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에 대하여
꼭 예쁜 수박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
얼마 전, 여름이 끝나기 전에 수박을 한 통만 더 먹자고 과일 시장을 갔다.
제철의 끝물이라 그런지 저렴한 값으로 오순도순 쌓여있는 수박들이 꽤 보였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라 판단하고 주인 아저씨께 수박을 골라달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너무 못 생긴 녀석을 골라주는게 아닌가.
동그란 머리통에 혹이 난 것처럼 꼭지 옆 부분이 툭- 정말 야구공만한 혹이 톡 튀어나와 있는 수박이었다.
전문가가 골라준 것이니 분명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수박은 되도록 동그란 녀석이 상품(上品)이라는데 빨리 팔아 치우려는 것인가 싶은 의심으로 내적 갈등이 일었다.
결국 나는 그 옆에 있던 동그랗고 예쁜 녀석을 데려갔다.
칼질하기에 어려울 것 같다는 변명을 수박 꼬리마냥 단 채….
올해 여름 수박만 다섯 통을 먹었다.
과일을 좋아하는 편인데다가 물 대신 먹기에 좋은 과일이라서.
한국인이라면 수박 고를 때 일단 두드려보기부터 한다는데, 덕분에 여러 수박을 두드렸다.
맛 없는 수박을 고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귀 기울이며 통통통.
요리조리 두드리고 열심히 골라도 다섯 통의 수박 맛은 복불복이었다.
어떤 건 아이스크림 만큼 달았고, 어떤 건 진짜 마지못해 먹기도 했다.
다섯 번째 수박을 칼로 자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결국 껍질을 보고서는 확실히 고를 수 없는 일이구나. 역시 아저씨가 골라준 녀석이 달았을까.
(인간에게 한정하여) 과일이 과일로서 존재하는 의미는 달고 맛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예쁜 수박보다 달고 맛있는 수박이 더 과일로서 가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겉모습으로 수박을 고른다.
일일히 맛보고 고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혹이 난 수박에게도 조금 관대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떤 사람은 고운 외모만큼 내실이 탄탄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무색하게 살면서 겪어본 사람들 중에는 정말 '보기에만' 좋은 경우가 꽤 있었다.
애초에 수박 하나 제대로 못 고르면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게 가능한 일이었나.
'맛있는 수박 고르는 법'을 검색해가며 애썼지만 복불복이었던 수박 맛을 찬찬히 되짚으며 사람도 결국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분명 외모나 차림새가 주는 인상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이지만 나는 내면이 달달한 사람이 더 좋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이유를 따졌을 때 내실이 튼튼한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
꼭 예쁜 수박이 될 필요는 없다.
우선 맛있는 수박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