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3. 나는 왜 자꾸 사라지려 하는가

by Hyunseok YOON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위한 18개의 노트

1부 - 경계에 머무는 사람

1. 예술가가 되지 않으려 애쓰는 예술가
2. 확신이 없는 사람의 세계
3. 나는 왜 자꾸 사라지려 하는가
4.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 사이에서
5.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만든다
6. 흔적은 때로 말보다 무겁다

Interlude - 머물렀던 자리로부터





3. 나는 왜 자꾸 사라지려 하는가








나는 자꾸 사라지고 싶어진다.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나는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처럼 머물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유를 묻는다면, 딱 잘라 대답하기 어렵다.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고 싶다기보다,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말해야 할 순간에 말하지 못하고, 보여줘야 할 순간에 숨게 되고, 나를 꺼내는 대신, 조용히 뒷걸음질치게 되는 그런 마음.









어쩌면 나는 나를 감추는 방식으로 버티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너무 앞에 나서면 금방 부서질 것 같고, 무언가를 분명히 말하면 그 말이 나를 갉아먹을 것 같고, 그래서 말끝을 흐리고, 얼굴을 피하고, 자리를 비운다.









사라지고 싶은 감정은 고립에 대한 갈망일까, 아니면 연결되지 못한 데서 오는 포기일까.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한다. 웃고, 이야기 나누고, 가까이 앉아 있는 순간들이 싫진 않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지나면, 반드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시간.


앞에 나서고 싶지 않지만, 나서야만 하는 상황은 자꾸 생긴다. 그럴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간다. 말하고, 보여주고, 설명하고. 그러고 나면 그만큼 더 숨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구석을 찾아, 최대한 들키지 않게 스스로를 감춘다.









그게 내가 버티는 방식이다. 보이고 나서 숨고, 숨었다가 다시 나서고. 그런 반복 속에서 나는 나를 유지한다.









작업을 할 때도 그렇다. 정면을 마주하지 않고, 항상 살짝 옆으로 비껴간다.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돌려 말하고, 때로는 아예 말하지 않는다. 그게 회피인지, 침묵인지, 아니면 그냥 나의 언어인지 나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작업 속에서 그 마음을 흘려보낸다. 어떤 장면은 그저 사라지고 싶은 감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의미가 없더라도, 뚜렷한 메시지가 없더라도, 그 감정만은 솔직하게 남기고 싶다.









사라지려는 마음은 결국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닿아 있다. 이 세계에서, 이 관계 속에서, 이 시선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방식으로 머물 수 있을까.


조용히, 작게, 천천히...









나는 때때로 사라지고 싶은 사람이지만, 완전히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 그저 너무 크고 무거운 말들로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그런 작은 자리를 원한다.









지금 나는 사라지고 싶은 마음과 남고 싶은 마음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