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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AJUNG May 07. 2018

케냐 사파리 투어, 마사이마라 #1

 끊임없이 모기는 윙윙 나를 괴롭혔고 숙소 바로 옆 건물이 클럽인지 쿵쿵 밤새 틀어대는 음악소리에 거의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했기에 알림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귀마개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밤새도록 뒤척여야만 했고, 덕분에 늦지 않게 일어날 수 있었다. 요즘 밤에는 씻고 자도 아침에 외출할 땐 잘 씻지 않게 됐다. 밤에는 땀에 흠뻑 젖어버린 내가 찝찝해서 씻고 자지만 아침에는 양치 말고는 딱히 씻을 이유가 없다. 머리도 무척 길어져서 한 번 감을라 하면 몹시 귀찮았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서 준비할 것이 별로 없었고 바로 나갈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아래층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가서 아침식사와 커피를 한 잔 했다. 아침부터 활동해야 하는 날이면 나는 주로 일찍 준비하고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시간을 꼭 갖는다. 그 차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에 나는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픽업차량이 오길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20분 정도 지나자 이내 차가 한 대 와서 “마사이마라 투어 가세요?”라고 물었다. 나를 데리러 온 차였다. 나는 “네, 맞아요”라고 하고 아무런 의심 없이 짐을 트렁크에 싣고 조수석에 앉았다. 그리고는 문득 이 차가 정말 나를 데리러 온 것이 맞는 것인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프리카에서 강도를 만났다거나 범죄를 당한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대부분이 차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물었는데 그는 내가 투어를 계약한 회사에서 온 사람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의심을 떨칠 수가 없어 차가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도로 줄곧 확인했다.  


 차는 정직하게 사무실 앞에서 멈추었다. 나는 트렁크에서 다시 짐을 꺼내어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2박 3일간 함께 투어를 하게 될 사람이 누굴까 하고 주변을 훑어보았는데 한 백인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영국인 ‘안토니(Anthony)’였다. 안토니는 케냐 나이로비에 출장 차 온 것이었는데 회사에서 삼일의 시간을 주어 사파리 투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사막 색의 사파리 유니폼을 입고 허우대가 좋은 흑인이 한 명 들어왔는데, 그는 나와 안토니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했다. 삼 일간 우리의 사파리 투어 책임을 맡은 가이드 잭슨(Jackson)이었다. 인사를 하고 잭슨은 차를 타러 가자고 했다. 나는 커다란 배낭은 사무실에 맡기고 필요한 것만 챙긴 가방을 들고 나왔다. 이제 필요한 것만 챙기라면 정말 필요한 것만 챙기게 됐다. 옷은 입고 있는 한 벌이면 충분했으며 간단한 세면도구 휴지 등이 전부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촬영장비 혹은 충전기였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봉고차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 안에는 여섯 명이 더 있었는데 아시안 두 명과 인도인 네 명이었다. 나이로비에서 바짝 긴장해있다가 인도인을 다시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시안이 두 명이나 더 있다는 것도 의지가 됐다. 그렇게 우리 여덟 명과 가이드 잭슨이 한 차에 모여, 곧 첫 번째 목적지로 출발했다.  



 줄곧 달리던 잭슨이 첫 번째 뷰 포인트에서 멈추었다. 나이로비에서 한 시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고 기대하던 진짜 아프리카의 모습 이리라. 낮고도 평평한 초원을 따라 눈길을 올려보면 새파란 하늘이 있고, 그 위로 새하얀 솜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떠있으며, 구름의 그림자가 푸른 초원 위에 거뭇거뭇한 얼룩을 만들었다. 언덕을 타고 초원을 지나 향긋한 풀내음을 머금고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하니 기분 좋았다. 나는 앞으로 삼 일간 함께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먼저 인도인 네 명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서로 친구였으며 뭄바이 근처 어느 도시에서 왔다고 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영어를 잘 하진 못했으며 서로 굉장히 뭉쳤다. 그리고 나는 아시안 두 명에게 갔는데, 차에 탔을 때는 이들이 따로 앉아있어 몰랐는데 알고 보니 이들은 부자(父子)였다. 중국 산둥성의 칭다오에서 온 이 부자는 두바이를 지나왔으며 나이로비를 거쳐 이집트로 여행할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중국 역사학과 교수였으며 아들은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도 영어는 거의 하지 못했으며 간단한 대화만을 간신히 이어나갈 수 있었다.  


