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15. 무언가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은 날

by Hyunseok YOON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위한 18개의 노트

1부 - 경계에 머무는 사람

1.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2. 확신이 없는 사람의 세계
3. 나는 왜 자꾸 사라지려 하는가
4.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사이에서
5.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만든다
6. 흔적은 때로 말보다 무겁다

Inturlude - 머물렀던 자리로부터

2부 - 조용한 무게들

7. 결핍이라는 출발선
8. 말보다 오래 남는 것들에 대해
9.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10. 응시와 침묵 사이의 나
11. 존재는 때로 아주 작고 조용하게 지나간다
12. 무응답이라는 대화

Interlude - 조용한 무게들을 향해

3부 - 나를 지나가는 감정들

13. 나는 나를 의심한다
14. 사라지지 않기 위한 방식
15. 무언가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은 날
16. 조각난 하루들을 꿰매는 일
17. 감정은 늘 조금 늦게 도착한다
18. 나는 여전히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쓴다





15. 무언가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은 날








나는 하루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이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다.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그냥 아무것도 만들지 않으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늘 무언가를 해야 했다. 작은 글 한 줄이라도, 사진 한 장이라도, 어딘가에 나의 흔적이 남아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만들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았고, 사라진다는 건 곧 아무 의미도 남기지 못한다는 뜻 같았다.








‘보이지 않으면 금세 잊힌다.’ 나는 그 불안 속에서 자랐다. 아무리 애써도 쉽게 잊히는 사람들, 열심히 살아도 사라지는 시간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아주 오랜 시간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 그 시작은 어린 시절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잦은 부재 속에서, 나는 늘 보여지기 위해 애썼다. 칭찬을 듣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나를 바라봐주길 바라며 기대에 맞추려 했지만, 그 마음은 자주 어긋났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나는 점점 친구들에게 의존했고, 그들이 나를 떠나지 않게 하려고 더 많이 웃고, 먼저 눈치를 보고,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곤 했다. 그건 단순한 유년의 습관이 아니라, 잊히지 않기 위한 본능 같은 몸짓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유행과 속도를 중시하는 세계에서 일하게 되었다. 늘 새로운 이미지가 쏟아지고, 어제의 감정조차 금세 낡아버리는 환경 속에서 ‘지금 보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감각이 자연스레 몸에 배었다. 그 세계에서는 단 하루의 공백조차 잊히는 이유가 되었고, 나는 그 리듬에 맞추어 나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해야만 했다. 그건 단순한 직업적 습관이 아니라, 존재를 지키기 위한 반사적인 몸짓에 가까웠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만들고, 증명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이 세상에서 금세 흐려지고, 결국은 지워질 것 같았다. 그렇게 몸에 밴 불안은, 아주 작은 일상 속에서도 나를 조용히 조여왔다. 메일함이나 메세지함을 몇번이고 열어보고, SNS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괜히 초조해지고… 그런 순간들은 마치 내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다는 증거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을 남겼다. 보이지 않는다는 건, 곧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믿음은, 프랑스로 건너와 현대미술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한 작업이 아닌, ‘나’를 탐색하는 작업을 하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조용히 되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애쓰는 걸까? 이토록 조급하게, 쉴 틈도 없이 무언가를 만들려는 이 마음의 정체는 뭘까? 그건 정말 창작에 대한 열정일까, 아니면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의 오래된 강박일까?








그 질문이 나를 잠시 멈추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 하루를 나 자신에게 허락해도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이상하게도, 모든 걸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가끔은 더 진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의욕도 의무도 잠시 내려놓아도,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으로 머물 수 있었다.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믿었던 나와는 전혀 다른, 조용하고 느슨한 내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아무데나 앉아 담배를 피우며, 호흡이 천천히 가라앉는 그 순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안심했다. 조용히 멍하니 머무는 그 5분은,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을 천천히 되살려주었다.







또한 카페 테라스에 혼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다 보면, 나 역시 그 흐름의 일부라는 이상한 평온이 밀려왔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안을 얻는다. 그저 숨 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아직도 그 사이를 오간다. 무언가를 만들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믿는 나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나. 그 둘은 종종 충돌하지만, 이제는 그 싸움조차도 나라는 것을 안다.








창작은 내가 여기에 있다는 하나의 방식일 뿐, 존재는 반드시 창작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나는 지금 ‘존재’와 ‘행위’를 조금씩 분리해내는 법을 배워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늘은 그냥 이런 날이어도 괜찮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그 말이 완전히 믿어지지는 않지만, 그렇게 믿어보려 애쓰는 그 마음마저 어쩌면 또 하나의 ‘만들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말을 조용히 연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