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팀원들이 팀장님을 잡아먹을 것처럼 작은 일에도 "부장님, 이건 아니잖아요~보고는 하신 거 맞아요?" 이런 식으로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걸 보고 저래도 되나,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연스레 팀장은 날 의지하게 되고, 기가 센 남자 팀원보다 여자 팀원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어찌어찌 일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근데 그러다 보니 내가 너무 튀어버리게 된 거다. 한해스타상에 KPI 최고 등급에 심지어 회사 홍보모델로 인터뷰까지 진행하게 됐다. 그러자 나의 바로 윗 선임의 견제가 시작됐다.
난 눈치가 없다. 처음에는 견제를 하는 줄도 몰랐다. 근데 뭘 물어보면 "그런 질문은 윗사람한테 하는 게 아니다, 네가 착각하나 본데, 나는 너보다 윗사람이다." 머 이런 식이다. 카톡에 공유하는 글을 쓰면, "왜 글을 그따위로 쓰냐"라고 묻는다. 근데 진짜 모르겠어서 "그럼 어떻게 쓰면 되나요?" 이렇게 물으면, "넌 그래서 안된다. 질문이 많다." 또 이렇게 돌아오고.. 휴.. 어쩌라는 건지.
살면서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은 게 아니기 때문에 심적으로는 아무 영향이 없었지만 일 처리가 지연되니 슬슬 짜증이 났다. 그 선임이 맡은 부분을 꼭 쥐고 있으니 난 어쩔 수 없이 물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결국 참다 참다 팀장님께 저랑 그 선임을 분리해 달라고 요청했고, 각자 파트를 맡아 일을 딱 반으로 분리하게 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근데 팀장님이 작년 하반기에 바뀌게 된 거다. 기존 팀장은 대표님 눈밖에 나 좌천을 가게 되고 옆 팀장님이 우리 팀까지 겸직하게 됐다. 새로운 팀장은 나와 선임 사이를 전혀 모르니 무슨 프로젝트마다 나와 그 선임을 끼고 내가 리드해서 함께 프로젝트를 하라고 요청했다. 선임이 있는데 내가 리드하라는 것도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예상대로 선임은 내가 요청하는 거에 자료를 줄리가 만무했다. 그냥 혼자 했다. 그 선임이 바라는 바였는지도 모른다. 꼰티를 냄으로써 그 어떤 일도 인볼브 되지 않고 나만 일 폭탄을 떠안게 됐으니~
문제는 하반기 10월경 희망퇴직을 하게 되면서 본격화됐다. 그 선임은 본인이 대상자라고 생각했는지 견제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내가 작성한 자료도 지가 했다 하고,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과거에 다 해봤던 거야~좀 더 새로운 건 없니?" 이러면서 어떻게든 나를 깎아내리려고 했다. 머 어쨌거나 팀장님은 희망퇴직 대상자로 날 선택했으니 그 선임이 자신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 있겠지.
하지만 나도 철저한 준비로 살아남았고, 그 선임과 나의 관계는 날로 악화됐다.
그러던 중 새로운 팀장님이 퇴사를 하게 되고, 기존 팀장이 다시 돌아왔는데... 선임은 어떻게든 기존 팀장에게 잘 보이려고 알랑방구를 끼기 시작했다. 과거 본인이 부장에게 했던 일은 생각을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이제는 부장이 시키는 일은 모든지 다하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난 머 잠깐 그렇게 한다고 영향이 있을까 싶었지만, 팀장과 그 선임은 어느새 절친이 되어 있었다. 함께 술 먹고, 함께 담배 피우고, 함께 일하고, 아주 찰떡같은 사이가 된 거다.
그 두 사람의 성향이 비슷한 것도 한몫했을 것 같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두 사람은 외벌이에 나이도 있어 어떻게든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는 게 목적인 듯 보였다. 두 사람은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회사에서 매출 내는 방법을 생각해 내라고 하면, 생각을 해서 보고를 하고 '아 회사에서 요청한 거 다했다. 끝', 결코 그 생각이 실현되는 일은 없다. 물론, 그게 회사 생활인지도 모른다. 나와는 맞지 않는 방법이지만.
그렇게 두 사람은 외부 거래처와의 관계는 생각도 안 하고,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해도 그대로 수행했다. 그래서 매출은 점차 악화되었고, 실무자는 외부에서 욕은 욕대로 먹고, 그 두 사람은 외부 전화를 안 받거나 무시하면서 계속 버텨나갔다.
난 도저히 두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매출을 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팀 미팅시마다 설득하고, 부장님께 따로 전화해서 또 얘기하고 그렇게 노력했다. 3개월 정도 지났을까 팀장님은 어느 순간부터 화를 내기 시작했고, 난 그게 회사를 생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팀장은 본인을 괴롭힌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렇게 난 퇴사를 맘먹었다.
내가 잘 나갔다가, 팀장님이 바뀌었다가, 선임의 견제가 오락가락했다가... 이런 것들은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내가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는 매출을 내고 퍼포먼스를 내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고, 지금은 그냥 회사에 순응하고 회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사람이 필요한 것일 뿐.
난 어찌 보면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건가?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목표를 세우고, 기획력을 바탕으로 목표를 달성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한테, 그게 마음먹는다고 쉽게 바뀌어지진 않는다. 나도 거의 2년을 버텼으면 많이 버티긴 했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진짜 잘 버텼어~ 그냥 상황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뿐, 이제 상황을 기다리지 말고 상황이 맞는 곳으로 가는거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