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출신이 대기업에서 근무하면?
Entj 사회생활
최근에 회사에 부쩍 어린 임원이 많아졌다.
마케팅 이사, 재무 이사 등등.. 그들은 88,89년생들이다.
그들은 어디서 왔는가.. 지금 내가 다니는 기업보다 더 큰 기업에서 온 분들이다. 물론, 외국계 기업이라 유럽 본사에서 온 분들도 있지만 말이다.
난 중소기업부터 중견기업, 소기업, 대기업(엄밀히 말해 본사가 대기업이라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중견기업)을 두루 경험했다. 그리고 알게 된 건, 중소기업 출신이 대기업 다니기가 참 쉽지 않다는 거. 다들 시작하기 전부터 알던데 왜 넌 몰랐냐 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랬나?;; ㅎㅎ
중소기업부터 시작했다고 공부를 못하거나 한 것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늘 상위권, 중학교 때도 전교 1등, 비평준화에서 최고로 좋은 고등학교, 늘 최상위권으로 학원비도 면제받으며 그렇게 좋은 대학, 좋은 대학원까지 나와서.. 쓰고 보니 너무 자랑하는 거 같지만(죄송;;) 결론은 그렇게 해서 이름도 없는 중소기업에 들어간 거다. 중소기업을 비하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팩트만 얘기하면 그렇다는 거다.
나 나름대로 중소기업에 다니게 된 것에 변명을 해보자면, 꿈이 하나 있었고, 그 꿈에 3년을 투자했고, 그런데 인생 처음으로 실패를 했는데, 실패 후 받아준 곳이 중소기업이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애매하긴 했다. 나이에 비해 사회화도 덜 되어있지, 그렇다고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것도 아니지, 알바는 했다 하면 3일 만에 잘리는데, 그 당시엔 이런 날 뽑아준 중소기업에 "실수 아닌가요?"라고 물어볼.. 뻔?
암튼, 그렇게 입사한 중소기업을 다니면서, 그리고 중견기업, 소기업을 다니면서 난 늘 내가 이방인 같았다. 그곳에서 난 오버스펙이라 늘 자신을 깎으면서 주위에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했고, 조금이라도 튀면 두들겨 맞으며(실제로 맞는 게 아니라 비유입니다-0-), 나 자신을 사회적으로 다듬는 시간을 오래도록 가졌다.
그래도 나와 함께하는 임원분들, 팀장님들이 이직하시면 항상 날 불러줬고, 지금까지 총 4번 이직했지만 한 번도 내가 직접 지원해 본 적은 없다. 모두 스카우트를 통해 이직을 했고, 그렇게 지금 기업에 적을 두고 일하고 있다.
대기업에 와서 좋았던 건, 다들 스펙이 좋으니 내가 더 이상 오버스펙이 아니고, 개인적인 질문에 대답할 때 숨길 필요가 없고, 그래서 예전보다는 좀 편안해졌다는 거다.
한편, 대기업에 와서 안 좋은 건, 중소기업 출신은 기존 직급을 인정받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도 인정을 받는 대기업 출신과는 달리 항상 나 자신에 대해 증명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편안하지만, 참 피곤하다.
예를 들어, 대기업은 입사하기 전에 정말 단단한 돌문 하나를 부순다고 한다면, 중소기업 출신으로 대기업을 다니면 그렇게 단단한 돌문은 아닌데 적당히 두께감 있는 돌문이 한 50개 있는 느낌이랄까.. 지금까지 부수고 부수고 부쉈는데도 한 30개 남아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결론은, 결국 대기업 시작이 답?
난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회사생활을 그렇게 오래 할 생각이 없다면 대기업 시작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대기업에서 단 한 번의 삐끗함도 없이 승승장구만 한다면 대기업이 최고의 선택일 거다.
하지만 나처럼 실패를 겪고, 무엇을 잘하고 어떤 게 잘 맞는지 모른다면, 중소기업에서 하나하나 경험하며 찾아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그리고 어디서 시작하든 열심히 하고 잘하면 늘 끌어주는 사람이 생긴다. 물론, 난 중소기업 출신으로 대기업 다니며 내 앞에 수많은 돌문들을 아직도 많이 깨부숴야 하지만, 또 나보다 어린 임원들에게 가끔 현타가 오지만, 돌문 하나만 부신 사람보다 여러 개를 부신 사람이 또 얻는 부분도 반드시 있을 거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맘이랄지!
담주도 돌문하나 부숴야지.. 다짐해 본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