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 없는 이야기지만, 사실 난 체리 케이크를 잘 먹지 않는다. 체리가 시큼하다는 편견이 있어서다.
그런데 마침 여름에 맛있는 체리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겨울에 나오는 칠레산 체리보다 여름에 나오는 미국산 체리가 훨씬 달콤하다고.
그래서 체리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딸기를 주문했을 때처럼 무르지 않은 체리가 오기를 기다렸다. 체리가 오던 아침, 백 원만 할 거라고 생각했던 체리가 오백 원만 한 걸 보고는 정말, 정말 깜짝 놀랐다.
이렇게 큰 체리를 케이크에 쓸 수 있는 거 맞아?
포레누아/블랙 포레스트 케이크
* 코코아 제누와즈
우리밀가루를 조금 줄이고 코코아 파우더를 추가했다.
코코아 파우더를 넣으면 반죽이 기름지게 되니, 버터 양도 살짝 줄였다.
* 다크 초콜릿을 넣은 인서트 크림
다크 초콜릿을 같은 양의 따뜻한 생크림에 섞어 가나슈를 만든다. 만든 가나슈를 차가운 생크림에 넣어 잘 섞은 뒤 냉장고에 넣어 숙성하면 크림 준비 완료.
초콜릿을 넣으면 일반 식물성 생크림보다 휘핑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리니 주의해야 한다.
* 체리
여름에는 미국산 생체리가 나온다.
달고 맛있는 데다 크기도 큼지막하다.
* 간 초콜릿과 체리 장식
초콜릿을 칼로 갈아 초콜릿 장식을 만들었다.
남은 아이싱 크림을 초콜릿 위에 짠 뒤, 커다랗고 예쁜 체리로 장식하면 완성.
포레누아는 ‘검은 숲’이라는 뜻이다. 독일의 슈바르츠발트 지역에 울창한 숲이 있는데, 그 숲을 ’검은 숲‘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블랙 포레스트는 미국식 이름이다.
내가 만든 코코아 제누와즈는 바닐라 제누와즈보다 훨씬 잘 부푼다. 과학적인 이유가 있는 걸까? 어쨌든 폭신하고 맛있으면서도 달지 않은 시트가 나와 주어 고마웠다.
오븐에 넣어 구울 때 나는 코코아 향기도 좋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인서트 크림 양을 잘못 계산해서 둘째 층을 채울 크림이 부족했다. 그래서 임기응변으로, 남은 초콜릿 크림에 생크림을 섞어 살짝 옅은 크림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안쪽은 초콜릿 크림으로 채우고 겉면은 흰 크림을 바르거나, 아예 흰 크림으로만 아이싱하던데, 괜찮을까 걱정했다. 의도치 않게 그라데이션을 만들어 버렸으니… 이걸 어쩌지?
하지만 단면을 잘라 보니, 걱정이 무색하게도 케이크는 정말 예뻤다. 그라데이션이라서 독특한 데다, 옅은 초콜릿 크림이 세 가지 크림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오백 원만 한 커다란 체리는 정말 환상적인 맛이었다. 체리가 시큼하고 맛없다는 편견을 깨 준 여름의 체리. 체리를 가득가득 넣었는데, 사진에 나온 단면에는 잘 안 보인다. 정말 맛있어서 언니랑 맛나게 먹었다.
나, 체리 좋아하는구나, 하고 그제야 알았다.
언니가 체리를 잘 먹어서 기뻤다.
이번 케이크 만들기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초콜릿을 얇게 자르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주문한 작은 도끼 칼이 있어서 그걸로 열심히 잘랐다.
서걱서걱 자르는 소리가 마치 ASMR 같았다. 더워서 손에 초콜릿을 잔뜩 묻히면서도 즐겁게 잘랐다.
신선하고 달콤한 체리.
초콜릿 크림과 담백한 생크림.
바삭바삭 맛있는 초콜릿 장식까지.
초콜릿 케이크를 만들면 좋은 점. 기분이 꿀꿀하거나 기운이 없을 때 한 입 먹으면 금세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
포레누아가 그토록 인기가 많은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았다. 앞으로는 많이 많이 사랑해 줘야지.
다음엔 또 어떤 케이크를 만들면 좋을까?
_계속