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감정은 늘 조금 늦게 도착한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위한 18개의 노트
1부 - 경계에 머무는 사람
1.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2. 확신이 없는 사람의 세계
3. 나는 왜 자꾸 사라지려 하는가
4.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사이에서
5.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만든다
6. 흔적은 때로 말보다 무겁다
Interlude - 머물렀던 자리로부터
2부 - 조용한 무게들
7. 결핍이라는 출발선
8. 말보다 오래 남는 것들에 대해
9.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10. 응시와 침묵 사이의 나
11. 존재는 때로 아주 작고 조용하게 지나간다
12. 무응답이라는 대화
Interlude - 조용한 무게들을 향해
3부 - 나를 지나가는 감정들
13. 나는 나를 의심한다
14. 사라지지 않기 위한 방식
15. 무언가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은 날
16. 조각난 하루들을 꿰매는 일
17. 감정은 늘 조금 늦게 도착한다
18. 나는 여전히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쓴다
17. 감정은 늘 조금 늦게 도착한다
감정은 언제나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다.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아픈 건 아니고, 슬픈 일을 겪었다고 바로 눈물이 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감정은 그 순간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지나가다가, 몇 시간, 며칠, 아니면 몇 해가 지나서야 불쑥 찾아온다. 마치 긴 길을 돌아 조용히 도착하는 편지처럼…
나는 예전엔 그런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왜 사람들처럼 바로 반응하지 못할까… 어떤 일 앞에서도 담담하게 굴다가, 한참 뒤에야 이유 모를 공허함에 휩싸이고, 괜찮다고 말한 지 며칠이 지나서야 불쑥 울음이 터져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스스로가 둔감한 사람처럼 느껴졌고, 감정을 제때 느끼지 못하는 내가 어딘가 잘못된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은 안다. 감정은 늘 조금 늦게 도착한다는 걸… 그건 내가 둔해서가 아니라, 그 감정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필요해서라는 걸…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뚜렷하게 느낀 순간은, 어린 시절과 관련된 기억 속에서였다.
어릴 적, 나는 외로웠다. 늘 집엔 불이 꺼져 있었고, 부모님은 바쁘셨다. 그렇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항상 곁을 지켜주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할머니였다. 부모님이 바깥일로 자리를 비운 동안, 할머니는 늘 집에 계셨다. 밥을 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밤이면 이불을 덮어주며 조용히 등을 토닥여주시던 분…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이 고마움보다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부모님의 빈자리를 향한 그리움에 매달려 있었고, 할머니의 다정한 배려 속에서도 왠지 모를 결핍을 품은 채 지냈다. ‘왜 나를 이렇게 혼자 두는 걸까.’ ‘왜 나와 함께하지 못하는 걸까.’ 그 질문들이 어린 나를 자주 울게 했다.
그렇게 지내온 유년의 기억들은 내가 프랑스로 이주하면서도 잊히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할머니는 여전히 고향에 계셨고, 나는 멀리서 영상통화로 안부를 나누곤 했다. 직접 찾아뵙지 못한 채, 말로만 “곧 갈게요”, “건강 챙기세요” 라고 말하던 시간들... 그런데 프랑스로 온 지 2년째 되던 해, 어느 날 부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 말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믿기지 않았다. 울음이 터지는 대신,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마치 누군가의 죽음을 뉴스로 접했을 때처럼, 현실감 없는 정적… 그 정적은 하루 종일 내 몸을 감싸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무표정한 채 앉아 있었다.
그 멍한 감각은 하루 종일 내 안을 점령했고,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 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한참 뒤, 갑자기 눈앞에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부모님께 혼난 후 혼자 울고 있을 때 옆에 와서 손을 잡아주시던 할머니, 아침마다 학교 가기 전에 최선을 다해서 밥을 먹이고,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몰래 더 얹어주던 기억들… 이러한 기억들이 홍수처럼 밀려왔고, 그제야 감정이 터졌다. 결국, 나는 목놓아 울었다. 죄송하다고, 멀리 있어서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할머니의 마지막 곁을 함께 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그렇게 울었다. 그 슬픔은 그날 아침엔 없었던 감정이었다. 하지만 몇 시간, 아니 몇 년을 돌아 마침내 도착한 감정이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그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만 비로소 내 안에 도달할 수 있었던 감정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감정을 받아들이는 속도와 방식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특히, 부모가 된 지금은 그 감정들이 훨씬 더 섬세하게 나를 흔든다. 어느 순간, 나는 예전보다 훨씬 자주 멈추고, 그동안 미뤄둔 마음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전엔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부모님의 얼굴, 그들이 했던 말, 그리고 내가 너무 늦게야 알아차린 어떤 사랑의 형태들...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그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고, 때로는 너무 차갑다는 걸…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잠시 놓을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그들은 나를 외면한 게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거였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우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사랑을 표현할 여유조차 없이 달려야 했던 삶이었음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감정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준 이해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가슴 깊숙이 도착한 감정이었다.
며칠 전, 세 살 난 아들이 프랑스 유치원에 처음 가던 날이었다. 유치원 앞에서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낯선 나라, 낯선 얼굴, 낯선 언어. 그 모든 게 너무 두려웠을 것이다. 나는 처음엔 그저 안쓰러웠다. 하지만 아이가 끝없이 울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괜찮아, 금방 익숙해질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리엔 초조함이 묻어 있었다. 결국 아이를 선생님께 맡기고 돌아서는데, 내 안엔 이상한 공허함이 남았다. 그리고 작업실에 돌아와 커피를 내리고 앉는 순간, 비로소 그 감정이 밀려왔다. 아이가 낯선 환경 속에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공간에서, 손을 붙잡아줄 사람조차 없이 울음을 삼켜야 했을 그 마음이 떠올랐다. 그제야 나는 울컥했다. 유치원 앞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감정이, 한참 뒤에야 내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그때 깨달았다. 감정은 ‘그 순간’에 반드시 오지 않아도 된다는 걸… 때로는 그것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늦게 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몸이 먼저 버티고, 마음이 뒤늦게 따라오는 순서가 있다는 걸…
감정은 인간관계에서뿐 아니라, 예술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느낌이 즉각 오지 않아도, 그것은 결코 감동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전시장에서 현대미술 작품을 볼 때, 처음엔 이해되지 않는다. 그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지나친 작품이, 며칠 후 문득 떠오른다. 그때 느껴지지 않았던 장면이 내 안에서 자라나, 며칠 뒤에야 마음을 건드린다. 좋은 영화나 드라마도 그렇다. 그 순간에는 그냥 지나가던 대사가, 며칠 후 불현듯 가슴을 울린다. 그건 아마, 감정이 내 안에서 ‘늦게 발화하는 방식’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제 조금은 천천히 느끼려 한다. 누군가의 말에 바로 상처받지 않으려 하고, 기쁜 일에도 서둘러 들뜨지 않으려 한다. 감정은 시간 속에서 모양을 바꾸기도 하고, 그 진짜 얼굴은 언제나 늦게 도착하니까… 감정이 늦게 온다는 건, 나쁘지 않다. 그건 내가 무뎌서가 아니라, 그 감정을 감당할 준비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언젠가 그 말이 무너질지 모르고, 지금은 아프지 않다고 믿지만, 며칠 뒤에야 그 슬픔이 도착할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감정은 늦게 와도, 결국에는 도착하니까… 그 늦은 감정이야말로 가장 깊고,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이니까… 감정은 늦게 오지만, 결국 반드시 온다. 나는 오늘도, 그 감정을 조용히 기다리는 중이다.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나를 찾아올 감정을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