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아빠를 용서하지 못했다

사랑하지 않아도, 미워하지 않기 위해

by 김열매

나는 아직 아빠를 용서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워하는 일에 너무 지쳐,

이제는 용서하는 법을 천천히 배워보려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람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정도 많고 마음도 약한 사람이 우리 아빠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삼십 년의 세월 동안 쌓인 감정을 풀어내려면 꽤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결혼 전 엄마가 아빠 사주를 보았다고 했다. 그때 무당은 역마살이 껴서 가만히 있지 못할 거라며, 결혼하면 고생 좀 할 거라고 했단다. 심지어 주변 어른들이 “너 쟤랑 결혼하면 고생한다.” 결혼을 말렸을 정도니 말 다했다.


하지만 고작 스무 살이었던 엄마 귀에 삶을 진득이 살아 본 어른의 충고가 제대로 박힐 리 없었다. 결국 엄마는 그렇게 고생길에 제 발로 올라탔다.


엄마와 아빠는 여덟 살 차이가 난다.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스물둘, 아빠는 서른이었다.


엄마는 어릴 적 외할아버지의 술 중독과 도박, 가정폭력을 겪었다. 그로 인해 트라우마와 자상한 ‘아버지’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그 결핍은 단순하게 ‘나이가 많은 남자는 든든하게 나를 챙겨줄 거야‘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낳았다. 최근에 들어서야, “든든한 건 나이랑 아무 관련이 없어!” 라며 뒤늦은 깨달음에 울분을 토하셨다.


엄마는 기대했던 남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을 거듭했고, 나는 기대했던 아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이 쌓여갔다.

실망은 차곡차곡 쌓이다 원망이 되었고, 분노가 되어 사람을 집어삼켰다.


아빠는 늘 엄마에게 반문했다.

“내가 뭘 잘못했냐.”


결혼을 해보니, 아빠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아빠는 스스로 남들은 하지 못하는 대단한 ‘사위’ 역할에 보상 심리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외할머니와 평생을 살았다.

그 말은 즉, 아빠는 장모님을 모시고 평생을 살았다는 말이 된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며느리의 이야기는 꽤 흔한 일이지만, 장모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사위의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없다. 드러나는 면만 볼 수밖에 없는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장모님을 모시고 평생을 살다니, 그런 남자 없다!”


밖에서 아빠는 최고의 남편이자 사위였다.

모시고 산 것도, 대단한 일인 것도 맞다.

하지만 엄마랑 나는 그런 시선들이 조금 고까웠다.


엄마와 내 기억 속 아빠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할머니에게 장모님, 혹은 어머니라는 호칭조차 부른 적이 없다. 외삼촌들이나 남들 앞에서는 “우리 장모님”이라고 잘만 외치면서, 정작 그 장모님은 삼십 년 동안 장모님 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

본인 형수가 시어머니에게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험담을 하는 모습은 괴리감을 느끼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는 아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장난기가 매우 심하고, 매사에 진중하지 못한 태도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진지한 분위기나 대화를 극도로 꺼려하는 회피성 성향이기 때문이다.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니, 중간에 실없는 말장난을 끼워 넣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하지만 엄마와 나에게는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여보! 나는 진지한데 자기는 장난이 나와?! “

“아빠! 좀 진지하게 들어. 장난해?”


엄마와 나는 늘 화가 났다. 예민하고 진지한 두 모녀는 회피하는 남자의 태도가 속이 타들어 갈 만큼 답답했다.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말장난은 어느새 못된 습관으로 자리 잡았고, 아빠는 시도 때도 없이 상황과 분위기를 가리지 못하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로 인해 화가 나는 일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 가슴에 깊게 박히는 일이 하나 있다.


지금이야 남편을 만나고 2세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지만, 과거의 나는 딩크부부를 꿈꾸는 여자였다.

어느 날, 아빠와 술 한잔 하던 중에 또다시 2세 문제가 거론되었다.


“나는 무슨 죄를 지어서 손주도 못 보냐.”

“손주를 죄를 지어서 못 본다고 말할 문제야? 안 낳는 게 섭섭할 순 있지만, 있는 자식 잘 살기를 바라주는 게 먼저 아니야?“


고지식하고 고집 센 아빠와 그보다 한 술 더 뜨는 내가 만나면 말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그럼 하나 낳을 테니까 아빠가 키워줘! 학교도 대신 하교 시켜주고!”


둘 다 술 한잔 마셨겠다, 괜히 감정이 과열되어 더 큰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소화기 한 번 뿌리는 셈 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질러 보았다.


그럼 아빠 입에서 “그래! 아빠가 많이 도와줄 테니 낳기만 해라!”같은 부성애스러운 대답이 돌아올 거라 내심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이 양반은 내 기대를 너무 쉽게 져버린다.


“내가 왜? 네 애는 네가 키워야지!”


그냥 ‘아빠 마음이 이 정도야!’ 감정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물론 알고 있다. 아빠의 성격상 손주가 태어나면 물고 빨며 하지 말래도 도와줄 분이었다.


하지만 또 못된 말장난은 부녀 관계를 극으로 치닫게 했다. 그날의 사건만 보면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 쌓인 감정이 그 말 하나로 폭발했다.


얼마 후 아빠는 나와의 중요한 약속을 전날 음주 후유증으로 무책임하게 어겼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아빠와 연락을 끊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연락을 끊고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시간이 흐르자 치솟았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미움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감정에 에너지를 더 쏟기엔 내가 너무 지쳐있었다.


미움은 결국 나를 좀 먹는 감정이었다.


아빠도 부모다.

어설펐지만, 분명 본인만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천천히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미움과 원망을 내려놓는다고 아빠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빠는 삼십 년 동안 본인의 가정이 어딘지 알지 못했다.

여전히 친가 식구들이 자신의 중심이다.

엄마와 나를 먼저 두지 않는 않으니, 엄마와 나도 아빠를 먼저 두지 않는다.


다만,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아주 조금씩 마음을 풀어내는 중이다. 그것이 내가 아빠를 부모로서 인정하는 마지막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