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 서머싯 몸
마케팅 일을 4년째 하고 있지만 부끄럽게도 그 시간 동안 완독한 책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더구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마지막 기억은 하도 오래되어 머릿속에 존재하지도 않지만, 책을 읽고 나름의 생각을 어색한 문장으로 나열해본다.
<17년의 결혼생활을 한순간 정리한 인물>
스트릭랜드는 17년간의 결혼생활한 부인 '에이미'와 자식들을 두고 한통의 편지로 작별을 고했다.
그는 어떤 사람일까? 매정하고 잔인한 인간일까?
내 주변에 스트릭랜드 같은 인간이 없어 다행이지만, 바로 내가 스트릭랜드 같은 인간이라 책을 읽으며 이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이해하는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해석한 스트릭랜드는 평생 가슴속에 예술이라는 들끓는 열정을 숨기고 17년의 세월을 버티다가 그 열정을 한순간 폭발해낸 사람이 아니다.
17년의 결혼생활이 아닌, 어쩌면 아주 어린시절부터 ' 왜 내가 존재하고 있는가?’의 해답에 대한 의구심과 고뇌로 괴로운 삶을 살던 인물 일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번듯한 직장에 나를 보살펴주는 아내가 있고 귀여운 자식들이 있지만, 존재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 한 그 어떤 것도 스트릭랜드에게 행복이란 걸 주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 속 예술은 스트릭랜드의 '존재의 의문' 에 대한 해소 도구 일 뿐, 이 소설 전체가 예술에 초점을 맞추어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 천재화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사실 스트릭랜드가 천재라는 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소설의 본질을 흐리기에)
삶의 이유에 대해 고뇌하는 스트릭랜드에게 풍족한 생활과 사교모임, 단란한 가정은 그저 가식일 뿐이다. 그 어떤 것도 공허함을 채울 수 없으며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아간다면 누가 그 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스트릭랜드는 결정의 순간 본인에게 옳은 길을 따랐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남겨진 사람들은 끔찍했겠지만..
<은인의 부인을 뺏어간 인물>
스트릭랜드는 목숨을 살려준 스트로브의 아내를 빼았고 결국 죽음으로 이르게 했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 부분에서 책을 덮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만큼 스트릭랜드의 탈선이 절정을 이루었고, 보는 이로 하여금 치를 떨게 만든 파트였다.
물론 한 여자로서 나도 책을 읽으면서 '설마 그러겠어?' 싶었지만 마성의 남자 스트릭랜드는 결국 저지르고 말았다.
작가는 스트릭랜드가 얼마나 저질적인 인간인지 보여주고 싶었을까?
'한 인물의 생애를 통해 본질에 가까운 삶이 어떤것인지 보여주는 소설' 이라고 해석한 내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야 말로 극단적으로 주제를 보여주는 파트이다.
스트로브가 스트릭랜드의 그림에 매혹된 이유와 스트로브의 아내 블랜치가 스트릭랜드를 진정으로 사랑한 이유는 동일하다.
바로 '본질'이다. 스트로브는 스트린랜드의 그림에서, 아내는 스트릭랜드 자체에서 그 본질을 보았다.
주인공 ' 나'가 보았을 때 스트로브와 블랜치는 어울리지는 않지만 꽤 행복한 한 쌍이다.
하지만 진실은 보기와는 다르다.
블랜치는 임신 후 버려진 자신을 구원한 스트로브에 은혜를 갚기 위해, 스트로브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가식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이다.(이 부분은 아픈 스트릭랜드를 집으로 들이고자 할때 블랜치가 극심히 반대했지만, 은혜를 배푼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스트로브의 말에 태도를 바꾼데에서 결정적으로 들어난다!)
결국 거짓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트릭랜드는 꾸밈 없는 진실을 보여준 사람이니 결국 스트로브도 아내를 뺏어간 스트릭랜드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이다.
블랜치 역시 스트릭랜드를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스트로브를 사랑하지 않는 진실을 깨닫게 되어 그를 떠나게 된 것이다.
<타히티에서 원하는것을 찾은 인물>
스트릭랜드에게 타히티는 종착역이었다. 그가 문둥병으로 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스트릭랜드는 타히티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감과 종이, 생존을 위한 식사와 최소한의 위생과 거주지, 문둥병으로 온몸의 피부가 일그러져도 나를 떠나지 않는 아타가 바로 스트릭랜드가 그토록 찾아 해멘 본질이다.
그가 여기까지 오면서 만난 인물도 모두 그의 영혼에 매료되었고, 그를 증오하지만 또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주인공 '나' 가 그러하다.
한사코 스트릭랜드를 역겨운 인간으로 취급하던 '나'는 소설의 중반부 스트릭랜드가 파리에서 직접 그림을 여러장 보여줬는데도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라는 인물은 스트릭랜드의 발자국을 뒤쫓으며, 결국에는 그의 작품을 통해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바로 스트릭랜드의 삶에 매료 된 것이다.
문둥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스트릭랜드.
그는 본인이 죽으면서 그 훌륭한 작품들을 모조리 불태워 달라고 했다.
고뇌와 벅차오르는 감정을 표출한 그림은 그가 죽는 순간 이후로는 의미가 없어진다. 의미가 없는 것이 본질이 뭔지도 모르는 사교계에서 고가에 여기저기 팔려 다니는것은 스트릭랜드가 생전에 그토록 혐오 하던 가식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는 ~ 마침내 그는 안식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을 정면으로 관통하는 문단이었다.
내 얘기를 해보자면, 산본에서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춘천에서 보내고 학부 생활은 대전에서, 직장은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다. (중간에 잠깐 용인에서도 살았다)
직장은 6번째 직장이다.
도무지 내 인생은 안정감이라는 것이 없으며, 어딘가 정착 한다는것은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일 같다. 그래서 스트릭랜드가 떠돌이 생활을 하며 결국 타히티에 정착 한 것은 나의 입장에서는 정말 부러우며, 어떤 소설보다도 해피엔딩을 그렸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