 반쯤 들어와 있는 상태였는데, 세상을 세로로 갈라 지나온 절반은 새파란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다른 절반은 황량한 황색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비행기가 지나고 있는 이 땅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소말리아였다. 본격적으로 위험한 지역에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멍하니 아프리카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몸이 좋지 않아 다시 잠에 들었다. 



 인도 뉴델리에서 출발하여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를 거쳐 13시간 만에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나이로비는 굉장히 세련된 건물들이 즐비한 번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치안이 상당히 불안하다고 하여 나는 무척이나 걱정이 많았다. 특히나 나이로비의 밤은 강도와 소매치기의 메인 무대라고 했는데, 입국심사를 마치고 바라본 창 밖은 절망스럽게도 태양이 거의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이토록 겁먹고 긴장한 나는 안중에도 없이 무심하게 모습을 감춰버린 태양이 원망스러웠다. 수하물을 찾고 나오자 공항에 상주해있는 택시회사 호객이 내게 무섭게 달려들며 가격을 흥정했다. 갑작스러운 인종의 변화에 나는 너무도 긴장하고 있었지만, 최대한 능청을 떨며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도 있다는 것 알고 왔어요, 너무 비싸요”라고 했는데 그들은 “버스 이미 끊겼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래요?”라고 대답해버렸는데, 이 대답으로 인해 협상도 망해버렸고 불안한 마음도 들켜버리고 말았다. 사실 나는 나이로비의 밤에 버스를 찾을 용기도 없었고 버스가 어디서 내리는지도 몰랐으며 숙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결국 나는 택시기사를 졸졸 따라 잔뜩 움츠려서 공항을 빠져나갔다. 


 모든 것이 두려웠지만 공항을 나와 첫눈에 들어온 나이로비의 드높은 하늘은 아름다웠다. 아직 완전히 어두컴컴해지지 않은 세상은 파란빛을 띠었으며 구름이 시원시원하게 떠있었다. 졸졸 따라가던 택시기사가 차에 다다르고 내게 문을 열어주며 타라고 했다. 그리고는 기사도 운전석으로 탔는데 이렇게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두꺼운 남자인지 차마 몰랐다. 나는 꽤 겁먹고 있었지만 목소리만큼은 그것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공항에서 멀어지고 시내로 가까워지면서 교통정체가 상당히 심해졌다. 그러나 한 가지 좋았던 점은, 사람들이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인도였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텐데 귀가 조용하니 좋았다. 그러나 점차 밤이 깊어질수록 마음이 몹시 불안해졌다. 시내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차창 밖으로 흑인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나는 너무도 무서웠다.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택시는 숙소 앞에 도착했는데 기사가 내게 “차가 너무 밀렸으니 좀 더 챙겨줘요”라고 했다. 아무리 무서워도 안 되는 건 확실하게 해야 했기에, 나는 단호하게 싫다고 말했다. 


 택시에서 내리고 배낭을 메었는데 너무도 어두웠다. 숙소가 바로 코 앞에 있었지만 너무도 멀어 보였다. 게다가 숙소 바로 근처가 *마타투 정류장이라 수많은 흑인들이 모여있었고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해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긴장한 만큼 매우 빠른 속도로 앞만 보고 걸어 숙소 간판이 있는 곳까지 갔는데,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순간 나는 너무도 당황하여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숙소 입구를 급하게 찾았다. 말도 못 하게 무섭고 당황했다. 전부 강도처럼 보였다. 인도에서는 느꼈던 두려움은 비교도 못할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나는 그렇게 몇 번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정신을 못 차리다가 문득 숙소 입구를 찾아 도망치듯 뛰어들어왔다. 급하게 들어오는 나를 보고 놀란 숙소 직원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숙소 직원은 어려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편안한 얼굴로 내게 친절히 대해줬고 덕분에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체크인이 끝나고 다른 남자 직원이 나를 데리고 방까지 안내해주었고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 후 방을 나갔다. 나는 그가 나가고 배낭을 침대 위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힘들었다, 정말” 나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숙소는 미리 조금 비싸고 좋은 곳을 예약해두었다.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깨끗한 침대를 보니 안심됐고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다. 

* 마타투(Matatu) – 케냐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승합차의 일종이다.  