 짧은 휴식을 갖고 우리는 다음 지점으로 향했다. 잭슨이 차를 몰며 줄곧 강조하던 것이 있었다. “우리는 삼 일간 함께 여행할 ‘팀’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잭슨팀’이라고 부릅니다.” 잭슨은 우리가 삼 일간 함께 하게 될 ‘팀(TEAM)’임을 강조했으며 화합을 요구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좋던 싫던 삼 일간 꼭 붙어 행동해야 할 사이에 분열이 생긴다면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었다. 나와 안토니는 잭슨의 그런 말에 힘 있고 우렁차게 대답했으나, 중국인 부자는 알아듣지 못해 대답을 하지 못했으며 인도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지나치게 자기들끼리 뭉치고 따로 노는 인도인들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잭슨은 차를 몰다가 근처에 교회나 작은 동네가 보이면 그것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뒤에 앉은 인도인들은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떠들며 잭슨의 설명은 듣지 않았다. 게다가 잭슨이 설명을 하든 말든 이들은 누군가와 큰 소리로 통화했으며 그때마다 잭슨은 설명을 멈추었다. 정말이지 이들은 예의가 무엇인지 매너가 무엇인지, 무례가 무엇인지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이윽고 잭슨은 터지고야 말았다. “한 차에 두 팀이 있네요”라고 화를 내며 “제가 말할 때는 부탁인데 조용해 주세요”라고 덧붙였다. 투어를 시작하기도 전에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줄곧 달리던 잭슨이 차를 멈추고는 이곳에서 태워야 할 사람이 있다고 했다. 차는 꽤 낡은 봉고차였는데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몹시 더웠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런 것이 오히려 좋았다. 살도 적당히 더 탔으면 했고 아프리카에서는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머리를 땋아 레게(Reggae)를 한 여자가 활기차게 나타났다. 조용하던 차 안은 그녀가 타자 금세 시끌벅적했으며 붙임성 좋게 모두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독일인 로티(Loti), 그녀는 화려한 등장만큼이나 굉장히 특이했다. 중국 상하이(Shanghai)에서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그녀는 잠시 시간을 내어 케냐로 놀러 온 것이었는데, 그녀의 할머니가 케냐인이었으며 할머니 댁에 놀러 온 김에 사파리 투어를 온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결혼한 친척을 보러 4월쯤 한국에도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정말 웃기게도 그녀는, 중국 부자의 통역을 맡게 됐다. 독일인이 중국어 통역이라니, 그렇게 만들어진 특이한 ‘잭슨팀’ 10명은 마사이마라를 향해 다시 달렸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잭슨은 포장도로를 달렸고 다들 일찍부터 나온 탓에 곯아떨어졌다. 잠시 후 우리는 한 식당 앞에서 멈추었고 다들 비몽사몽 일어나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사는 뷔페였는데 거의 인도식이라고 봐야 했다. 케냐 역시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인도의 영향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었다. 세계를 다니면서 흥미롭게 보이는 것 중 하나가 과거의 영향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모습들이다. 인도는 동서남북 서로 다른 모습을 갖고 있으며, 아프리카까지 와서 짜파티(Chapati)를 먹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기념품 가게에 구경이나 할 겸 들어갔다. 무엇을 사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그저 여기서 무엇이 유명한지, 그래서 무엇을 기념품으로 만들어놓았는지 보고자 들어간 것이었다. 그런데 첫눈에, 나무로 조각되어 케냐 국기 색이 칠해진 마사이족 병따개가 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정규가 병따개를 모은다고 하던 것이 생각났다. 인도까지 와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엄마 선물까지 사준 정규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나는 병따개를 샀다. 어디서도 구하기 쉽지 않은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뻔히 바가지 가격인 것을 알면서도 이런 관광지에서 기념품을 산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꼭 정규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선물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 사람을 생각하고 무엇을 사줄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봤을 때 그 사람이 생각나면 그게 선물인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숙제는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부서지지 않게 조심히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이 남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달렸다. 차는 두 시간 넘게 끝없는 초원을 달렸으며 나는 창 밖의 구름을 보았다. 창 밖의 구름이 예뻤다. 여행하며 아름다운 곳에는 항상 구름이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구름이 있는 곳이 아름다운 것일까. 화창한 날에 구름이 피어 오른 아름다운 날이던 말던 그런 것들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온 내가, 어느덧 구름을 좋아하게 됐다. 화창하게 핀 햇볕 잘 드는 날, 파란 하늘 속에 구름이 뭉게뭉게 묻어있으면 그 날은 너무도 자유롭다. 드넓은 케냐의 초원 위에 떠있는 구름이 몹시 높아 보였으며 너무 많지도 않게 틈틈이 자리 잡은 구름이 참 예뻤다. 구름은 어디에 있어도 예쁘다. 하늘 위에 있어도 예쁘고 물 위에 떠있어도 예쁘다. 땅에서 올려다보는 구름도 예쁘고,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구름도 예쁘다. 그러다가 비행기가 구름 속을 파헤쳐가기라도 하면, 구름 속에 있는 것이 신기한 마음이 예쁜 어린아이가 된다. 그래서 나는 마사이마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줄곧 뭉게구름을 바라보았다.  



