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기 #5 - 2019년 6월 22일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창업을 준비하면서 많은 자료를 뒤적였다. 시니어와 연관된 여러 키워드 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정년퇴직’과 ‘재취업창업’이다. 사업이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피해가기 어려운 정년퇴직,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우리 어머니가 내년에 환갑을 맞이하신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동네 사람들 다 불러 모아서 무병장수를 바라며 환갑잔치를 했을 일이다. 그런데 요즘 누가 그렇게 요란스레 환갑잔치를 하나. 현대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 60세까지 사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저 가족끼리 여행이나 한 번 다녀오고 외식이나 한 번 하면 될 일이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앞으로 사회가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를 시사한다. 그중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면 바로 ‘정년퇴직 이후의 삶’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나라 평균 은퇴 연령 시기는 대략 55세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통계 기관마다 계산한 평균 은퇴 시기가 조금씩 다르긴 하나 대략 50~60세 사이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은퇴 이후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래. 100세까지 살기는 어렵다 치고 만약 우리가 80세까지 살 수 있다면 55세 이후의 25년은 대체 무슨 돈으로 살아야 하는가? 여기까지가 우리가 경제적인 이유로 노후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노후준비. 누구는 벌써 그런 걸 준비하느냐 짜증을 낼 수도 있고 누구는 벌써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년퇴직자의 퇴직 후 관심사를 보면 대략 이렇다. 퇴직 후 대기업의 경력을 살려 중소기업이든 어디든 재취업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눈을 낮춰 단순육체노동 직업을 찾지만 이마저도 경쟁률이 어마어마하다. 그러고 나면 모아둔 돈과 퇴직금을 가지고 귀농귀촌이나 할까 생각한다. 이따금 집사람과 퇴직하면 시골로 내려가 농사지으며 자급자족하며 살자는 이야기를 간간히 하긴 했었다. 그런데 귀농귀촌 강의에서 하는 말이 다 똑같다. “귀촌은 하되 귀농은 하지 마십시오.”그만큼 귀농으로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시골보단 그동안 살아온 도시에서 창업을 하는 게 더 경쟁력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내가 그동안 회식으로 이런저런 식당에 많이 다녀봤으니 괜찮았던 음식과 서비스를 모아 장사를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사실상 여기서 많은 정년퇴직자들이 사기를 당하거나 망한다. 우리나라 시니어 은퇴설계 강사들이 주구장창 설파하는 말이 있다. “제발 그동안 열심히 모아둔 돈 불리겠다고 까먹지 마세요! 그것만 지켜도 편한 노후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퇴직자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게 말처럼 쉽나.”이게 우리나라 정년퇴직의 현실이다.
필경 노후준비라는 게 돈만 모아둔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거다. 사람도 관성 비슷한 영향을 받아서 돈을 아무리 많이 모아놔도 평생을 일하면서 살아온 사람이 은퇴하자마자 갑자기 마음 편하게 모아둔 돈 쓰면서 살 수가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월 평균 240만 원씩 공무원 연금을 받는 사람들도 재취업창업을 고민한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재취업, 창업에 목을 매는 것 같나.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로?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없진 않지만, 진짜 중요한 핵심은 사회적인 고립감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평생을 부서에, 기업에, 정부에, 사회의 일원으로 속해 살아온 사람이 갑작스레 모든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원치 않는 공허한 여가를 얻게 돼버리면 웬만한 정신으론 버티기 힘든 것이다. 정년퇴직 직후 갑자기 자신이 종로 탑골공원 정자에 멍하니 앉아있는 ‘노인老人’돼버린 기분. 그 비참한 기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말하자면 은퇴 준비라는 게 비단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서적인 측면도 모두 함께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그저 하고 싶은 일이나 찾아 다니는 자유인 정도로 보는 것 같다. 여행 다닐 땐 거의 속세를 떠난 스님 취급을 받기도 했다. 창업을 준비한다고 하면 한심하게 보는 이들이 많다. 뭐,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상관하진 않는다. 다만 홈페이지에 들어와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나마 내가 이렇게 책을 쓰고 창업을 준비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정년퇴직을 하고 노후준비를 하고 있노라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언젠가 한 번은 할 수밖에 없는 정년퇴직이고 노후준비라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하는 게 남들보다 경쟁력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설명해 30대에 창업을 하는 것과 60대에 창업을 하는 것 중 언제가 더 경쟁력이 있겠는가. 게다가 30대에 창업하다 실패하면 다시 살아날 구멍이 있지만 60대에 창업하다 실패하면 정말 다시 살아나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일을 하기 싫어서 회사를 그만둔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 나는 80이든 90이든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일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와 창업을 준비하는 거다. 망하면 또 하고, 잘 돼도 또 할 거다. 나는 창업도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사업 아이템을 두고도 실패한 사람과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노하우와 기술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운도 따라야겠지만. 훌륭한 기술은, 정말 사람 밥 먹여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누구라도 한 번은 정년퇴직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때를 위해 철저히 준비해두어야 한다. 내 노후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소속 기관만 믿고 충성하며 세월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믿고 준비할 것인가. 젊었을 때부터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