 나는 숙소를 하루밖에 예약해두지 않았기에 잠만 자고 다음 날 아침에 바로 짐을 챙겨서 숙소를 나왔다. 비싼 가격 탓에 하루 이상 머물 수는 없었고, 미리 알아두었던 조금 저렴한 숙소로 가볼 생각이었다. 날이 밝아지니 나를 향한 눈빛들이 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나는 얼른 가서 배낭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정확하게 내가 가야 할 방향만 응시하며 매우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다행히도 숙소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며 남은 방도 있었다. 나는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서 잠시 쉬다가 바로 나가야만 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프리카에 잔뜩 주눅 들어 있는 내게 밖의 길거리는 지옥 같았다. 그러나 방에만 박혀 있을 수도 없었고 할 일을 미룰 수도 없었다. 나는 다음 목적지인 에티오피아 비자를 받기 위해 먼저 케냐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가야 했다. 숙소로부터 대사관까지 거리를 계산해보니 걸어서 약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았는데, 나는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강도와 소매치기가 많다는 나이로비의 길거리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직접 부딪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대사관까지만 도착하면 안전할 것이었다. 밖으로 나가면 인터넷이 되지 않을 테니 미리 숙소에서 대사관까지 위치를 확인하고,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숙소를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수십 명의 흑인들의 눈빛이 내게 쏠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빠르게 걸었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보는 짓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긴장도 했고 워낙 길도 복잡한 탓에 줄곧 휴대폰을 다시 꺼내 지도를 확인했다. 그러면서 누가 옆에서 뛰어오진 않는지 힐끔힐끔 경계하며 누가 채갈까 휴대폰을 꽈악 쥐었다. 이따금 호객하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나 “니하오”라며 낄낄대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조롱이나 인종차별은 이미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당했기에 이제 그 정도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행인 것은 공격적이거나 위협적인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카페로 들어가서 잠깐 쉬며 커피를 한 잔 하고 가기로 했다. 아프리카 케냐 하면 사파리 말고도 유명한 것이 커피 아니던가!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사파리만큼이나 기대하던 바였다. 게다가 몹시도 뜨겁고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긴장한 채로 빨리 걷다 보니 체력이 금세 빠져버렸다. 나는 항상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돌아서는 점원을 다시 붙잡아 “제일 큰 것으로 주세요”라고 한 마디 덧붙였다. 시원한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나이로비까지 와서 사진 한 장 찍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나는 천천히 용기를 내어봐야겠다고 생각하여, 앉은 채로 가방에서 슬그머니 카메라를 꺼내어 천연덕스럽게 카페 내부를 찍었다. 정확히 그 한 장의 사진이 카메라에 저장되자마자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나를 보고 뭐 하는 짓이냐고 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는 입구에 서 있는 경비를 불러 무척이나 화가 난 얼굴로 항의를 했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경비가 내게 다가와서 “여기서 사진 찍으면 안 돼요, 지우세요”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방금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지우는 것을 보여주고 더 이상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나는 화가 많이 난 정장 입은 남자에게 머쓱하게 웃으며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그는 인상을 더욱 찌푸리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가 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동양인에게 너무 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직원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는데, 방금 전의 일은 순식간에 잊어버릴 정도로 커피의 크기에 몹시 놀랐다. 1리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유리컵에 엄지손가락만 한 얼음이 듬뿍 들어있었으며 새까만 커피가 가득했다. 푹푹 찌는 날씨에 단비 같은 커피를 한 잔 마시고는 그 맛에 한 번 더 감탄했다. 나는 쓴 커피를 좋아하는데, 케냐의 커피는 굉장히 쓰면서도 그윽한 향이 좋았다. 게다가 시원하기까지 하니 너무도 행복했다. 나는 카페에 꽤 오래 앉아 커피를 전부 마시고 다시 가던 길을 가기 위해 일어났다.  