 줄곧 포장도로를 달리던 차는 이윽고 오프로드로 접어들었고 잭슨은 "투어는 이제 시작입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평온하게 달리던 차는 이리저리 튕기기 시작했고 조용히 창 밖의 구름을 보는 것은 멈추어야 했다. 차는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요란하게 달렸고 이따금 바닥이 긁히는 소리도 들렸지만 잭슨은 전혀 개의치 않고 액셀을 밟았다.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그저 너스레는 아닌 모양이었다. 잠시 후 친구들이 시끌시끌하며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창 밖을 보았는데 야생 기린 한 마리가 초원을 거닐고 있었다.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프리카 초원을 거니는 야생 기린이라니! 그리고 반대편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기린이 한 무리를 지어 있었다. TV에서만 보던 야생동물들이 초원을 거니는 모습, 그대로였다. 엄청났다. 역사적인 첫 야생동물의 등장에 잭슨은 차를 멈추어주었고 내려서 구경할 시간을 줬다. 줄곧 졸던 우리는 어린아이들처럼 무척 신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인도인 넷이 기린 무리를 향해 뛰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잭슨이 한 마디 했다. “뒤쫓듯 뛰어가지 마세요!”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뛰다간 야생동물이 놀라 전부 도망가버릴 것이었다. 나는 이들과 함께 해야 할 삼 일이 심히 불안했다. 나는 천천히 조심스레 다가가 야생 기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했지만 멀어서 온전히 그 모습을 담을 수가 없었다. 아쉬웠다. 좋은 렌즈가 있으면 했지만 그런 아쉬움은 좋은 렌즈가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었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형형색색의 천을 몸에 두르고 있는 부족인들이 많이 보였다. 네팔 히말라야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깊숙한 곳에서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들은 소, 양, 염소 그리고 닭 같은 가축을 키우며 부족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중에는 어린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아이들은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는데, 나는 부족인들과 아이들에게 보며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들의 터전을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침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런 것들이 미안했다. 우리가 아이들의 인사에 답 인사를 할 때에는, 이미 너무 빠른 속도로 아이들을 지나쳐버린 후였다.

  


 두 시간을 더 달려 이윽고 캠프에 도착했다. 우리는 간단한 설명을 듣고 배정받은 숙소로 갔다. 나는 안토니와 함께 숙소를 사용하게 됐다. 숙소는 커다란 텐트로 되어있었으며 안에는 침대가 두 개 있었고 화장실이 딸려있었다. 화장실은 깨끗했으며 양변기가 있었고 세면대와 샤워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어느 게스트하우스의 화장실과 비교해보아도 전혀 밀리지 않는 시설이었다. 심지어 밤에는 뜨거운 물이 콸콸 잘도 나와 마음껏 샤워를 할 수도 있었다. 다만 화장실에 전등이 고장 났는지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는데 그것은 전혀 상관치 않았다. 전기가 항상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고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투어를 마친 저녁 식사시간 7시부터 자기 전 10시까지,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시간 5시부터 8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왔다. 나는 당연히 전기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왔기에 오히려 몇 시간이라도 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우리는 한국이라는 작고도 풍족한 나라에서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있으며, 전기나 물에 대해선 아무런 걱정 없이,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도 모른 채 살고 있다. 물론 나도 그런 것들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세계의 얼마나 많은 나라가 부족한 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지, 전기공급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부단히 느끼며 다니고 있다. 한국인은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한 번만 정전이 되어버려도 뉴스 1면에 나올 만큼 큰일이 되어버리고 기차가 30분이라도 지연되어버리는 날엔 보상을 운운하며 같은 민족끼리 죽일 듯이 달려든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안락하게 누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안다면, 우리는 더욱 강해질 것이리라. 

