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일기 #6 - 2019년 7월 1일
내 어린 시절 생활기록부를 들춰보면 ‘주의산만’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얼마나 산만하게 굴었으면 선생님들끼리 말이라도 맞춘 것처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주의가 산만하다는 첨언이 붙어있을까. 실제로 나는 지금도 그렇게 산만하다.
산만하다는 말은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와 같다. ‘주의산만’이라는 단어가 무척 거슬렸던 우리 어머니는 나를 집중력 학원이라는 곳에 보내셨다. 이름만 들어선 대체 뭘 가르치는 학원인지 짐작조차 안가는 그곳에서 나는 집중력 고도화 훈련을 받았다. 컴퓨터 화면에 동그란 공이 하나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사이에 어떤 단어가 빠른 속도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러면 나는 눈으로 공을 따라가며 단어를 캐치해야 하는 일종의 게임이었는데, 이런 게임이 꽤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집중력 학원이라는 곳에서 쫓겨났다. 도저히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훈련까지 저해한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주의산만’은 아직까지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나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동시에 다른 많은 일을 생각하고 실제로 행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글 쓰는 일은 꽤 긴 시간 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나는 지금 이 짧은 글 하나를 쓰면서도 수많은 일을 했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와 헤어밴드를 찾아 착용했으며 쌓여있는 설거지를 했다. 갑자기 출출해서 컵라면을 하나 끓여먹었고 그냥 심심해서 주의를 둘러봤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웃기다. 사업계획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다가 문득 시간을 봤는데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왜 꼭 무언가에 집중해야 할 땐 주위 모든 것이 재미있어 보이는 걸까! 지금은 냉장고 위에 쌓여있는 분리수거를 하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러 담으며 글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면 문제가 많이 생긴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일을 마무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나마 일을 마무리 했다고 해도 집중력이 분산됐기 때문에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방법을 조금만 바꿔보면 이걸 재미있게 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는 집안일을 한 번에 끝내지 않고 일부로 조금씩 남겨둔다. 그리고는 일종의 미션처럼 최대한 집중하여 목표한 작업을 마무리한 후 상으로 설거지를 한다. 그러면 그렇게 속이 후련할 수가 없다! 그리고는 다시 다음 목표치를 채운 다음 상으로 빨래를 걷는다. 이런 단순 무식한 방법이 아직까지는 내게 무척 잘 맞는다. 집중해서 일하며 사무실까지 청소하는 일석 삼조의 효과를 거두니 말이다! 삼조인 이유는 사무실이 곧 집이니까, 집도 깨끗하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라면 잠깐 밖에 나가서 담배 한 대 태우고 오면 될 일이다. 그런데 내가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딴 짓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이런 글이 나왔다. 괜히 부끄럽게 치부만 드러낸 것 같다. 오늘 글은 망했다. 그래도 다 썼으니 분리수거하고 와서 자기 전까지 사업계획서 프레젠테이션 자료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