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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Aug 11. 2023

눈치, 사회성 zero ENTJ의  첫 직장생활

Entj 사회생활

직장생활 10년 차, 사회생활에 완벽히 적응한 현재와 달리 나의 첫 직장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당시에는 나의 직장생활이 왜 이렇게 힘든지, 상사는 나를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 내가 ENTJ인지 아무것도 모른 채 고난의 행군을 계속했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어찌 보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어딘가 있을 테니까. 그들은 내 경험담을 듣고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편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맘 때문이다.


나는 한창 성장하고 있는 중소기업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원을 나왔다는 이유로 엑셀의 '엑'자도 모르는데 처음 신설된 부서인 '전략기획팀'의 주임으로 채용되었다. 나의 기념할만한 첫 상사는 무려 서울대학교 토목과 출신으로 처음 만나자마자 엑셀의 중요성과 데이터의 중요성을 엄청 설파하셨고, 본인은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을 싫어하며, 어디서 일하든 관계없고, 가장 혐오하는 것은 일이 없는 데 있는 것처럼 꾸역꾸역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ENTJ인 나의 첫 번째 과오 : 눈치가 없고,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사회생활 경험이 거의 전무했던 나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말았다.

"어디서 일하든 관계없고, 가장 혐오하는 것은 일이 없는데 꾸역꾸역 자리에 앉아있는 것" 이게 왜 그렇게 뇌리에 박혔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결국 회사 생활 첫날, 나는 저녁 6시 땡 하자마자 쏜살같이 퇴근하는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회사 생활 첫날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퇴근했는지, 상사가 퇴근했는지 좀 주변을 둘러보고, 퇴근하고 싶으면 윗사람의 양해나 허락을 구했어야 했거늘...


무슨 이유가 있든지 간에 남들이 보기에는 퇴근 시간만 죽치고 기다리다가 칼같이 퇴근하는 인간으로만 보였을 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상사가 엑셀 얘기만 하는데, 난 엑셀 기초적인 것밖에 모르는데 큰일이네... 빨리 엑셀을 마스터해야겠다'는 단 하나의 생각뿐.


 난 퇴근하자마자 서점에 들러 엑셀 마스터하기 책 한 권을 사고, 미친 듯이 독파했다. 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거의 일주일 간 눈이 빨개질 정도로 엑셀 책만 봤던 거 같다.


한편, 직장에서는 칼퇴하던 3일째부터 상사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괴롭힘의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우선, 팀원들 앞에서 무시하는 발언하기

"OO주임, 엑셀 못하잖아. 어떻게 일을 주지? OO사원에게 커피라도 사주면서 배워"

"대학에서 경영학 전공했다면서 OOO 책도 안 읽어봤어?"

"OOO은 기본적인 건데 그것도 모르다니, 바보야?"


둘째, 시킨 일을 해서 가져가면 일의 수행방법에 대해 계속해서 지적하기

"A를 시킨다고 A만 가져오는 사람이 어딨어? A안 B안을 가져와야지!"

"A안 B안을 가져오면 안 되고, A안 A'안 A''안 이렇게 가져와야지. 정말 일 못하네."


셋째, 사회생활 예절에 대해 지적하기

"보고할 때는 결재판에 들고 와야지. 내가 이런 것까지 말해야 해?"

"어디 감히 파티션에 손을 올려. OO주임은 고칠 게 너무 많아."


난 이게 절반 이상이 나의 칼퇴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곤 꿈에도 모른 채, 약 3개월 동안 지속적인 괴롭힘에 시달렸다. 그리고 내가 담당했던 회사 브로셔 제작 임무도 어느덧 3개월이 돼 가고 있었다. 상사가 일의 수행방법만 지적하는 통에 A안, B안... Z안까지 계속 변경하며 지지부진하게 진행하던 업무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보고하고 혼나고 보고하고 혼나던 와중에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나 보다. 한 3개월 만에 흘린 눈물이라 상사가 놀랬는지 다음날 미팅룸으로 나를 따로 불러냈다.


"OO주임은 일도 못하고 엑셀도 못하면서 초반에 왜 그렇게 칼퇴한 거야? 일하기 싫어?"

그제야 유레카처럼 '아, 이게 칼퇴 때문에 벌어진 일이구나..'를 직감했던 나.


"부장님, 오해입니다. 저는 첫 직장인만큼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고, 지금도 그런 맘이에요. 초반에 칼퇴한 것은, 부장님은 엑셀을 신처럼 잘 다루시고, 전략기획팀은 엑셀이 전부다라고 하시는데, 제가 엑셀을 전혀 못해서 팀원들에게 민폐만 끼칠까 봐 빠르게 엑셀을 익히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다른 것은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 부분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10년 전 일인데도, 당시 분위기 당시 내가 어떤 뉘앙스로 말했는지 등이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난다. 그만큼 사회생활 쪼렙인 내게는 충격이었던 거다. 상사 말 곧이곧대로 듣고 칼퇴해서 집에서 밤 10시까지 엑셀 공부했던 게 괴롭힘의 화근이었다는 사실이.


내가 이런 에피소드를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다들 묻는다. 지금이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지금이라면, 엑셀 공부를 회사에 앉아서 하겠지. 부장이 퇴근할 때까진 절대 퇴근 안 하고. 저런 말을 한다는 건 보통 반대라는 얘기거든. 진짜 신경 안 쓰는 사람은 어디서 일하든 상관없다는 말 절대 안 하더라!!"


다음 장에서는 3개월 동안 갖은 괴롭힘에 대응하며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펼쳤던 나만의 전략(?)들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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