 다시금 마음을 단단히 잡고 대사관을 향해 걸어가는데 길가에 통신사가 보였다. 나는 아무래도 인터넷만 돼도 조금은 더 마음은 놓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싸지 않은 가격에 적당한 플랜이 있어 나는 여직원에게 개통을 부탁했는데, 그녀는 귀찮은 듯 무심해 보였다. 강한 발음 때문에 가끔 내가 그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짜증을 내기도 했다. 이따금 근처에 있는 다른 직원들이 그녀를 보며 웃기도 했고, 그녀 또한 그들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어도 직감상으로 나를 상대하고 있는 그녀를 놀리고 있다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기분이 나쁘거나 그러진 않았다. 나는 여직원에게 휴대폰과 여권 그리고 돈을 건네고 개통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인도에서 배운 것이 기다림이었기에, 나는 보채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 그렇게 줄곧 기다리고 있는데 휴대폰에 문자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녀는 “됐다”라며 내게 휴대폰을 돌려주었고, 나는 이로써 엄마가 친구를 통해 보내준 휴대폰이 잘 작동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 연결되니 확실히 마음이 많이 놓였다. 나는 통신사를 빠져나오며 아까 웃어대던 그들과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기분 좋게 대사관으로 향했다.  


 인터넷도 되고 지도로 길도 찾을 수 있으니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대한민국 대사관은 시내에서 꽤 벗어난 곳에 있었으며 나는 골목으로 가지 않고 일부로 큰 도로를 따라갔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교통정체가 몹시 심했다. 차라리 걸어가는 내가 훨씬 빠른 것 같았다. 길은 어렵지 않았고 그저 직진만 하면 됐으므로 나는 걷는 속도를 올렸다.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 그리고 도로의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처음만큼 거부감이 들진 않았고 점차 익숙해졌다. 다만 힘든 것이라면 뜨거운 햇볕 때문에 이마며 등에서 땀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고, 가방의 어깨 끈 자국으로 웃옷이 젖어버렸다. 나는 그렇게 한 시간을 걸어 이윽고 케냐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다다랐다.  

 입구의 팻말에 ‘대한민국 대사관’이라고 한국말로 적혀있었는데 어찌나 반가운지 몰랐다. 입구로 들어가자 지키고 있던 경비가 몸과 가방을 수색했고,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나를 어떤 방 안으로 안내했다. 나는 방 문을 열고 들어가 내부를 한 번 둘러보고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으며 매우 벅찬 기분이 들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벅찬 자부심과 감동이 들었다. 나는 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와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특이나 너무도 긴장하고 있던 나이로비에서 이렇게 안락한 건물에 당당하게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선반 위에 여행안내책자들이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전부 한국어였다. 벽에 걸려있는 큼지막한 TV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으며 벽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인자하게 웃고 계신 멋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나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까만 소파에 앉아 누군가 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 한 여자가 들어왔다. 케냐에 와서 처음 본 한국인이었다. 나는 너무도 반가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무슨 일로 왔냐는 그녀에게 나는 “에티오피아 비자받으려고 하는데, 대한민국 대사관 레터가 필요하다고 해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가능해요, 여권 주세요”라고 했는데,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또다시 자랑스러웠다. 나는 “잠시만요”라고 말하고 항상 여권을 보관해두는 지퍼를 열었는데, 순간 너무 놀라 심장이 정지해버리는 듯했다. 여권이 없었다. 그리고 문득, 개통하자마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던 것이 생각났다. 아, 휴대폰을 개통할 때 준 여권을 받지 않고 와서 까칠하던 직원이 전화한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 너무도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리며 그녀에게 “아까 인터넷 개통하고 여권 안 받고 온 것 같아요”라고 했는데 그녀는 어서 가서 찾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통신사의 위치가 어딘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데이터만 개통해서 전화는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나를 데리고 어떤 방으로 들어가서, 부재중 통화가 찍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내게 바꿔주었다. 무심하게 들리는 신호음을 들으며 나는 더욱 긴장됐다. 그리고 잠시 후 개통을 도와준 통신사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통신사 직원에게 “아까 인터넷 개통한 사람인데 여권을 놓고 온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직원은 “찾으러 와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직원에게 “길 가다 보여서 들어간 거라 위치를 모르겠어요”라고 말하자 그녀가 내게 주소를 불러주었는데 나는 도저히 그것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사관은 무척이나 쾌적했지만 나는 땀이 비 오듯 흘러 계속해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너무도 당황해서 거의 울상을 하고 있는 내게 대사관 직원이 “잠시만요”라고 하고 어디로 뛰어가더니 케냐인 한 명을 데리고 와서 전화를 바꿔주라고 했다. 케냐인이 통화를 마치고 끊고는 대사관 직원에게 “나 여기 어딘지 알아요, 제가 이 친구 데리고 갔다 올게요”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케냐인은 대한민국 대사관 운전기사였다. 그러나 대사관 직원은, 내게 “기사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같이 갈 수는 없어요”라고 하고는, 기사에게 “대신 기사님이 같이 가서 택시 잡아주고 주소 설명해줘요, 가격도 합리적으로 잡아주고요”라고 했다. 나는 너무도 고마웠지만 여권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안절부절 참을 수가 없었다. 기사는 나를 데리고 가면서 줄곧 안심시켜주었고 대사관 바깥까지 같이 나가 택시를 잡아주었다.

