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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BAJUNG Feb 10. 2018

마지막 비행

2017년 09월 28일

 

 캐나다 밴쿠버(Vancouver)를 마지막으로 2년 8개월의 비행 생활을 마쳤습니다. 비행 생활이라고 하니 말이 좀 웃기네요. 방황했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사실 그 의미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는, 내팽개쳐져 있는 모양새를 찍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 작업복을 입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잠깐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로 빨래 바구니에 던져 버리고 술을 마시러 나가긴 했지만요. 마지막은 833팀에 저 혼자 조인(JOIN) 되어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이었습니다.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마지막 비행을 즐거운 추억으로 만들어 주신 팀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이번 비행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비행하면, 이 생활도 할 만하겠구나” 두려울 것이 전혀 없었던 지라, 평소 비행하면서 못해본 것들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마치 이등병이 주머니에 손 한번 넣어보고 싶은 심정으로, 주머니에 양손을 딱 꼽은 채 아일(Aisle)을거닐기도 했고, 심지어 그 상태로 손님과 대화도 했습니다. 여전히 예의 없는 손님들은 존재했고, 그들의 최소한의 요구만 들어주며 적당히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본 사람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매너가 좋으신 손님이 계셔서 기내에 있는 ‘새우깡’을 전부 드릴 뻔했습니다.‘불만’과 ‘칭송’따위의 족쇄는 풀어 던져버리고, ‘나답게’ 서비스했습니다. (사실 퇴사 날짜가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불만이 접수되면 팀에 엄청난 피해가 갈 것이 두려워 완전히 불만의 족쇄에서 벗어나진 못했었습니다.) 대한항공 승무원을 준비할 때, 그리고 진짜 승무원이 되어 날아갈 듯 기뻐하며 상상했던 서비스 하는 나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이었을 겁니다. 손님들께 “저 이게 마지막 비행이에요! 앞으로 여행 떠납니다”라며 부지런히 떠들고 다녔고, 한 손님께서는 “이거 골 때리는 놈이네”라고 하시며, 한국에 도착해서는 “축하한다!”라고 악수해주셨습니다. 지금 이 분은 제 휴대폰에 인연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또 다른 분은 “맞아! 그렇게 살아! 인생 즐겨야지, 비행기에 갇히지 마요”라며 밴쿠버에 놀러 오면 데리러 나오시겠다고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마지막 비행'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넘쳐나는 업무와 빗발치는 Call에 손님과 대화를 할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승객 휴식시간에 조금 시간이 생겨 손님과 대화를 하기에는 “승무원이 시끄럽게 대화하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라는 불만이 접수될까 두렵습니다. 가끔 유난히 불만에 민감하신 사무장님들은, 승객과 대화하고 있으면 오셔서 “목소리 조금만 낮춰주세요.”라고 하고 가십니다. 그 후로 저는 눈치가 보여 손님과 대화를 끊습니다. 이건 제 성격 탓인지 모르겠는데, 선배들이 업무를 보는 중에는 눈치가 보여 승객과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행하다가 알게 된 남자 선배가 있는데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고, 대리(AP)로 진급도 했길래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그 선배와 같은 팀인 어떤 분을 만났는데 이렇게 말하더군요. “걔, 진급하려고 ‘칭송’ 받겠다고 아일(Aisle) 나가서 손님들이랑 얘기하느라 갤리(Galley)는 들어오지도 않아요.” 불만이 두려워 승객과 대화를 피하고, 팀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도 입은 닫는 것이 승무원 정신건강에 좋을 듯합니다.


 승무원들은 불만과 칭송 사이의 간극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사람’이 아니라 마치 ‘괴물’처럼 보이는 건 우리의 잘못일까요? 왜 우리는 ‘나답게’ 서비스를 하지 못할까요. 그래도 이년 반을 일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나답게’ 서비스를 해서 여한은 없습니다. 그렇게 두려웠던 손님들이 이제야 친근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괴물’은 불만이라는 제재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이었습니다. 그동안 비행기에 오르면 마치 사자 무리 가운데 놓여있는 강아지와 같은 기분으로 일했는데, 이날만큼은 무대 위의 지휘자였습니다. 제가 잘못되고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왔습니다. 이제껏 저는 제가 아니었던 거지요, 대한항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손님들은 제 서비스를 받지 못하셨고 대한항공의 서비스를 받고 가셨네요. 왠지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불만과 칭송의 족쇄에서 벗어나야 진정 한 우리의 서비스를 할 수 있습니다. 필경 대한항공에서는 다 헛소리입니다. 승객과 신이 나서 춤을 추며 비행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이런 것이 우리가 하고 싶은 서비스 아닐까요? 이제 저는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이별을 고했습니다. 곧 여행을 떠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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