 

 한 시간의 티타임이 주어져 우리는 식당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라고 해봐야 나와 안토니, 그리고 로티 그렇게 셋이 모인 것이 전부였다. 인도인들은 어디 갔는지 자기들끼리 뭉치느라 바빴고 중국인 부자는 식당에 함께 있었지만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 셋은 인도인들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안토니와 로티도 줄곧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놀러 가는 듯 차의 중앙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시끄럽게 떠들고, 통화하며 잭슨의 투어를 방해하고, 심지어 조수석에서 차창을 열어놓았던 로티에게 “닫아”라고 명령조로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줄곧 인도에 있다 와서 이런 무례함에 이골이 난 상태였지만 안토니와 로티는 정말 불쾌해하며 열을 올렸다. 나는 부디 투어 중에 분열만 일어나지 않길, 싸움만 나지 않길 바랬다.  



 우리는 다시 차로 모였다. 마침내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로 들어가서 본격적인 사파리 투어를 하며 야생동물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는 케냐의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어 세계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로 꼽힌다. 탄자니아와 케냐의 국경선을 중심으로, 케냐 땅을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라고 하며 탄자니아 땅을 ‘세렝게티 국립공원’이라고 한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 입구가 있었다. 우리는 마사이마라로 들어가려고 차를 잠깐 입구에서 멈추었는데, 부족 여자들이 차로 붙어 온갖 장신구와 기념품을 파려고 했다. 나는 창문을 닫아놓은 채로 그들의 눈길을 애써 피하며 무시했지만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이 안타까웠다. 꼭 이렇게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돈의 달콤한 맛을 보아버린 것은 아닐까, 부족 생활만으로는 그들끼리 살아갈 수 없는 것일 까.  

 그리고 우리는 곧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에 들어왔다. 이때부터 잭슨은 더욱 쉼 없이 차를 몰며 야생동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사이마라에는 우리 말고도 여러 팀이 있었는데 서로 뿔뿔이 흩어져 야생동물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사이마라에 들어온 각자의 모든 팀은, 또다시 하나의 팀을 이루었다. 그러니까 뿔뿔이 흩어져서 야생동물을 찾다가, 어떤 차에서 보기 어려운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혼자 몰래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차에게 무전을 보낸다. 그러면 무전을 받은 차들은 그곳으로 달려가서 야생동물을 구경하고, 또 다른 차로부터 다른 야생동물을 발견했다는 무전을 받으면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여기에선 이것을 ‘게임 드라이브(Game Drive)’라고 불렀다. 우리가 지나가다가 사자 무리를 발견하면 잭슨이 무전으로 우리 위치를 무전으로 전파하고, 우리가 다 보고 떠날 쯤에 다른 차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차에서 버팔로 무리를 발견했다는 무전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가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부지런히 다니며 본 야생동물은 톰슨가젤, 기린, 얼룩말, 코끼리, 버팔로, 임팔라, 그리고 암사자와 숫사자였다. 정말 굉장했다. 가장 기대했던 사자나 기린도 놀라웠지만 의외로 정말 놀랍도록 멋졌던 것은 코끼리 무리였다. 수십 마리의 코끼리가 한 무리를 지어 드넓은 초원을 유유히 이동했는데, 거대한 귀를 펄럭이며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이 정말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나는 코끼리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부리나케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카메라를 내려두고 코끼리가 걷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고요한 초원의 건조한 풀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장관을 볼 수 있다니, 모든 것에 감사했다. 태어난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건강하다는 것이, 볼 수 있다는 것이, 시간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그리고 차 백미러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문득, 아프리카 대초원을 자유롭게 거닐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하고 대견했다. “너 왜 여기에 있니, 대단하다 정말”이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혼잣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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