 


 택시를 타고 통신사로 향하는 길은 지독하게 막혔다. 차는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창 밖을 한 번 보다가 휴대폰을 한 번 보고 다시 정면을 한 번 보며 정서불안증세마저 보였다. 그런 와중에 택시기사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대는 통에 너무도 신경이 예민해졌다. 대사관에서 볼 일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갈 때 자기에게 연락하라며 줄곧 전화번호를 알려주려고 했는데, 나는 일단 빨리 가기나 하라고 화를 냈다. 나는 극심하게 긴장하고 놀란 탓에 이윽고 속이 울렁거리며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 나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났다. 가장 중요한 여권을 잃어버린 것이 너무 한심하고 화가 났다. 30년처럼 느껴진 30분을 달린 택시는 이윽고 통신사 앞에 도착했고, 나는 문을 차마 닫지도 못하고 직원에게 뛰어가서 여권을 달라고 했다.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내게 여권을 돌려주었다. 나는 여권을 돌려받자마자 한 번 훑어보며 없어진 페이지는 없는지 확인해보았다. 그러나 만지거나 건드린 흔적은 없었다. 다행이다, 너무 다행이었다. 얼굴에 거품 칠을 하고 세수를 하다가 중간에 물이 끊겨버리듯, 그렇게 여행을 하다가 어처구니없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했다. 다행이다, 너무 다행이었다. 다른 도시도 아니고 나이로비에서 여권을 잃어버리고도 무사히 찾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다시 택시로 돌아와 이제야 택시기사의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척했다. 울렁거림은 여전히 있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다시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돌아갔다.  


 대사관 직원이 다시 나를 보고 “찾았어요?”라며 활짝 웃었는데, 나는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을 했는지 셀 수도 없다. 기사도 일을 하다 말고 나와서 내게 여권 찾았냐며 물었다. 그렇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대사관 직원이 내게,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 빨리 레터 만들어 줄게요, 어차피 돌아갔다가 내일 다시 올 차비도 없잖아요, 여권 줘봐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네 시에 퇴근이라고 했는데 시간은 이미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는 “커피 마실래요?”라는 그녀의 질문에, 염치없이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는 커피를 한 잔 주고는 검정 소파에 앉아 편하게 기다리라고 했다. 하얀 유리잔에 담긴 커피를 들고 소파에 앉으며 유리로 된 테이블에 살짝 내려놓는다는 것이 그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커피를 한 잔씩 홀짝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는데, 한나절은 걸린다던 레터 작업을 금방 해서 가져다주었다. 그러면서 “잘 하시겠지만, 앞으로 여권 잘 챙기시고 여행 잘 하세요”라고 말하고는, 금방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나는 명함이라도 한 장 주며 나를 소개하고 싶었지만 그럴 새도 없이 그녀는 떠나버렸다. 나는 대사관 안에서 잠시 혼자 쭈뼛쭈뼛이며 기다려보았지만 그녀는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또 한 번의 커다란 도움을 받고 대사관을 나왔다. 나는 정말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나는 1시간에 걸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 큰일을 겪고 나오니 나이로비 길거리도 그렇게 무섭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방에 들어와서 지쳐버렸다. 정말 긴 하루였고 많은 일이 있었다. 다시금 긴장을 조여야 할 것이었다. 여권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다시 찾았더라도 문제였다.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에티오피아 대사관을 찾아갔다. 에티오피아 대사관 역시 40분은 걸어야 할 거리였는데 이제는 나이로비 거리도 점점 익숙해졌다. 나는 아침 10시에 에티오피아 대사관에 도착하여,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비자를 받았다. 한국 대사관에 비하니 일 처리하는 방식이나 시간이 어처구니없이 느렸고 이해되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다음 여행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여행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케냐를 즐기는 일, 그토록 기대하던 마사이마라 사파리 3일간의 투어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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